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뜨개질 이야기

도구가 왔다

2016/05/28 도구가 왔다

오늘 동경은 덥거나 춥지도 않은 흐린 날씨로 저녁이 되어 햇살이 빛났다. 나는 집에서 쉬느라고 어슬렁거리며 지냈다. 뇌빈혈로 쓰러진 다음은 조심하느라고 요가도 쉬고 산책도 안 했다.. 점심을 먹고 피곤해서 잠을 자려고 침대에 들어가서 잤다. 그러나, 편하게 잘 수가 없었다. 가위에 눌리고 평소에 느끼던 스트레스의 영향으로 깜짝깜짝 놀라서 깼다. 이럴 때 보면, 현실에서는 억지로 웃고 지내던 것이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지난주에 독일 아마존에 주문했던 바늘대 세트가 도착했다
. 나는 주로 대나무로 만든 일본제 바늘을 썼다. 지금까지 금속제 바늘을 써서 좋은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호주에 갔을 때, 금속제 바늘을 써보니 대나무 바늘과는 다른 느낌으로 수월하게 짜이는 느낌이 들었다. 큰 수예점에 갔을 때 같은 브랜드를 보고 점원에게 물었더니, 내가 써봤던 바늘이 짜기가 쉽다고 아주 인기가 있단다. 동경에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사기로 했다. 독일 인터넷에 주문했더니 일본에서 사는 것에 비해 송료를 포함한 가격이 반액이었다. 사기 전에 체크했지만, 사서 봤더니, 내가 자주 쓰는 바늘 호수는 약간 미묘하다. 바늘호수가 일본과는 좀 다른 것이다. 그리고 연결하는 줄이 짧은 것도 필요한데, 소매를 짤 때 필요한 짧은 것이 들어있지 않다. 어쩌면 세트가 아니라, 필요한 것만 하나씩 사는 것이 더 경제적 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주 쓰지 않더라도 바늘을 세트로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유용하다. 아주 자주 쓰는 것은 하나씩 별도로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인터넷으로 수집한 정보를 종합해서 일본제 바늘세트도 하나 더 살 예정이다. 좋은 도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작업을 원활히 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요즘 잘 쓰는 아주 가는 모헤어 실은 짜기가 힘들고 어렵다. 바늘대에 따라 작업을 좀 더 원활히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주 쓰는 바늘은 대나무 윤기가 벗겨졌는지 요새는 실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좋은 도구는 작업을 같이 하는, 어디를 가도 데리고 다니는 친구와 비슷한 존재다. 내가 중학교 때 가졌던 바늘세트를 지금도 가지고 있다. 40년 이상 지났다는 걸 오늘 알았다. 현재 쓰는 것은 다른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일본제 좋은 바늘 세트를 가지고 있을 수 있던 것은 제주도가 일본, 특히 오사카와 아주 가까웠기 때문이다. 특히, 클로버를 제조하는 곳 가까이에 제주도사람들이 많이 살았고 봉제에 관련된 일에 종사한 인연이 엮여있다. 제주도 여성이 일본에 가기 시작한 것도 해녀로 시작해서 서쪽에서는 방직공장에서 일하러 간 것으로 시작된 역사가 있다. 이렇게 작은 도구 하나가 내 손에 들어올 때,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게 씨실과 날실로 짜여진 관계가 숨어있다

뜨개질을 시작한 것이 대바늘이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 한림수직 꽃무늬 모티브 숄을 짜는 뜨개질 알바를 했다. 한림수직 알바는 꽤 괜찮게 돈을 받았다. 당시는 명품이라는 말도 쓰이지 않았지만, 어린 내가 봐도 한림수직에서 짜낸 아란 무늬 스웨터나 담요, 수직등은 아주 훌륭한 것이었다. 이시돌목장에서 양을 키워서 양모 생산에서 실을 만들어 완제품을 만들었던 한림수직은 천주교에서 운영했던 자랑스러운 지역산업이기도 했다. 지금은 한림수직이 문을 닫았지만, 한림수직 뜨개질을 했던 기술과 전통과 명품을 만들었다는 자긍심은 지역에 남아있다

대바늘로 짜기 시작한 것은 20대가 되어서다. 대바늘도 어렸을 때는 양초를 바르면서 집에서 만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라운드로 된 대바늘을 주로 써서 이전에 썼던 바늘들은 상자에 들어있다. 뜨개질은 독학으로 시작했지만, 가족이나 주위 환경이 뜨개질 레벨이 아주 높은 문화적 배경을 지녔다. 지금도 독학이라 작업효율이 좋은 편이 아니다. 살아가는 것이 그러하듯 뜨개질 또한 효율이 중요하지 않은 면이 있다. 새로 온 도구는 친한 친구가 될지 궁금하다



'뜨개질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흘러라, 강물  (0) 2019.06.04
토마토 천사  (4) 2019.06.03
리폼  (2) 2019.01.07
봄날?  (0) 2018.12.29
봄을 기다리며  (0) 2018.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