2018/06/11 일본 사람은 모른다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기온도 낮고 비가 오는 날씨였다. 오후에 태풍이 지나간다고 해서 큰비가 올 줄 알았는데 조용히 태풍이 지난 모양이다.
월요일은 도서관에 가는 날이다. 도서관에 갔다가 돌아올 때 태풍이 와서 비를 맞기가 싫어서 걱정이었다. 일기예보를 보니 저녁에 태풍이 지나면서 비가 많이 온다고 한다. 도서관에 갔다가 일찍 돌아올 요량으로 나갔다. 아침에 나갈 때도 비가 오는 가운데 수국이 많이 핀 길을 걸어서 갔다. 비가 와도 기온이 낮아서 걷기가 좋았다. 가는 길에 떨어진 살구를 세 개 주워서 가면서 먹었다.
도서관에 가서 일본 주요 일간지가 북미 정상회담을 어떻게 보도하는지 궁금해서 신문을 비교해서 봤다. 아사히신문은 일면에 실렸다. 마이니치신문에도 일면에 실렸다. 다른 신문에는 G7과 신칸센에서 일어난 살인사건과 천황이 동일본 지진 피해지인 후쿠시마를 방문했다는 기사가 일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북미정상회담에 관한 기사가 적게 올라와서 궁금했다. 일본에서도 관심이 적을 수가 없고 중요한 일인데 올라오는 기사가 너무 적은 것 같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반납하고 다시 새책을 빌렸다. 도서관에서 책을 한 권 읽었다. '공기의 검열-대일본제국의 표현규제'라는 책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대일본제국'에서는 '공기'라는 '분위기'까지 검열을 했다는 것이다. 기회가 되면 블로그에 소개하고 싶어서 필요한 부분을 표시했다. 일본 국내보다 식민지의 검열이 훨씬 더 엄격했다는데, 특히 조선에서 더 심했다고 한다. 이런 시선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느낌이 든다.
태풍이 지나는 게 무서워서 도서관에서 일찍 나왔다. 오후 2시 넘어 도서관을 나와서 야채 무인판매에서 오이 두 봉지와 고추를 한 봉지 사서 가방에 넣었다. 마트에 가서 닭고기를 사고 당근과 양파 등을 사서 카레를 만들기로 했다. 마트에서 집에 오는 길에도 공원을 거쳐서 왔다. 치킨카레를 만들 때 손이 좀 많이 간다. 닭날개를 소금과 후추를 쳤다가 물기를 살짝 빼고 기름에 바짝 굽는다. 냄비에는 다진 마늘과 생강, 양파 등 야채를 넣고 볶다가 닭날개를 같이 넣어서 푹 끓인다. 충분히 끓여지면 감자를 넣고 맨 나중에 카레를 넣고 끓이는데 오늘은 좀 간단하게 했다. 가장 큰 냄비를 썼는데도 재료를 넣다 보니 넘칠 정도로 많다. 간단히 해도 한 시간 정도 시간이 걸렸다. 어제 청소를 했는데 카레를 했으니 집에 냄새가 밴다. 그래도 비가 오는 쌀쌀한 날에 따뜻한 카레는 맛있게 느껴진다. 냉장고에 있던 팽이버섯도 넣고 치킨카레를 한 냄비 끓였다. 며칠 카레를 먹을 것이다.
저녁을 일찍 먹고 있었더니 4.3모임 왕언니가 전화를 했다. 왕언니네 어머니가 쓰시던 미싱을 물려받기로 해서 우송비를 알아보고 전화를 한 것이다. 옛날부터 쓰던 업무용 발 미싱이라 커서 우송비가 새로 사는 것보다 비쌀 것 같단다. 그건 그렇고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북미 정상회담에 관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왕언니께서는 사회정세에 관심이 있어서 뉴스를 챙겨 듣고 공부도 한다. 그런데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서 일본이 훼방을 놓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 말을 했더니 깜짝 놀란다. 일본 매스컴에서 제대로 보도를 하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정말로 몰랐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움직임에 대해서 자세히 보도를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했더니 일본 상황에 대해 기가 막혀한다. 일본이 너무 이상해졌다고 도대체 일본이 어떻게 되느냐고 걱정한다.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일본도 태도를 바꿔야 하니까, 북미 정상회담에 기대한다고 했다. 북미 정상회담 결과가 어떻든 한국과 북한은 화합하는 길로 갈 것이라고 했다. 다른 나라들이 어떻든 한국에서는 북한과 관계를 개선해서 화합하는 길로 가는 걸 돌이킬 수가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지방선거는 조용하고 많은 사람들이 숨죽이고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하기를 한마음으로 기원하고 있다고 했다. 왕언니가 정말 다행이다. 남북이 사이좋게 화합해 나가야지. 어서 빨리 통일이 돼야지 한다. 통일은 섣불리 말을 못 해도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남북이 등 돌리고 적대하는 관계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을 보면서 한국사람들이 북한을 몰랐구나. 북한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싶고 북한과 같이 해 나갈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기 때문에 멈출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어떻든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각성한 상태라, 정치가 더 나빠질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더니, 일본은 어떻게 되느냐고 한숨을 쉰다.
일본에서는 전문적으로 연구라도 하지 않는 이상, 일본정부가 북미 정상회담에 유일한 훼방꾼이라는 걸 모른다. 뉴스를 챙겨서 듣고 한국을 좋아하며 공부를 하더라도 남북이 사이가 좋아지는 걸 싫어하며 방해한다는 걸 전혀 모른다. 한국에서 보통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일본에서는 모른다. 양식있는 사람들의 건전한 상식으로 설마 그렇게 하랴 싶은 것이다. 당연하다. 그런 문맥을 전혀 모르는 보통 일본 사람이 들으면 한국사람들이 '피해의식'에 쩔어 있다고 할지 모르겠다. 일본의 속내는 그렇게 교묘해서 일본 사람조차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왕언니가 일본 사회가 너무 흉흉하니까, 나에게 조심하라고 한다. 지금 일본사회 분위기로는 한국 여자라고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 재일동포들이 일본에서 잘도 살아왔다고 본다.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