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27 디아스포라의 섬, 제주도 1
오늘 동경은 고온다습한 날씨로 최고 기온이 32도까지 올라갔다. 지난 주까지 하루 덥다가 춥다가를 반복하다가 이번 주에 들어서 월요일부터 기온이 33도까지 올라가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당분간 날씨는 30도를 넘는 더운 날씨가 계속된다고 한다. 문제는 기온 보다 습도가 높다는 것이다. 오늘도 습도가 78%라는......
제주도에 관한 내용을 쓸 예정이었는데 근거를 가지고 글을 쓴다는 걸 밝히다 보니 다른 내용을 먼저 쓰고 말았다. 한국, 제주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예멘 난민을 둘러싼 인터넷상의 '헤이트스피치'를 보면서 긴급히 글을 써서 올려야겠다. 이하 내용은 1998년에 쓴 내 논문에서 간추린 것임을 밝힌다.
제주도는 역사적으로 '디아스포라'의 섬이다. '디아스포라'는 외부에서 제주도로 유입된 사람들과 제주도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서 '디아스포라'로 살았다는 의미에서 제주도를 '디아스포라'의 섬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도가 '디아스포라'의 섬이라는 것은 제주도의 역사이며, 제주도 사람들 삶의 전통과 문화라는 것이기도 하다.
제주도는 역사적으로 1105년 고려의 군현제에 편입되기 전까지 '탐라'라는 독립국이었다. 고려에 편입된 이후, 몽골의 침략을 받아 끈질기게 저항하지만 1273년에 항복한다. 그 후 약 100년에 걸쳐 몽골의 (식민지로서?) 군마 공급지의 역할을 한다. 제주도가 '유배지'로서 이용된 것도 몽골에서 죄인 200200여 명을 보낸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에 원나라(1271-1368년)의 왕족도 제주도에 유배를 보냈고 명나라(1368-1644년)에 정복당한 운남 왕과 그 아들이 6060여 명의 노비와 함께 제주도로 유배를 보냈다. 원나라나 명나라의 유배지이기도 했다. 고려에서는 고려 말기부터 제주도를 유배지로 썼고 주로 정치범을 유배했다. 조선시대에도 제주도는 유배지였다. 제주도로 유배된 정치범은 원래 중앙정치에서 권력의 중심적인 존재였고 권력투쟁에서 패한 당파의 대표적인 귀족/지식인이었다. 제주도 토착민 문화와 유배된 '디아스포라'가 지녔던 문화가 더해져서 제주도 문화가 형성되어 간다.
제주도를 중심으로 본 '탐라인'의 세계관은 개국신화부터 외부인에 대해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수용적으로 열려 있었다. 섬을 보는 시점은 육지에서 보는 닫힌 폐쇄적이라는 것과 달리 사방으로 열린 바다를 이용한다는 걸 생각하면 열린 공간인 것이다. 제주도는 옛날부터 열린 곳이었다. 제주도에서 발견된 유적과 유물에서 류큐왕국(현 오키나와)와 연나라(기원전 323-222년)의 경제권에 속하며, 활동범위에 속했다고 추측이 된다. 당시 동지나 해양문화권과 해상무역로가 있었다고 한다. 기원전 14년부터 23년까지 유통되었던 화폐가 한반도 북부와 제주도(탐라)를 경유해서 일본 관서지방까지 확대되었던 것으로 봐서 당시 활발한 해운무역을 반영하는 것으로 지적했다. 탐라가 해상무역로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이다.
탐라, 제주도가 해상무역로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은 해상을 통과하는 선박들이 풍랑을 피해 정박하거나 사고로 인해 표류하던 사람들이 흘러 들어오게 된다. 제주도 사람들 또한 외부로 나가 활동영역이 넓었다. 제주도는 토착문화에 외부에서 유입된 문화가 융합되어 제주도 문화가 생성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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