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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 이야기

수국 혁명을 기리며

2015/06/17 수국 혁명을 기리며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흐린 날씨였다. 지난주 월요일부터 장마철에 들어서서 장마철 특유의 습기가 많고 끈끈하게 더운 날씨이기도 하다. 오늘은 아침에 1교시가 있는 날이지만, 평상시와 다름없는 시간에 나갔다. 1교시를 마치고 다음 주 준비를 하고 나오려고 했더니 자료가 든 USB를 잊고 갔다. 대충 마치고 도서관에 들러서 책을 반납하고 다시 두 권을 새로 빌렸다. 내일 여성학시간에 다룰 성폭력에 관한 책도 있어서 학생들에게 소개하려고 빌렸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오고 싶었는 데, 바깥을 보니 비가 올 것 같이 비구름이 시커멓게 몰려있다. 우산을 들고 가지 않아서 비가 오기 전에 일찌감치 돌아오기로 했다

도서관을 나오자 후드득 빗방울이 비춘다. 비가 오면 그냥 맞을 작정으로 항상 걷는 길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 비가 오기 직전에 나는 냄새가 훅 올라온다. 빗방울이 굵어서 발걸음을 서둘렀다. 내가 젖는 건 상관이 없지만, 가방이나 책도 젖으니까… 약간의 비는 맞아도 되지만, 가방이나 책이 젖을 정도면 곤란하다. 그런 와중에도 대나무숲을 지날 때, 땅에 떨어진 오디를 세개 주었다. 전에는 짙은 보라색이었는 데, 오늘 본 것 들은 빨강색이다. 먹어보니 맛도 좀 다르다. 짙은 보라색이 더 맛있다. 오디나 무도 여러 곳에 있지만, 각기 맛이 다르다. 대나무숲 근처에 있는 오디가 가장 달았다. 빨강색은 좀 끈기가 있는 데, 별로 달지 않았다. 대나무숲을 지날 때는 항상 대나무가 부딪히면서 소리가 난다. 낮에도 깜짝 놀라니까, 밤이면 무서울 것 같다

공원 가까이에 있는 농가 마당에 콩과 오이, 양파와 감자가 놓여있었다. 콩과 오이를 사고 싶었지만, 백엔짜리 동전이 하나밖에 없어서 콩만 샀다. 비는 어느새 그쳤다. 강을 건너기 전에 초등학교 옆에 매실나무가 있는 곳에 매실이 떨어져 있다. 지나치면서 땅에 떨어진 매실을 주어서 비닐봉지에 담았다. 요새 길가에 떨어진 매실을 주어다가 설탕에 절인다. 오늘도 조금 줏어서 들고 걷는다. 우체국을 향하는 길에 중학교 옆을 지나는 데, 거기에는 작은 매실이 떨어져 있었다. 작은 매실도 귀여우니까, 줏었다. 요새는 길을 걸으면서 오디를 수확해서 먹고, 매실도 길가에서 주어서 수확한다

헤이트 스피치로 인해 몸과 마음이 손상되어 집에 틀어박혀 지내다 보니 어느새 수국이 만발하고 접시꽃과 치자꽃이 피었다
. 수국은 비오는 날이 예쁘게 보인다. 수국을 보려고 좀 걸었다. 갑자기 생각난 것은 ‘수국 혁명’이라는 데모가 화제가 되었을 때, 웬일인지 주변에 지천으로 미어지도록 피어 있던 수국들을 사정없이 잘라냈던 것이다. 계절이 되면 수국이 만발해서 주변이 아주 아름다웠는 데, 수국이 잘려 나가서 경관이 어두침침하게 바뀌었다. 나는 친구에게 ‘수국혁명’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했더니, 친구는 가볍게 흘려듣고 웃고 있었다. 나중에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고… 국가권력이라는 것이 참으로 무섭다. 데모에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고 죄 없는 꽃을 잘라내다니… 등에 짊어진 가방이 무거워서 허리가 아파온다. 옷차림도 산책에 적합하지 않다. 집에 가야지…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입었던 옷을 손빨래해서 널었다. 콩을 데쳐서 점심으로 먹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요리를 했다. 닭날개를 조리고, 잔새우를 넣어 애호박을 볶았다. 황태도 무쳤다. 북어무침은 처음했지만, 인터넷을 검색해서 양념장을 만들었다. 처음으로 했지만, 이외로 맛이 꽤 괜찮다. 나는 요리에 전혀 자신이 없는 데, 내가 만든 걸 먹은 사람들은 맛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음식이 진짜 맛있는 게 아니라, 듣기 좋으라고 한 말로 알고 있었다. 아니, 웬만한 것은 맛있게 느끼게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편인 줄 알고 있었다. 요새는 내가 음식을 나름 맛있게 하는 편일까 생각한다. 아니다. 내가 요새 쓰는 양념이 좋아서 맛이 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음식을 한 경험이 적어서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못하는 편인 것은 확실하다

내가 지향하는 음식은 가능하면 요리를 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방법이다. 오늘은 일찌감치 저녁을 해서 먹었다. 양배추에 북어무침과 애호박볶음으로 쌈을 싸서 먹었다. 오랜만에 음식을 해서 그런지 만족스러운 저녁식사였다

사진은 지난 주에 짠 것이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것처럼 흐린 날 아침에 찍은 것이다. 녹색을 들어가지 않은 핑크색과 보라색으로 얌전하게 짜서 십 년 이상 입었다. 그래서 색도 바랬지만, 풀어서 다시 떴다. 이번 주 금요일에 입으려고… 지금도 십년 이상 입어서 싫증이 난 것을 풀어서 다시 뜨는 중이다. 오래 입는 걸 생각하면 실을 사서 뜨는 것이 아주 경제적이다. 싫증이 나면 풀어서 다시 뜰 수도 있고, 자기에게 맞는 것을 뜰 수 있으니까… 수국꽃과 비슷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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