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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생활

산책길에 복숭아꽃

오늘 동경은 최고기온 17도, 최저기온 3도로 일교차가 심한 날씨였다. 집에 있으면 그다지 따뜻한 줄 몰랐는데 밖에 나갔더니 아주 따뜻했다. 

 

이번 주 갑자기 한겨울 날씨가 중간에 끼는 바람에 요일 감각이 이상해지고 말았다. 오늘이 목요일인 줄 알고 금요일까지 우체국이 열려있으니 내일까지 시간이 여유가 있는 줄 알았다. 휴대폰을 봤더니 오늘이 금요일이다. 내일은 가까운 우체국은 문을 닫는다. 내일까지 할 예정이었던 일을 오늘 중으로 처리해야 한다. 

 

대학에서 빌린 비품을 반납하기 위해 우체국에 갈 필요가 있다. 얼마 남지 않은 3월이라, 다음 주에도 볼 일이 많다. 나는 우체국을 잘 이용하고 우표도 자주 사기에 항상 우표가 남는다. 남는 우표를 처분할 겸 우표로 택배를 보내고 싶으니까, 우체국을 통해서 보내야 한다. 노트북과 아이패드 등을 넣을 수 있는 상자가 집에 있는 줄 알았더니 상자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 필요한 상자 사이즈를 재고 줄자를 가지고 마트에 가서 빈상자를 얻으러 나갈 채비를 했다. 나가는 길에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봤더니, 운이 좋게도 꼭 맞는 사이즈 상자가 하나 있었다. 아, 다행이다. 마트까지 가지 않고 상자를 확보했다. 

 

얼른 상자를 가져다가 완충제를 깔고 노트북과 아이패드를 넣고 빈 공간에 완충제를 채워서 단단히 포장했다. 우체국에서 쓸 우표도 챙겼다. 가까운 우체국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어서 볼 일을 보려면 스트레스만 받고 결국 일도 보지 못하는 사태를 몇 번이나 겪었다. 그래서 무겁지만 짐을 들고 역을 하나 걸어서 편하게 일을 볼 수 있는 우체국까지 가기로 했다. 나가면서 친한 이웃에게 오후 산책을 같이 하자고, 우체국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집에서 나가면서 바깥이 추운 줄 알고 다운 베스트를 입고 나갔더니 예상외로 아주 따뜻했다. 다운 베스트가 더울 것 같았다. 짐을 들고 역을 하나 걸어서 우체국에서 기분 좋게 일을 마쳤다. 친한 이웃에게 전화했더니 눈앞에서 전화를 받으면서 자꾸 구석으로 간다. 내가 뒤에서 쫓아가면서 가지 말라고 했다. 버스 정거장이라서 전화가 들리지 않아서 조용한 곳으로 간다고 한다. 

 

친한 이웃과 강가에 있는 벚꽃이 많이 피는 공원 벚꽃이 어떤 상태인지 보러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농가에서 파는 복숭아 꽃다발과 야채가 조금 남았다. 복숭아 꽃다발이 3개 있어서 공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사기로 했다. 그런데, 친한 이웃이 꽃을 매우 좋아한다. 취미가 정원 가꾸기로 정원에서 딴 꽃으로 사시사철 집에 꽃꽂이를 할 정도다. 벚꽃이 많은 공원에 갔더니 아직 피지 않아서 봉우리가 망울망울 조금 있으면 꽃이 필 것 같다. 벚꽃이 있는 길을 아직 반이나 남았는데 친한 이웃이 복숭아 꽃다발에 꽂혀서 다른 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으로 조바심을 낸다. 

 

복숭아 꽃다발이 있는 곳으로 서둘러 돌아와 보니 한 다발은 팔렸다. 친한 이웃은 복숭아 꽃다발을 나에게 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꽃다발이 아주 커서 둘이 반으로 나눴다. 나는 양파와 비슷한 파도 한단 샀는데 잔돈이 없어서 이웃에게 빌렸다. 일본에서는 3월 3일이 히나마츠리라고 해서 여자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길 기원하는 날이다. 보통은 히나 인형을 장식했다가 이날까지 지내고 정리해서 넣는다. 히나마츠리를 모모노 셋쿠라고도 하는데 복숭아꽃 절기라는 의미로 복숭아꽃 필 무렵의 행사다. 오늘 복숭아 꽃다발을 보니 히나마츠리 생각이 났다. 친한 이웃을 나에게 조금이라도 뭘 해주려고 한다. 히나마츠리가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여겼는데 복숭아 꽃다발과 친한 이웃 덕분에 생각이 났다.

 

일본에서는 보통 손녀가 태어나면 외갓집에서 손녀를 위해 히나 인형 세트를 선물한다. 물론, 딸에게도 선물한다. 엄마의 히나 인형을 대를 물리기도 한다. 보통 결혼하기 전까지 해마다 히나 인형을 장식했다가 히나마츠리를 하고 인형을 정리한다. 그래서 딸처럼 여기는 사람에게도 히나 인형 세트를 선물하기도 한다. 나도 히나 인형 세트를 몇 번 선물 받았다. 지금도 어쩌면 어딘가에 히나 인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옛날부터 전해지는 풍습이라, 결혼하기 전 여성을 여자 아이로 여겼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어린아이에게 한정된 느낌이다. 하지만, 백화점이나 다른 일본 과자 가게 등에 보면 항상 이런 절기와 관련한 장식을 한다. 바쁜 일상에서 그런 장식을 보고 히나마츠리가 다가왔구나 하고 느낀다. 

 

복숭아 꽃다발이 아주 커서 집에 와서 목욕탕에 바케츠에 물을 받아 한 시간 정도 물을 올렸다. 분홍과 진분홍 복숭아꽃에 노란 유채꽃도 하나 있었다. 집에 왔을 때 축 늘어졌던 유채꽃이 물을 올렸더니 생생하게 살아났다. 아직 봄이 오지 않은 방에 복숭아꽃을 꽂았더니 갑자기 밝아지면서 봄이 온 것 같다. 

 

오늘 저녁에는 시금치를 무치고 양파 닮은 파도 데쳐서 된장으로 무쳤다. 미역국에 수제비를 조금 넣고 저녁으로 먹었다. 파가 아주 신선하고 부드러웠다. 보통 데친 파를 미역과 같이 무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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