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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학생

반성의 단발

2012/07/28 반성의 단발

 

동경도 요새는 살인적인 무더위가 계속되는 모양이다.

소문으로 듣기에는 그제 동경 시내는 35도가 넘었다든가… 이 건 충분히 간접살인이 가능한 더위이다엽기적인 더위다

다행히도 내가 사는 곳은 시내보다 2도 정도 낮다특히 집 주위는 공원에 둘러싸여 있어서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반사열을 직접 안 받는 만큼 덜 덥다거기에다 나무 그늘에 가리어서 햇볕이 직접 쪼이지 않는다.

드디어 어제로 종강을 했다종강시즌이 다가오면 마음이 복잡해진다예상외로 강의가 잘 먹힌 수업도 있었지만잘 안된 수업도 있다직업이긴 하지만아무래도 교육에 관여하는 사람이라나름 책임도 느낀다강의를 여러개 해도 유난히 애착이 가고 신경이 쓰이는 수업이 있다어제 종강한 과목 중 하나가 그랬다담당하던 사람이 병이 나서 올해 새롭게 내가 맡게 된 강의였다강의를 시작했더니 학부에서 노른자위 같은 학생들이 모였다평균이 높다그리고 학부 다른수업들과 관련해 내가 강의하는 과목에 대해 이해도 깊을 것이다시작은 아주 놓았다그러나중반까지 갔는데 변화할 조짐이 안보인다.  막바지에 이르러 수업에 대한 이해도를 봤을 때나 성적으로 보면 충분히 학습목표에 도달을 했다내가 원하는 것은 시라 바스에 쓰인 학습목표에 도달하거나 성적을 내는 게 목적이 아니다그래서뭔가 부족하다이 정도 레벨 학생들이면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수업이 그냥 수업으로 끝날 것 같다마지막 시간에 학생들이 토론을 하자고 해서 토론을 했다.

이 건 일본학생들이 제일 못하는 건데 학생들이 원해서 한 것이다그 시간을 통해서 한 학생은 자신이 살아갈 방침을 정했다고 했다작년 후반기에 NPO경영 수업을 들었던 학생은 라오스를 돕기 위한 NGO를 설립했다고 한다수업을 할 때자신이 직접 NGO, NPO를 설립해서 경영할 것을 염두에 두라고 했다그 걸 실천한 것이다

일본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자신들의 의사 표명을 거의 안 한다. 자신들의 의사 표명은 수업시간 마지막에 써내는 감상문에 쓴다그 것도 선생을 봐가면서 보통은 적당히 서넉줄을 쓴다나처럼 무서운 사람에게는 뭔가를 써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죽어라고 써야 한다. 학생들은 쓰기도 다 못한다고 인식하지만막상 쓰기 시작하면 잘 쓴다그리고 제한된 시간 안에 집중해서 죽어라고 쓰다 보면 쓰는 것도 늘고 논리적인 사고도 하게 된다물론 거기서는 순발력과 감성표현력이 중요하다그리고 무엇보다도 평소부터 책을 읽고 사고를 하는 기초체력이 있어야 한다. 내 시간에는 적게 쓰는 아이가 400많이 쓰는 아이는 1,000자를 5-10분에 쓴다감상문을 쓰는 종이도 수업이 끝날 무렵에 배부한다그중에는 유학생이 불리하다고 시간을 늘려 달라던 적도 있다조건은 다 마찬가지야그러고 말았다유학생 특혜가 없다그렇기 때문에 다른 수업처럼 성의 없이 서넉줄 끄적인 것은내 수업에서는 단위를 딸 수가 없다아무래도 평균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문제의 강의가 올해 전반기 강의중 성과가 제일 안 좋다. 내가 원하는 목표가 높은 것인지도 모르겠다그래서 고민을 했다어떻게 마무리를 하는 게 좋은 수업으로 끝날 것인지를 답이 안 나온다.

우선은 학생들에게 내가 ‘신뢰’를 얻지 못했던 게 아닐까학생들은 선생을 ‘신뢰’해야 마음을 열고 선생을/강의를 따라온다그래야 뭔가가 일어나기 시작한다그리고 마지막에는 변화한 학생들이 자신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물론나도 지난번처럼 잿더미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리포트를 받는 마지막 시간에 반성의 의미로 ‘반성의 단발’을 하고 갔다비록 삭발은 못했지만삭발 정도로 내가 처음으로 스스로 머리를 잘랐다자폭을 한 것이다

 

수업이 잘 마무리가 될 리가 없다마지막으로 학생들을 혼란의 구렁텅이로 내밀고 미친 듯이 끝났다잘 마무리를 하고 싶었는데… 학생이나동료들에게 말을 해도 안 믿는다그렇지 어떻게 믿겠는가자기 수업이 잘 안됐다고 반성하는 의미에서 삭발을 하는 사람을 믿었다가 큰일 난다. 이 건 미친 사람이나 하는 짓이다그런 의미에서 나는 미친 사람이다. 그런데가끔 미친 사람들이 있다이 게 멘털 클리닉에 가면 치료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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