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17 우울한 날들
오늘 동경 날씨는 아침에 흐리더니 낮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기분이 처진다.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나서 일과인 요가를 하고 밥을 먹었다. 닭을 삶은 국물에 무를 넣어서 끓인 국물이 있었다. 내가 집에 있는 주말은 날씨가 맑았으면 좋겠다. 지난 주부터 완전 겨울 날씨가 되었다. 최고기온이 15도에 최하가 5도다. 일기예보를 보면서 실감이 안난다. 그래도 아직 겨울옷은 안 꺼냈는데… 아무래도 겨울옷을 꺼내야겠다.
요새, 나는 좀 우울했다. 어떻게 평범한 일상이 지뢰밭을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매일처럼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내가 민감해서인가. 이 주전 화요일이었다. 아침에 학교에 나가려고 역에 나가니, 전철이 사고가 났단다. 우선은 학교에 전화를 했다. 어쩌면 늦을지도 모른다고… 다행히 빨리 처리가 되어서 전철도 운행이 재개되었다. 사고가 난 역에 정차를 했고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학교에 있었더니, 오후 시간에 또 같은 역에서 사고가 났단다. 투신자살인 것이다. 두 번째 사고는 처리에 시간이 좀 걸려서 학생들이 지각을 했단다. 그 걸 듣고도 무덤덤했다. 학교에서는 강의가 계속 있어 눈앞에 일에 급급해 있다. 그리고 동경에서 전철에 투신자살은 일상생활 범주라, 놀라지도 않는다. 단지 자신이 타는 전철에 영향이 미칠지 아닐지가 주된 관심이다. 먼저 퇴근하는 동료가 문자로 그 걸 알려왔다. 내가 귀가하는 시간에는 전철이 정상운행을 했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내가 귀가길에 탔던 전철이 어느 역에 정차를 할 때, 뭔가 전철에 ‘쿵’하고 부딪쳤다. 나는 그 충격을 느꼈다. 그리고 주위를 본다. 뭐지, 이 정도 충격이면 뭔가 사고일 텐데, 주위 사람들을 보니 별다름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못 느낀 거다. 역이름을 봤다. 그 날 투신자살이 두 건이나 있었던 역이다. 평소에는 급행을 타서 그냥 스쳐 지나가는 역이다. 퇴근길에 완행을 타서 그 역에도 섰던 것이다. 그 순간, 두 번째 사고가 큰 사고여서 현장검증을 하느라 경찰이 나왔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내가 느낀 건 두 번째 사고 시 사람이 전철에 부딪쳤던 느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때 좌석에 앉아있는데 충격이 내 몸통, 복부를 강타했다. 나는 처음으로 인간이 전철에 부딪친다는 충격을 실감했다. 이 정도 충격이구나. 그리고 마음이 아주 복잡해졌다. 사람들이 투신자살을 해가는 전철, 피묻은 선로, 수많은 시체 위를 달리면서 일하러 나가고 들어오는 일상생활. 하루에도 몇 건이나, 투신자살로 사람이 죽어가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다. 그러나 내가 충격을 받아서 기분이 곤두박질치고 상처를 받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상처를 받을 거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위장을 하고,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닌 이상 투신자살은 더 이상 슬프거나,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일에 무감각하게, 무디어져 가면서 하루 하루를 꾸역꾸역 살아간다.
문제는 내가 그 충격이 전해져 왔다는 것이고, 내가 그 걸 느꼈다는 것이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 정신이 없다. 그날 밤은 잠을 설쳤다. 다음날 아침 첫교시에 강의가 있었다. 아침부터 먼 곳 산속에 있는 대학까지 강의를 들으러 오는 학생들에게 차마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말을 하더라도 내 마음이 정리가 되었을 때 한다. 어쩌다가, 강의 중에 한국이 자살율이 일본보다 더 높아졌다고, 한국이 일본형 경제발전 모델을 택해서 일본보다 훨씬 짧은 기간에 경제발전을 했기 때문에 부작용을 더 심각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강의를 듣는 학생 중에 여러가지 병을 앓고 있는 여학생이 있다. 이 건 학생이 말을 해서 안거다. 이 학생은 수업시간 마다 내 말에 자극을 받아 거의 미친 듯이 글을 써 나간다. 나는 학생들이 노트를 하지 않고 메모를 하게 자료를 나눠준다. 그 학생은 내가 하는 말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다. 거기에 뭔가 ‘구원’이나, ‘희망’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리고 수업이 끝났을 때 제출하는 감상문에 쓰여 있다. 한국 자살율이 일본보다 높아졌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로 슬프다고. 일본이나 한국이 자살율이 높다는 것은 정상(적인 발전)이 아니라고, 자신도 평온한 생활을 보낼 수 없는 가정이라서, 학교와 알바, 집을 왕복하는 생활이다. 솔직히 요즘은 왜 살아야 하는지 몰라서 매일 전차에 뛰어들고 싶단다. 나는 그 전부터 그 학생이 앓고 있다는 병을 무릅쓰고 학교에 다닌다는 게, 첫교시부터 내 수업을 듣는 게 어떤 도움이 될까, 생각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졸업장이 어떤 도움이 될까… 내가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학생은 나에게 숙제를 줬다. 학생이 죽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지금까지 학생들 고민을 들어주는 입장에 있다. 이 학생처럼 ‘죽음’에 가깝게 있는 학생은 없었다. 어떻게 간당간당하게 살아있는 학생인 것이다.
다음 날, 출근 길에 한산한 전철에 맞은편에 앉은 이상한 사람 휴대폰 각도가 이상하다. 나는 전철에 앉으면 안경을 벗고 집중해서 책을 읽는 사람이라, 무슨 일이 있어도 잘모른다. 그런데, 낌새가 좀 이상하다. 고개를 들고 맞은편 사람을 본다. 그랬더니, 휴대폰을 창밖으로 돌린다. 그래서 확실히 알았다. 몰래카메라로 나를 쭉 찍고 있었던 것이다. 기가 막혔다. 뭔일이 일어난 건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몸이 후들거린다. 전철이 다음 역에 서니 이상한 사람은 슬쩍 내렸다. 이 걸로 두 번째다. 같은 전철에서 몰래카메라로 찍힌 것은… 이런 걸 당하면 기분이 더럽다. 거의 치한을 당한 것처럼… 내가 출중한 미모도 아니고, 젊은 아가씨도 아니며, 가슴을 노출한 것도 다리를 노출한 것도 없다. 죄가 있다면, 머리가 짧다는 것과 꼿꼿한 자세로 앉았다는 걸 것이다. 아니 나같은 아줌마를 왜 찍느냐고, 여성학 수업이었는데, 엉망진창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수업을 했는지 기억이 없다. 동경이라는 대도시에서 일상적으로 성적인 폭력에 노출된 채로 살아간다.
지난 주는 마음이 허해서 먹는 걸로 채워보려고 과일을 많이 샀다. 마음이 허한 걸 먹는 걸로 채워지는 일은 없다. 마음이 허한데 배를 채우려고 한다. 배라도 채워야, 마음이 허한 걸 덜 느끼지 싶다.
이번 주 수요일에 강의를 통해서 자살을 하고 싶다는 학생에게 나름 응답했다. 일주일 고민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죽고 싶을 거라고, 나도 죽고 싶었을 때, 아무도 가족이나, 친한 친구도 죽지 말라는 사람이 없었다고, 그래서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죽어도 상관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그러나 나는 꽤 인기있는 선생인 것도 같고, 나를 좋아해주는 학생들도 많다, 그래서 수업 중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말을 했을 때, 학생들은 웃더라, 그래도 한 명도 ‘선생님 죽지 마세요’ 하는 학생은 없었다고. 이 건 이상한 거다. 눈 앞에 있는 인간이 죽고 싶다고 할 때, 아는 사람이면 그래도 인사말로라도, 죽지 말라고 해야 한다. 일본은 그렇게 각박한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주위 사람들이 내가 죽기를 바라는 사람도 별로 없을 거라고, 사람이 죽든 살든 관심이 없는 거라고… 그런 살벌한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는 거라고. 그러나, 나는 죽어도 좋을지 몰라도, 주위 사람이 죽고 싶다면, 빈말로라도, 죽지 말라고 말리라고 했다. 그런 말마저도 아끼지 말라, 어차피 인생은 다른 사람이 책임을 질 수 없는 거다.
이번 주 목요일, 그러니까 지난주에 몰래카메라로 찍혔던 날, 이 날도 찍혔다. 겉모양새는 인텔리였다. 화가 나서 잠 나는 척하다가, 책을 꺼내서 얼굴을 가렸다. 그러더니, 내가 눈치챘다는 걸 알았는지, 핸드폰을 치웠다. 돌아오는 길에 역에 내려서 상담을 갔다. 그랬더니, 그런 건 ‘현행범’만 처벌을 할 수 있다. 현장에서 내가 범인을 잡아서 역 사무실까지 끌고 가서 경찰을 불러달라면 경찰을 불러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물었다. 지금까지 몰래카메라로 찍는 일로 상담이 있었냐고, 치한은 있어도 몰래카메라는 없었단다. 피해자가 범인을 잡아서 처벌해 달라고 경찰까지 데려가야 처벌을 할지 어떨지라고 한다. 즉, 치한을 당하는 게 나쁜 거고, 몰래카메라로 찍히는 게 나쁜 거다. 완전 치한과 변태를 양성하는 거다. 세상이 뒤숭숭해도 나는 항상 긴장을 해서 살기가 싫다. 그래서 웬만한 것은 당하고 그냥 산다. 그런데 그 게 계속되면 나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기분이 엉망진창 뒤죽박죽인 채로 우울한 날을 보낸다.
어제는 드디어 학생을 울리고 말았다. 지난주 금요일에 퇴근길에 같이 가는 친구 영어선생에게 스피치 대회에 나가는 원고를 체크해 달라고 부탁을 했던 학생이다. 그 학생은 친구가 먼저 집에 간 걸 모르고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친구에게 들은 말이 있었다. 주말에 시간을 내서 거의 새로 쓰다시피 해서 보냈는데 학생은 잘 받았다는 메일도 없었다는 것이다. 선생들도 사람이라, 걱정도 되고 화도 난다. 내가 학생에게 영어 선생님은 먼저 갔어, 선생님에게 할 말이 있으면 내가 전해줄게, 뭔데? 실은 영어 선생님에게 원고를 체크해 받았어요. 그래, 선생님께 원고를 잘 받았다는 메일이라도 했니? 그랬더니 학생이 갑자기 운다. 원고를 받아서 주최 측에 보내고, 받고 하다 보니 메일을 못했단다. 영어 선생님이 처음에는 영어로 메일을 해 줬는데, 그다음에 일본어로 다시 메일을 보냈단다. 그래서 자기도 영어로 메일을 써서 보내려고 하다 보니 시간이 걸려서 그 걸 못했단다. 학교에 와서 직접 선생님께 고맙다고 인사를 하려고 기다렸단다. 다음 주는 금요일이 쉬는 날이다. 그러니 학생은 영어선생에게 미안해서 눈물이 난 거다. 괜히 내가 울린 것 같은 상황이 되었다.
원고를 받으면 메일로 받았다는 답장이 없으면, 원고가 제대로 전달이 됐는지 아닌지 걱정을 한다. 고맙다고 하기 전에, 메일을 받았다고 메일을 하는 거다. 어떻게 달래서 보냈다.
그 옆에는 요새 나에게 연애상담을 하는 남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요새 이 아이는 밥도 안 먹고 아이가 점점 쫄아간다. 얼굴이 까맣게 타고 몸도 줄어들어간다. 정말로 힘들면 내가 나서니까, 말을 해. 선생님이 있다, 알았지. 밥은 먹어!
요새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고 오늘은 쇼핑을 갔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괜찮은 물건들을 건졌다. 아주 비싼, 80년대 말 런던에서 몇십만 엔을 주고 샀던 브랜드 코트를 샀다. 물론 아주 싼 값에… 내가 비싸게 주고 산 코트는 무거워서 별로 안 입는다. 그래도 비싸게 주고 산 게 억울해서 갖고 있다. 아주 잘 익은 감색 반코트도 샀다. 내가 잘 입는 스타일 반코트다. 같은 스타일로 빨간색, 남색, 검정색, 짙은 밤색이 있다. 빨간색은 너무 껴서 친구에게 물려줬다. 감색은 드물다. 색이 어떨지 몰라서 망설였는데, 괜찮은 것 같다. 그리고, 짙은 그레이 울 원피스, 알파카 소재 베스트와 자수가 놓인 푸른색 셔츠에 아주 유용한 검은색 면 니트를 건졌다. 오랜만에 바겐헌터 실력을 발휘했다. 한꺼번에 옷을 많이 샀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하루가 갔다.
밑에 사진은 요새 내가 입는 원피스다. 아주 기분을 밝게 해 준다.. 이런 원피스를 입고 다녀서 변태에게 시선을 받을 거라고 오해 마시라. 코트 속에 입어서 밖에서는 안 보인다. 내게 아주 잘 어울리는 원피스라는 평을 많이 듣는 옷이다. 주로 해외에서, 외국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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