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22 위안부 영화 '침묵’
오늘도 동경은 아침부터 밤까지 거의 온종일 비가 왔다. 요새는 정말로 매일 비가 와서 싫증이 날 정도다. 일기예보를 봐도 맑게 개는 날이 일주일에 하루 있을까 말까 하다. 올해 날씨를 보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사계절에서 우기와 건기로 나뉜 게 아닌가 궁금할 정도다. 매일같이 비가 오니 날씨도 춥고 빨래도 마르질 않아 못 한다. 나는 아직 완전히 개강을 한 것이 아니라, 여름방학이 아직 끝나지 않은 느낌이 든다. 이번 주 내일도 개강하는 과목이 있어 본격적으로 가을학기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시간에 맞춰 학교에 가서 강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매일 비가 와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점점 늦어간다. 정상적으로 강의를 하는 생활에 복귀해야 한다.
2주일 전에 위안부 영화를 보러 갔다. 박수남 감독의 ‘침묵’이라는 영화였다. 아는 출판사에서 일하던 편집자가 메일로 영화 시사회를 보러 간다면 초대권을 보낸다고 해서 초대권을 받아 친구와 같이 갔다. 그 날은 아직 더위가 남아있는 날씨였다. 장소는 신요코하마에서 내려 좀 걸어가는 곳이었다. 신요코하마는 신칸센이 서는 역이라, 내린 적이 있지만, 그 역에서 개찰구를 나온 적은 없다. 친구와 나는 종류가 약간 다른 길치다. 두 길치가 조금 헤매서 장소를 찾았다. 지하에 있는 곳이었다. 초대권을 내는 줄 알았더니, 그냥 들어갔다. 작은 다용도로 쓸 수 있는 무대가 있는 곳이었다. 입구에 감독이 앉아있었지만, 아는 사이가 아니라, 인사도 없이 그냥 들어갔다. 초대권을 보내준 편집자 옆에 앉아 수다를 떨다가 영화가 시작되었다. 상영하는데, 작은 트러블이 있어 상영시간이 약간 늦어졌다.
영화는 편집이 금방 끝난 상태라고 했다. 감독이 위안부 운동에 같이 참여를 했던 분으로 귀중한 영상이 많았다. 영화에는 자막이 많이 들어있고, 불안정한 영상도 많았다. 위안부 운동은 분명히 90년대부터 시작된 것인데, 영화로 보니 아주 오래된 느낌이 들었다. 영화에 나오는 위안부들은 거진 돌아가셨다. 살아남은 분이 얼마 안 된다. 영화가 끝나고 감독이 인사를 하고 관객과 대화를 하는 시간도 있었다. 감독이 80세가 넘은 분으로 병으로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셨다고 한다. 눈도 잘 안 보이고, 혼자서 거동도 불편한 모양이다. 그러나, 목소리는 카랑카랑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분이었다. 영화보다 감독이 훨씬 인상적이었다. 감독이 나름 유명한 분이라는 건 알지만, 영화가 그렇게 잘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시사회 자체가 영화보다 감독을 만나러 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영화도 감독이 주인공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나는 어디까지나 위안부 영화를 보러 갔기에…….
영화가 끝나 감상을 말할 때에 내가 느끼던 점을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내가 느낀 점을 말하면 분위기를 와장창 깰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렇지만, 영화에 기대하고 갔던 사람으로서, 편집한 사람에게 의견을 전달했다. 편집을 잘해서 영화로서 완성도를 높여 달라고, 귀중한 영상이 너무 아깝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어도 이 상태면 권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나로서는 위안부 문제를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에게도 좋은 영화가 되길 바랬다. 아무리 감독 자체가 인간승리여도 감독 자체가 위안부 영화는 아니다. 영화는 영화로서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위안부 운동을 하던 위안부들이 하얀 소복을 입고 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90년 대면 그리 먼 옛날이 아니다. 그 시절에도 하얀 소복을 입고 시위를 했구나, 새삼스럽게 알았다. 오래된 것이 아닌데, 아주 오래된 것처럼 느낀 것도 위안부들이 소복을 입고 있었다는 것 때문인지 모른다. 영화에는 다른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아는 사람도 나왔다. 친구도 자신의 연구와 관련된 증언을 하는 사람도 나왔다고 한다. 감독 자신이 찍힌 것도 많았다. 그런데, 소복을 입은 사람들이 움직임이 아름답게 보였다. 소복이라는 옷이 특별해서 그런지, 화려한 한복처럼 치마를 한껏 부풀리지 않아서 그런지, 사람들 몸과 동작을 더 아름답게 보였다. 거기에는 몸매가 어쩌고 그런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옷과 동작이 어우러진 익숙함과 어울림이 있었다. 위안부 운동에 소복은 아주 효과적인 의상이기도 했다는 걸 느꼈다. 위안부들이 자신들의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지 못한 채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이 세상에 남은 사람들에게 숙제를 남기고 갔지만, 그 숙제는 이 세상에 남은 사람들이 할 수 있을지 조차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영화에서 소복 입은 위안부들이 몸동작, 누군가에 의해 제지를 당하고 거부당하는 모습이었지만, 몸으로 부딪치며 호소하고 있었다. 소복을 입은 몸의 움직임, 너울거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해결을 보지 못하고 다른 세상으로 떠났지만, 이 세상에 한이 남은 것처럼 소복의 잔영이 너울거렸다. 왜 소복의 너울거림의 잔영이 길게 남는지 모르겠다. 위안부들의 남긴 것이 아닐까, 나에게도 던져진 숙제처럼, 소복이 너울거리는 잔영이 눈에 어른거린다.
이 영화는 오늘부터 시작하는 DMZ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고 한다. 좀 더 편집이 잘되어 좋은 영화로서 많은 사람들과 뜻깊은 만남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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