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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미소지니와 제노포비아

가을학기의 시작

2018/09/12 가을학기의 시작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찬바람이 부는 서늘한 날씨였다. 오늘은 가을학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오늘 강의가 다른 과목 보다 일주일 빨리 시작한다. 여름방학 외국에 나갈 경우 주는 휴강을 했다. 이번에는 동경에서 지내서 시간대로 강의를 시작했다. 학교에 가는 생활로 돌아가야 해서 강의를 가는 연습이다.

 

오늘은 일교시에 첫 번째 강의 자료를 카피할 필요가 있어서 학교에 조금 일찍 갔다. 평소보다 10분 이를 뿐인데 전철에는 학생들이 없었다. 좀 여유로운 기분으로 배부자료를 준비해서 교실에 갔다. 학생들이 어두운 교실에 앉아 있었다. 바깥은 추웠지만 교실은 더웠다.

 

 

수강생에는 봄학기에 다른 과목을 들었던 학생들이 몇 명 있었다. 단위를 따기 위한 기본적인 안내를 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학생들에게 서울에 다녀온 것을 말했다. 4일 태풍 제비의 피해상황을 잘 모르고 5일 저녁에 서울에 갔다. 다음날 6일 새벽 북해도에 강진이 일어났다. 서울에 갔더니 일본에 대한 뉴스가 많았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일본을 걱정하며 안부를 물었다. 이건 당연한 일이지만 좀 놀랍기도 했다. 왜냐하면 일본의 태풍 피해나 지진 뉴스에 달린 댓글은 거의 일본에 대한 '혐오'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아무리 일본이 싫어도 이건 아니다. 도대체 사람들이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혐오' 댓글을 줄줄이 달 수 있나? 하면서도 이런 '혐오'가 한국사람들에게 당연한 감각인가 싶었다. '혐오'라는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라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나도 서울에 가지 않았다면 인터넷을 통해서 댓글을 보고 한국사회를 짐작했을 것이다.

 

오늘 학생들에게 일본에서 본다면 한국사람들이 일본의 자연재해를 입고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혐오'로 공격하는 것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걸 설명했다. 요즘은 인터넷을 검색해서 자신들이 알고 싶은 것을 확인한다. 인터넷에 뜨는 것은 '혐오' 댓글뿐이다. 실제로 만나는 한국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을 걱정하는 내용은 인터넷에 나오지 않는다. 일본을 향한 '혐오' 댓글에 대해 반대하는 댓글을 보기도 힘들다. 이런 상황이라면 일본에서 '혐오'에 반대하는 댓글을 쓸 수 있을까 물었더니 자신이 공격을 받는 게 무서워서 못 할 것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는 인터넷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외부와 접촉한다. 사람들 대다수가 느끼는 너무나 당연한 감정은 알기가 어렵다. 인터넷에 나오는 글을 통해서 다른 사회를 인식한다. 인터넷에 나오는 내용을 넘어서 사람들이 느끼는 당연한 것을 알려면 정확한 지식과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어느 사회에도 '혐오'라는 폭력을 마구 휘두르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사회에도 있다고 해서 '혐오'라는 죄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어느 사회에나 '살인'이 있다고 해서 '살인죄'가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다.

 

일본에서 '혐오'가 맹위를 떨칠 때 일본 사람들이 얼마나 알았을까? 자신들이 '혐오'를 용인하고 있다는 것을. 일본에서 살다 보면 주변국에 대한 '혐오'가 당연한 것이 되어 '혐오반대''혐오 반대'를 할 생각조차 못한다. '혐오'하는 사람들이 무섭기도 하지만, '혐오'가 일상이 되면 너무 익숙해서 '혐오'가 약자를 공격하는 '폭력'이라고도 느끼지 않게 된다. 일본이 아무리 주변국에 대해서, 일본에 사는 '한국인이나, 재일동포'를 향해 '혐오'로 공격했다고 해도 '혐오'로 대응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혐오' 하는 사람들은 아주 잘 알고 있는 확신적 범죄다.

 

일본 사람들이 던진 '혐오'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지만 부메랑을 던진 쪽은 자신들이 '혐오'의 부메랑을 던졌다는 걸 잊고 있다. 일본사람들이 보면 한국으로부터 느닷없이 '혐오'의 날벼락을 맞는 셈이 되고 만다. 일본에서 '혐오'의 부메랑을 던졌다고 한국에서 '혐오'로 돌리면 '혐오'가 가득 찬 세상이 되고 만다. '혐오'는 폭력이고 범죄이기에 '혐오' 하면 안 된다.다른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른다고 해서 내가 '범죄'를 저질러도 되는 것은 아니다.

 

폭력이나 범죄를 우습게 아는 사람들이 있지만, 결코 다수가 아닐 것이다. 그렇듯 '혐오'하는 사람들이 다수가 아닐 것이길 바란다. 인터넷 댓글로 만이 아닌 인간으로서 상식적인 사고와 행동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 그 사회의 실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오해를 하기 쉬운 세상에서 살고 있다. '혐오'를 넘어서려면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일본에서는 그런 '신뢰'가 무너졌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서 자신이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두터운 벽을 쌓는다. 그래서 여러모로 힘들다. 모든 것의 기본은 인간에 대한 '신뢰'가 아닐까 싶다.

 

 

10일 공항에서 전철을 내려 집으로 오는 길에 꽃향기가 나서 둘러봤더니 칡꽃이 많이 폈다. 내가 사는 주변에서 좋은 것은 이런 것을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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