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02 새해 첫날 보내기
오늘 동경은 맑고 따뜻하지만 바람이 불어서 체감온도는 좀 낮다. 새해 첫날인 어제는 기온이 무려 16도나 되는 포근한 날씨였다. 오늘도 집에서 지내기 좋은 따뜻한 날씨다.
작년 마지막 날 밤에 NHK에서 하는 홍백노래대항을 봤다. 평소에 TV를 안보는 사람이라, 2013년이 어떤 해였는지 알 것 같아서 봤다. 역시 일년을 마감하는 일본에서는 국민적으로 시청하는 프로그램이라, 요란하게 화려했다. 그런데, 계속해서 시청하기가 거북해서 다른 채널을 돌려가면서 겨우 봤다. 내가 모르는 가수가 많은 것은 둘째치고 진행이 전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같은 사회에 몸담고 살고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공감대 형성이 전혀 안된다. 사회도 따로 따로 논다. 유일하게 현실감이 있었던 것은 전철에 투신자살로 인해서 야마노테선이 멈췄다는 뉴스 자막이었다. 나는 내가 이상한 줄 알고 이튿날 친구에게 감상을 말했다. 친구는 라디오로 들었는 데 이상했다고 한다. 일본풍을 강조한 것이 특색인 것도 무리한 느낌이 있었다고… 그렇구나. 나 만 이상하게 느낀게 아니었네.
새해 첫날인 어제는 아침에 일어나서 해돋이를 찍고 다시 침대에 들어가서 전날 밤에 읽던 책을 계속해서 읽었다. 그리고 일어나서 아침을 생각했다. 전날 오랜만에 밥을 하고 배추 된장국을 끓여서, 고등어 된장조림에 배추쌈을 싸서 먹었다. 찬밥과 된장국이 남아있다. 새해 첫날부터 남은 찬밥을 먹으면 서글퍼질 것 같아 떡국을 끓이기로 했다. 미리 생각했더라면 멸치와 다시마를 물에 담가놨을 걸… 그냥 멸치와 다시마로 국물을 내서 떡국을 끓였다. 건데기가 없어서 배추를 좀 넣고 달달한 파를 썰어 넣고 계란을 풀어서 넣고, 김도 구어서 위에다 뿌려서 그럴듯한 떡국이 되었다. 김을 구울 때 약간 망설였다. 전날에 대청소를 해서 부엌이 반짝반짝 빛나는 데, 김을 구우면 김가루가 떨어질 거라서 잠시 갈등이 있었다. 반짝반짝을 유지하느냐, 만족스러운 떡국을 먹을 것인가. 새해다. 떡국을 택했다.
조금 있으니 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새해인사와 일본 떡국(오조니)을 먹으러 오라는 것이다. 그리고 감기에 걸려서 해맞이 등산을 못 가겠단다. 친구가 해맞이하러 등산을 가자고 했던 것, 1월 1일 아침이면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1일 밤에 가서 2일 새벽에 해맞이로 하기로 했던 것이다. 나는 24일에 허리를 삐끗한 터라, 날씨가 걱정이었다. 괜찮을까? 친구가 먼저 못 간다고 했으니 나도 안 가도 된다. 친구에게는 허리가 아프다는 말을 안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신년이라, 친구네 가는 데, 샤워를 하고 옷도 블루계통으로 갖춰서 입었다. 내 논문이 들어있는 책을 한 권 선물로 준비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빌려줄 책도 두 권 가지고 갔다. 가는 길에 우체통에서 연하장을 꺼내서 주머니에 넣었다. 친구는 일본 떡국과 함께 간식처럼 먹으라고 음식을 간단히 준비했다. 떡국을 끓이는 데, 친구가 잠깐 딴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떡이 다 녹아버렸다. 원래는 동그란 떡인 데, 완전히 녹아서 형체도 없이 가라앉았다. 동경에서는 사각형이지만 관서 쪽은 동그란 형이란다. 내가 준 무우로 피클을 만들었는 데, 내가 만든 피클 맛이 더 좋다. 친구가 요리를 잘하는 데, 이건 내가 잘하는 것 같다. 정초에 마시는 술, 오토소도 두 잔 마셨다.
둘이서 떡국과 디저트까지 먹고서 산책 나갔다. 일몰을 보기 위한 산책이었다. 날씨가 아주 포근하고 따뜻하다. 동지가 지나서 어느새 해가 길어졌다. 4시 반이 지나도 밝았다. 해가 지고 난 뒤에 하늘이 전체적으로 핑크와 하늘색이 섞인다. 그 속에 있으면 마치 거대한 목욕탕이나, 바다에 잠겨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제는 안개가 낀 것 같아서 그 느낌이 더했다. 해가 꼴까닥 넘어가고 난 다음에 잔영이 보고 싶었다. 전날 잔영은 오렌지빛이 짙어서 아주 멋있었다. 그 시간을 기다리느라고 동산에도 올라가면서 긴 산책을 했다. 어제는 그다지 짙지 않았지만, 안개가 있어서 몽환적인 느낌이었다.. 집으로 오는 사이에 그 잔영도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날씨가 춥지도 않고 둘이서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집을 향했다.
산책에서 돌아와서 아침에 찍은 사진을 블로그와 페북에 올렸다. 새해인사를 겸해서다. 어둠이 밝아오는 것처럼 밝은 2014년이 되길 바라면서… 저녁에는 다시 떡국을 조금 끓여서 먹었다. 그리고 심심한 드라마를 보고 있는 데, 네팔아이가 전화를 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전화를 잊고 있었다면서, 나도 잊고 있었다고 했더니, 선생님은 왜 맨날 절 잊으세요? 볼멘소리를 한다. 참나, 아니 잊지말고 생각해달라는 건가? 너는 뭐하면서 지내니? 저야, 매일 매일 알바예요. 지금도 알바 중이에요. 뭐라고, 1월 1일에도 영업하는 가게가 있니? 그럼요, 손님이 가니? 손님은 별로 없어요. 그래도 가게는 영업을 하니까 제가 일을 하죠. 일이 끝나면 친구들과 술 마시러 가요. 그래, 좋은 시간보내. 알았어요. 그리고, 책을 읽다가 목욕해서 잤다. 아마도 새해도 그런 날을 보낼 것 같다.
새해를 시작하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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