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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생활

우박이 내렸다

오늘 동경은 아침에 선선했지만,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해서 낮에는 뜨거웠다. 최고기온이 27도라고 갑자기 확 더워졌다. 오전에 외출해서 점심시간에 돌아올 때도 햇볕이 따가울 정도였다. 지역에서 어린이 축제를 해서 거기에 다녀온 것이다. 좀 덥고 피곤해도 쉬지 않고 지금 하고 있는 작업 자료를 프린트할 것이 있어 USB 메모리를 들고 헌책방에 갔다. 헌책방이 편의점보다 프린트 가격도 싸고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은 언덕 위라서 주위에 가게가 없다. 그 흔하디 흔한 편의점도 10분 이상 걸어야 나올 정도로 상업시설과 거리가 있다. 헌책방에서 프린트를 하고 와서 너무 더워서 찬물로 샤워를 하고 냉커피를 마셨다. 그러면서도 낮에 더위 때문에 찬물로 샤워해서 땀을 식히고 냉커피로 배를 식히는 것은 여름에 하는 일인데 5월 초부터 이런 일은 없는데 하고 있었다. 오늘 날씨가 좋아서 아침에 세탁을 하고 싶었지만, 내일도 날씨가 좋다고 해서 내일로 미뤘다. 베란다에는 오늘 벼룩시장에서 산 녹색 오비가 바람과 햇빛을 받고 있을 뿐이었다.

 

외출에서 돌아와 배가 고파서 늦은 점심으로 크로와상을 두 개 구워서 먹고, 요즘 하는 작업을 하려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괜히 몸이 여기저기 아프고 한 일도 별로 없는데 피곤하다. 나는 몸이 무거워지고 괜히 피곤한 것이 날씨가 급변할 징조라는 걸 알지 못했다. 별안간 바깥이 급격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시간이 갑자기 확 지나서 저녁이 된 건가? 왜 이렇게 어둡지? 바깥에 널었던 오비를 안으로 들여놨다. 3시가 되기 전이니까, 바깥이 어두워지기에는 너무 이르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열었던 창문을 닫았다. 비가 오려고 날씨가 갑자기 어두워졌구나 하고 있었더니,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들린다. 돌풍이 불면서 갑자기 콩 볶는 소리가 난다. 콩 볶는 소리보다 더 크게 따닥따닥 유리창에 딱딱한 것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다. 웬일인가 싶어서, 우리 집에서만 나는 소린가 싶어서 집안을 둘러봤다. 집안에는 그런 소리를 낼일이 없다. 다른 방에서 바깥을 봤더니 돌풍으로 창밖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흔들리면서 나뭇잎이 베란다로 막 떨어진다. 잎이 새로 나와서 아직 연한 연두색인데 불쌍하게도 돌풍과 비는 인정사정이 없이 흔들어 댄다. 콩 볶는 소리는 우박이었다. 우박이 커서 유리창이 깨질지도 모른다. 만약에 대비해서 유리창이 깨어진다면 유리조각이 방안에 덜 튀게 침실은 창문을 잠그고 커튼을 내렸다.

 

집안 뒷쪽에 난 화장실 창문도 닫았다. 우박은 삽시간에 내려서 길가와 잔디에도 쌓였다. 베란다에도 쌓였지만, 베란다는 조금 전까지 뜨거웠던 터라, 금방 녹는다. 그것도 잠깐, 뜨거웠던 베란다도 폭우와 우박으로 금방 식은 모양이다. 베란다에도 우박이 쌓인다. 나는 우박이 이렇게 갑자기 많이 내리는 걸 본 적이 없다. 돌풍에 폭우가 내려서 아직 여린 나뭇잎이 많이 떨어져 빗물과 같이 휩쓸려 가고 있었다. 길에도 나뭇잎이 많이 떨어졌다. 비에 젖어서 검은 아스팔트에 연두색 나뭇잎 색감이 더욱 선명하다. 날씨는 난리가 났는데, 연두색과 검은색 색감의 콘트라스트가 예쁘게 보인다. 

 

우박이 좀 잠잠해지고 비가 오는데 베란다에 물을 끼 얻고 청소를 했다. 나뭇잎이 말라서 들러붙으면 청소하기가 더 귀찮기 때문에 일찍 청소하는 것이 좋다. 아직 비가 그치지 않았을 때, 물로 우박과 나뭇잎을 흘려보냈다. 긴 자루가 달린 솔을 빗자루처럼 써서 베란다를 정리했다. 

 

우박이 내리는 동안 갑자기 허기를 느껴서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야키소바와 연어구이다. 연어는 호일에 늘어놓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서 오븐 토스터에 넣었다. 야키소바는 마늘을 먼저 넣어 볶다가 햇양파에 봄 양배추, 생 목이버섯을 따온 것도 넣어서 볶고 면을 나중에 넣고 마지막에 소스를 넣는다. 양파도 달고 봄 양배추도 부드럽다. 연어도 잘 구워졌다.  4시 전이니까, 저녁으로는 아주 일찍 먹은 것이다. 디저트로 요새 감귤류를 많이 먹고 있다. 일본에서도 새로 나온 종류라서 한국에서 뭐라고 하는지 이름을 모른다. 상쾌한 쓴 맛이 있는 게 시거나 달지도 않고 맛있다.

 

조금 있으니까, 비가 그치고 거짓말처럼 날씨가 다시 맑아졌다. 날씨는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 언제 돌풍과 바람에 우박이 내렸나 싶을 정도로 시치미를 딱 뗀다. 우박이 너무 많이 내려서 식물과 농작물에 피해가 크지 않을까 걱정인데, 날씨는 상관이 없겠지. 낮에 기온이 올라갔기 때문에 집안은 더운데 바깥은 급격히 기온이 내려갔다. 온도조절이 어려워서 반소매에 긴팔을 입었다가 창문을 열었다가, 담요를 몸에 감았다가 호들갑을 떤다. 

 

재미있던 것은 날씨가 급변해서 일기예보에는 비가 온다는 것도 없었다. 인터넷으로 날씨를 확인했더니, 바깥은 난리가 났는데 일기예보는 하루 종일 맑음이었다. 일기예보도 웃기네. 일기예보가 변한 것은 나중이었다. 가끔 이런 일이 벌어진다. 최고기온보다 현재 기온이 높다든지 그런 걸 보면 황당하기도 하다. 

 

밤에 작업한 것을 프린트하려고 늦은 시간에 USB를 가지고 나갔다. 쓰레기를 버리고 추워서 다시 들어와 겉옷을 한 장 더 걸치고 나갔다. 공원을 지나고 강을 건너서 헌책방에 갔다. 헌책방은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인데, 늦은 시간에 가는 일은 없었다. 밤에 갔더니 문을 닫았다. 입구에 가서 영업시간을 확인했더니, 아침 10시에 열고 밤은 8시까지란다. 이제는 24시간 영업이 아니구나. 오늘 처음으로 알았다. 다시 좀 걸어서 편의점에 갔다. 늦은 시간이라, 차도 손님도 거의 없다. 프린터가 이상해서 쩔쩔매다가 겨우 프린트를 해서 왔다. 프린트하러 오며 가는 길에 공원을 걷는데, 돌풍과 폭우로 나뭇잎이 많이 떨어져서 휩쓸린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거기에 가로등이 연속해서 세 개나 꺼져 있어 그렇지 않아도 나무가 많아서 어두운데, 불이 없어 어두컴컴해서 무서웠다. 치한이나 변태 같은 이상한 사람이 나오기 때문에 연속해서 가로등이 꺼진 구간은 위험하다. 그 구간만 연속해서 가로등이 고장 났다는 것은 이상하다. 설마, 치한이 그런 짓을 한 것은 아니겠지? 이 조용한 동네에서도 가끔 치한을 보기 때문에 그런 상상을 한다. 봄은 치한과 변태의 계절이기도 하다. 바깥은 기온이 내려가 추워서 다시 겨울이 된 것 같았다. 집안을 아직도 낮의 더운 기운을 간직하고 있어서 따뜻하다.

 

날씨가 너무 변화무쌍한 하루였다. 날씨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날씨처럼 변화무쌍한지도 모르겠다. 돌풍이나 우박은 아직 여린 나뭇잎이나, 꽃과 농작물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느티나무나 식물, 농작물과 우리 같은 사람에게도 언제 우박이 내릴지 모른다. 느닷없이 닥치는 재난에 잘 대처하고 건강히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은 날씨였다. 그렇게 잘해나갈 자신이 없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살려고 노력할 뿐이다. 

 

부엌에 쌓인 감귤류, 지금 엹은 노랑색이 달거나 시지않고 상쾌한 쓴 맛이 나서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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