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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 이야기

황금햇살 일요일

황금햇살 일요일

뜨개질이야기 2012/11/25 13:00 huiya



오늘 동경날씨는 구름 한점없이 맑다. 황금같은 햇살이다.

창밖 나무에 가까스로 걸려있는 나뭇잎이 가끔 생각난 듯이 한잎씩 하늘거리며 떨어진다. 그 모양새가 마치 나 좀 봐, 이렇게 멋있고 우아하게 떨어지고 있잖아 그런 것 같다. 멋있다. 살짝 약이 오른다. 나도 죽을 때, 저 떨어지는 나뭇잎 처럼 곧 죽어도 고고하고 우아하게 떨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 보니, 말이 안된다. 살아있을 때도 고고하지 못하며 우아하지도 못한데 어찌하여 죽어갈 때에 고고하고 우아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황당하지 웃기네. 나뭇잎이 그렇게 웃을 거다. 바람이 불면 우수수하고 단체로 떨어지는 나뭇잎도 있다. 떨어질 때도 혼자가 아니여서 외롭지 않겠다 너 죽을 때 같이 죽을 친구있어, 나에게 자랑을 하는 것 같다. 아니야, 날 때 혼자 나왔으니, 죽을 때도 혼자 가야지


황금같은 햇살이 아까워서 빨래를 하고, 베게와 이불을 널었다. 사실 이불은 안널어도 되는데, 햇살이 아까워서, 잘 때, 햇살을 품고 자고 싶은 욕심에 이불을 널었다. 황금햇살이여, 이불속으로 침투하라.


어제 오랫만에 세미나에 가서 너무 떠들었다. 요코하마에 고도부키라는 곳이 있다. 일용노동자들이 모여사는 곳이다. 나는 거기에 오는 제주도사람들을 20년 이상 연구했다. 어제 세미나에서는 거기서 살며 일하던 필리핀사람이 찍은 영화상영이 있었다. 이 사람도 고도부키에 있었던 필리핀사람을 1988-2011년 동안 찍었다. 책도 몇 권 썼다. 내가 고도부키를 관찰하기 시작했을 때, 카메라로 찍을 엄두도 못냈다. 고도부키는 아주 특수한 곳이라, 보통 세상과는 다른 룰이 있어서 보도하는 사람들도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치외법권적인 특수한 곳이였다. 그러나 인간들이 살아가는 곳이기도 해서, 소소하게 인정이 오가는 곳이였다. 사람들이 아무리 사회에서 낙오자이거나, 범죄경력이 있거나, 가족과 인연을 끊고, 자신의 이름조차 밝히지 않고 살아가더라도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조그만 자유를 느끼는 곳이였다. 나는 여자라서 남자들이 일하는 현장까지 쫗아가진 못한다. 근데 이 필리핀사람은 자신이 일을 하던 사람이라, 일하는 현장도 찍었다. 고도부키에서 일하던 필리핀사람들은 나중에 미국으로 간다. 지금은 미국에서 살고 있단다. 꿈에 그리던 미국에 가도 미국도 경기가 나빠서 그 들에게 행복함을 보장하진 않는다. 그래도 편하게 보였다. 


나도 정말로 오랫만에 내가 고도부키에 다니던 시간을 떠올렸다. 그 찬란했던 시간들 거기에서 만났던 많은 인생들 같은 시기에 고도부키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을 만나니 마치 옛날 동창생을 만난것 같다. 같은 시대, 같은 장소에서 같은 공기를 마셨을 지 모른다는 것 만으로도 반가웠다 


오전에 주문했던 실이 도착했다. 주문할 때 본 색과 약간 다른것도 있다. , 바다를 표현하는 꿈을 보고 싶어서 주문한 색이다. 모래와 자갈과 바닷물, 얕은 바닷물, 깊은 바닷물, 성난 파도가 밀려와 부서진 포말, 겨울바다를 어떻게 표현할까. 꿈을 꿀 수 있겠다. 꿈꾸는 시간이 행복하다.



마음에 든 색은 짙은 파랑색과 터키쉬블루다. 사진보다 색이 더 짙다. 포말도 재미있을 것 같다. 어떻게 내가 그리운 바다를 표현할 수 있을까. 우선 중심이 되는 색을 꺼내 놓았다. 손이 닿는 곳에 실을 놓고 바라보며 손으로 만져가면서 조심스럽게, 바다를 꿈꾼다. 어떤 바다를 그릴까, 실과 대화를 시작한다.



우선은 점심을 먹자, 남은 짜장과 비틀샐러드로 점심을 먹고 황금햇살 오후를 산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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