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07 논문 생활
오늘도 동경은 맑은 날씨였습니다.
요사이 맛들인 아침에 책을 읽는 일도 했지요. 오늘 책은 재미가 없어서, 벌써 내용이 가물가물합니다. 도시사회학인데, 2000년대에 들어서 동경의 거주환경에 관한 것이었답니다. 분석에 분석을 한 건데, 새로운 말도 있고 정보도 있어서 뭔가 새로운 걸 안 것 같은 느낌은 있는데, 마지막에 가서 ‘그래서?’ 에 전체 내용이 한꺼번에 날아갔습니다.
토요일은 주문한 빵을 받으러 가는 날이라, 항상 가는 가게에 갔는데, 빵집에서 잊어버리고 제 빵을 안 가져왔다는군요. 오랜만에 신선한 빵을 먹을 생각에 군침을 흘렸는데, 실망하고 메론빵을 사가지고 왔어요.
본문 내용과 전혀 상관이 없는 명절용 (홍백) 가마보코입니다.
실은 중대한 사실이 발견되어 그로 인한 쇼크로 제 정신이 아닙니다. 그 내용은 오랜만에 고무줄이 안 들어간 보통 옷을 입어서 나갔더니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라 낯선 이물체였다는 겁니다. 특히 중부지방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말미암아 다음 주부터 사회생활에 복귀를 해야 하는데 정상적인 인간으로 복귀할 자신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블로그에 쓸 수다도 없습니다.
오늘 손보던 제 논문 일부를 소개하는 걸로 대신하겠습니다. 저는 원래 한국말로 논문을 쓰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만, 이 논문은 한국말로도 해달라고해서 한국말 버전도 있는 겁니다. 일본어가 오리지널입니다.
はじめに
韓国人と朝鮮族、脱北者を同じ民族としてのみ捉えようとする自民族中心主義への抵抗は、いかにして可能だろうか。
人々の移動がもたらすダイナミックな変動の実態を民族ということに収斂させようとすることに違和感を覚える。その際の民族とは、どちらにとっての民族なのか。マジョリティが考える民族は可変的である。韓国では韓国人、延辺地域では朝鮮族がマジョリティであり、北朝鮮では脱北者がマジョリティなのかもしれないのだ。まず、朝鮮族や脱北者や韓国人を同じ民族だとしよう。しかしながら、それぞれは図らずも地理的・思想・歴史的に分断され、半世紀以上を敵対しながら生き、2世代以上が進んでいる歴史がある。同じ民族という際、分断して生きた歴史を踏まえる必要がある。
また、自分が見たこともない親や祖先の出身地・国へ行くことが帰郷だろうか。たとえば、「帰国事業」という名のもとに、日本・国際機関・北朝鮮の共同作戦によって帰国船に乗せられ、北朝鮮へ送られた在日朝鮮人の多くにとって、それは「帰国」や「帰郷」といえるのだろうか。
はたして、脱北者や朝鮮族は、韓国人と同じ民族といえるのだろうか。そのように捉えることによって切り落とされる人々が持つ多様性こそが、これからの共同体を考える際、絆を創造する際、キーになる点ではないだろうか。異なる人々を排除する強制力として存在する自民族中心主義に抵抗することは、反逆なのだろうか、売国だろうか。民族は人が生まれながらにして選べるものではない。そして民族を生きるために人が生まれたわけでも、生きる訳でもない。民族ということで規定され、封じ込められる強制力への抵抗はいかにして可能だろうか。民族だから受け入れ、民族でないから排除して良いのだろうか。まず、民族という抽象的な概念から出発させようとするのではなく、知らない人々が出会うという具体的な場面から互いを知っていこうとする試みから出発する際、何らかの可能性へ導かれるのではないだろうか。それがたとえ、どのような結論に至るにせよ、試してみる価値は十分にある。なぜなら、朝鮮族、脱北者、韓国人は、同じ民族といいながら、むしろ共通点は、言葉と「同じ民族という幻想」しかないかも知れないほど、あまりにもお互いを知らないのだ。お互いが知らない存在であるということを認めることから始めたい。
ここでは、朝鮮族、韓国人と脱北者に代表される北朝鮮の人々の関係形成をみていくことを通して、同じ「民族」でありながら民族というカテゴリーにとらわれない人々の繋がり方を考察したい。
시작하며
민족주의(에스노센트리즘)를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
한국인과 조선족, 탈북자가 세계적으로 이주하며 살아가는 다이나믹한 실태를 무시하고 단지 같은 민족으로만 보는 것은 바람직한 것일까? 한국인이, 조선족과, 탈북자가 생각하는 민족은 그들이 살아온 역사처럼 서로 다를지도 모른다. 그것은 한국에서 한국인이 마조리티(Majority)이며, 중국에서는 조선족, 북한에서는 탈북자가 마조리티인 것처럼 다르다. 설사 조선족이나 탈북자 한국인들이 선조를 동일시하는 같은 민족이라고 하자. 그러나 삼자는 20세기에 들어서 지리적/사상적/역사적으로 분단되어 반세기 이상을 적대하면서 살아왔다.
마치, 자신이 본적도 없는 부모나 조상의 출신지/ 나라에 가는 것을 귀향이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귀국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일본과 국제기관, 북한의 공동작전에 의해 북송된 재일동포들에게, 북한은 결코 ‘귀국’이나 ‘귀향’이 아니었다.
탈북자나 조선족은 한국인과 같은 민족이라서 같다고 할 수 있을까? 민족이라는 점에만 주목할 때 배제되는 다양성이야 말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할 때 중요한 점이 되리라.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는 강제력을 가진 민족주의(에스노센트리즘)에 저항하는 것은 반역일까, 매국일까? 민족은 선택할 수 없다. 그리고 사람은 민족적으로 살기위해 태어나거나 살아가는 것도 아닌 것이다. 민족을 규정하여 억압하려는 강제력에 대해 어떻게 저항해야 할까? 같은 민족은 받아들이고 다른민족은 배척해도 되는 걸까? 민족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만남, 구체적인 관계형성을 생각할 때 새로운 가능성이 보일 것이다. 그게 어떤 결론에 이를지라도 모색해 볼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조선족, 탈북자, 한국인은 같은 민족이라지만 공통점은 언어와 ‘같은 민족이라는 환상’ 밖에 없을지도 모를 정도로 다르다. 서로가 너무나 다른 낯선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관계를 시작해보자.
본론에서는 조선족과 한국인, 탈북자의 관계를 봄으로서 같은 ‘민족’이지만 민족으로부터 자유로운 관계형성을 고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