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12 제주바다/겨울, 강정마을
어제는 대학원 후배들이 와서 집에서 술을 마시고 밥을 먹고 갔습니다. 후배들이 올 때 과자를 가지고 와서 아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제가 먹고 살이 찌겠지요.
오늘은 날씨가 맑고 좋아서 그동안 별렀던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무래도 햇살을 받아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사진을 좋아해서요. 오랜만에 바늘대를 잡아 뜨개질을 한 겁니다. 저는 취미로 뜨개질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뭔가를 표현하고 싶을 때, 뜨개질이나 다른 걸로 표현을 합니다. 그러나, 그 걸 그다지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번에 뜬 것은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를 절실히 바라면서 떴습니다.
제 친구가 제주 강정 마을에 미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걸 반대하는 서명, 이메일을 보내자는 걸 받았을 때, 생각했습니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 할 수 있는지. 실은 모른 척할 수 있으면 좋은데, 모른 척 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일본에 사는/살았던 제주도 사람들을 연구해 왔습니다. 곁들여서 ‘80년대 후반 이후 일본에 온 한국 사람들 연구도 했었지요. 한국에서 제주도 사람 수는 아주 적지만, 총인구에 1% 내외인가요? 재일동포 중에 제주도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일동포연구 대부분은 제주도 사람들에 관한 연구였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제주도 사람들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연구를 해왔거든요. 그런데 제주도 사람들은 육지 사람들과 많이 다릅니다. 저도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지만, 국민교육을 받았지, 제주도에 관해 알 기회가 없어서 잘 몰랐습니다. 제주도가 사실 어떻게 다른지 몰랐는데, 실제로 비교연구를 해 보니까 확실히 다르더군요. 우선 재일 제주도 사람들 1세는 제주도와 ‘육지’를 확실히 구별합니다(물론 육지 사람들도 제주도 사람들을 구분합니다). 거의 딴 나라라고 볼 정도로, 세계관이 다릅니다. 이 건 1세들이 경험을 통해 인식한 겁니다. 더불어 말하자면 제주도와 육지 만이 아니라, 1세들이 살았던 시절에는 각 지역이 지역적 특성이 남아 있어서, 많이 달랐을 거라고 봅니다.
저는 블로그를 라디오나 들으면서 대충 쓰는 사람인데, 어쩌다가 제대로 쓰려고 하니 여기저기에 힘이 들어가네요. 몸도 마음도 아픕니다.
서론이 좀 길어졌는데, 재일 제주도 사람들과 제주도, 특히 제주바다와의 관계를 쓰려고 합니다. 어떻게 제대로 쓰일지 모르겠지만, 오늘 날을 잡았거든요.
우선 결론을 먼저 써놓지요. 재일 제주도 사람들에게 제주도는 성지이자, 종교입니다. 단순히 고향이 아닙니다. 그리고 어디에 있든지 바다를 통해서 제주도와 연결이 됩니다. 제주도에서는 바다를 통해서 외부와 연결이 되고요. 제주바다는 제주도 사람들 세계관에 원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주도 해녀는 제주도 사람들의 ‘어머니’입니다. 물론 제주도도 산을 중심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있고, 중산간에서 농사를 지으며, 바다와는 관계없이 살았던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처럼 바닷가에 태어나 자랐어도 바다와 관계없이 성장한 사람도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바다는 제주도 사람들 세계관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주도가 성립된 삼성혈과 관계된 신화도 그 걸 말해 줍니다. 신화는 단순한 상징이 아닙니다. 역사이며 세계관이기도 합니다.
재일 제주도 사람들이 제주바다와 연관된 것들을 조금 소개합니다.
일본에는 제주도 출신 작가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옛날 부터 제주도 사람들이 일본에 공부하러/일하러 왔거든요. 아마 유명한 분으로 ‘화산도’를 쓰신 김석범 선생, ‘피와 뼈’를 쓴 양석일 선생, 요사이는 시인 김시종 선생(원래 제주도 출생은 아닌데, 제주도 사람)이 계십니다. 요즘 몸이 안 좋으신 추사 필체를 쓰시는 시인이자 서도가인 이철 선생도 계시지요.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어도 작가, 시인 등 많이 계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제주도 자연을 잘 묘사한 작가로 김태생 선생을 칩니다. 정읫분이였는데 돌아가셨습니다. 저도 일본어를 잘하는 축에 들지만, 김태생 선생이 쓴 제주바다에 관한 묘사를 도무지 우리말로 옮길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오늘도 책을 꺼내서 ‘바다’를 읽었습니다. 몇 번이나 읽었지만, 몸이 떨리고 눈물이 납니다.
내용은 어린아이가 체험하는 바다와 제주도 자연이라서 아주 귀엽습니다. 작가에게는 제주바다가 이상향이었고, 어머니와 할머니에 연결을 시킵니다. 저는 남자에게 어머니라는 존재가 어떤 건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종교적 대상이라고 봅니다.
김태생선생은 고향이 보고 싶어서 돌아가시기 전에 규슈 고도에 가서 제주도 쪽을 쳐다보고 왔답니다. 거기에서는 날이 맑으면 멀리 제주도가 보인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아마도 선생에게는 아스라이 고향이 보였겠지요. 부인에게 들은 얘기입니다.
석사논문을 쓸 때 인터뷰를 한 할머니는 일본에서 오마츠리를 하는 날에는 바닷가에 가서 불공을 드리더군요. 바다에 제물을 던지면서 바다를 통해서 제주도 자기 동네에 연결이 되라고, 제주바다로 가서 제주도 신에게 연결이 될거라고 하더군요.
같은 동네 할머니는 해녀로 살아오셨는데 그 부근 바닷속은 제주바다와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바닷속에 들어가면 제주도라고 생각한다고, 나이를 먹어서 바다에 들어가지 못해 속상하다고 했습니다.
제 먼 친척 중에는 제주도에서 하던 데로 칠성신(뱀)을 모시고 제주도신을 모시고 있는 집도 있습니다. 제주도에 가서 신을 모셔왔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제주도 사람이라 제주도(한라산) 신을 모시는 건 당연하다는 게 있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성장한 자식들도 당연히 여깁니다. 굿도 합니다. 그리고 나서 바닷가에 가서 작은 배를 띄웁니다.
조총련 소속이어서 제주도에 못가, 몇 십년 만에 고향에 갔더니 ‘개발’로 바닷가가 변했다고 섭섭해하던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그 것도 몇십 년 전 이야기가 되었네요.
저도 뜨개질로 제주바다를 표현해 봤습니다. 제주바다는 수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잔잔히 아름다운 바다, 성난 겨울 바다, 옛날 어머니들이 일하던 바다, 태풍에 아버지가 잠긴 바다, 전쟁을 했던 바다, 해가 뜨고 지는 바다. 뜨개질을 하면서 제가 만났던 제주도를 사랑하고 미워했던 어른들을 생각했습니다. 눈물이 나더군요. 마치고 나니 슬프더군요, 이런 목적을 가지고 뭔가를 표현한다는 게 슬픕니다.
그리고 명치시대에 일본 사람들에게 바다를 침략받으며 지키려고 했던 조상들이 생각이 나더군요. 그 때 명분은 제주도 해녀들은 지금 말로 하면 환경친화적이며 평화적인 어업을 한다, 거기에 기계(나는 ‘무기’와 동의로 봄)를 쓰는 근대 어업이 들어오면 자원이 고갈이 된다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아주 자세한 환경리포트가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100년 이상도 전에 말입니다. 물론 제주도 사람들이 주장하던대로 제주바다는 자원이 고갈되어 갔답니다.
저는 제주바다는 여자들의 바다(몸)라고 봅니다. ‘해녀’들의 바다입니다. 여자의 바다라는 건 아이들의 바다이기도 합니다. 여자와 아이들이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바다가 지켜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워낙 두서가 없지만, 오늘은 특히 더 두서가 없네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고 몸과 마음이 더 아파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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