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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학생

공백

2014/01/25 공백

 

오늘 동경은 흐리지만 따뜻한 날씨다. 최고기온이 15도나 된다니, 아주 포근한 날씨가 된다. 그러나 흐려서 집안에서는 그렇게 따뜻하진 않다.

어제로 학기말이 되었다. 수업이 다 끝난 것이다. 오늘은 모임이 있어서 신년회에 간다. 거기에 가야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는 것이다. 조금 있다가 준비해서 나가야지.

학기말이 되면, 뭔가 공허감이 든다. 내가 강의를 통해서 뭘 했나,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필요하기나 한 걸까, 이런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제는 어학교실 직원이 그만둔다고 해서 저녁을 같이 먹었다. 내가 그다지 친한 편은 아니지만…다른 선생들이 신경을 안 써서 그렇게 되었다. 괜한 오지랖인가?

오늘은 집에서 열심히 채점해야 하는 데, 기분이 싱숭생숭해서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아 아무 일도 못했다. 오늘은 외출하고 돌아와서 내일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마쳐야 한다. 그리고 짐을 싸야 하니까…

이번 학기말은 학생들의 반응이나 리포트를 보면 아주 좋은 편이다. 이렇게 평균적으로 좋아도 되는 건가 싶을 만큼이나 좋았다. 학생들이 열심히 했다. 학생들이 리포트를 열심히 쓰는 것은 그걸 읽을 선생을 위해서인 모양이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헤어지기가 아쉬운 학생은 사진을 찍고, 감사의 편지를 써오고, 특별히 감사의 말을 하는 등, 보통 있을 수 없는 일이 내 수업에서는 통상적으로 일어난다. 학생들에게는 특별한 수업에, 특별한 선생이라는 것이다. 내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나를 특별하게 여긴다는 이유는 모른다. 나에게도 가끔 특별한 학생이 있고 수많은 평범한 학생이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항상 만나고 헤어지는 걸 반복하는 직업이다. 어리기만 했던 학생들이 성장하고 성숙해져 가는 걸 지켜보는 직업이다. 거기에는 다소 공부를 잘하거나 못하는 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어제 끝난 수업에서 학생들이 선생님과 개인적인 말을 하고 싶다는 요청이 꽤 있었다. 자기에게 메일을 해달라고 메일어드레스를 쓴 학생도 있다. 연락을 하고 싶은 사람이 하는 법인 데, 학생이 나에게 연락을 하라니… 응답 해야 하는 건가?

러브레터를 써온 여학생에게 미리 말을 했다. 내 수업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 심하게 감동하진 않는다고, 기본적으로 답장도 안한다고. 여학생이 선생님 제가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쓴 거니까 괜찮단다.

학기가 시작되면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하는 기분이 된다. 학기말이 되면 장거리 달리기가 끝났다는 것이다. 다행히 부상한 곳도 없이 무사히, 나름 성과도 괜찮았다. 그러나,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라, 프라우고님 말마따나 학생들과 지지고 볶는 일이라, 정이 든다. 학생들도 일주일에 두 번하는 수업일 경우, 거의 가족 같은 분위기가 된다. 가족관계도 삭막한 세상에, 행복한 시간이 된단다. 그렇다고 내가 학생들을 편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은 힘들다. 어제 체크를 했더니, 내 수업에서 만 노트를 세 권이나 썼다는 학생이 수두룩하다. 대학에 들어와서 이렇게 열심히 과제를 하고 공부한 적이 없었단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천재’란다. 실제로는 뭐가 동기부여가 되는지 모른다. 그러나, 학생들이 신나서 빠지면 웬만한 것은 간단히 쉽게 한다. 단지 그 게 그들에게 얼마나 남아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대학 수업이 미치도록 즐거웠다는 기억과 감각이 남겠지… 그렇게 남는 게 학생들에게는 중요한 모양이다. 삭막한 세상, 따분한 수업에서 내 수업은 가장 (힘들면서) 즐거운 수업이였다고 평가한다. 학생들과 개인적인 친근감이 형성된 모양이다. 학생들이 열심히 하면 그만큼 성취감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나를 위해서 한다는 것이다. 웃긴다. 자기네 공분데, 왜 나를 위해서 하냐고? 그런데, 학생들은 정말로 나를 위해서 공부한다는… 학생들이 섭섭해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약간 섭섭한 것은 사실이다. 인간이기에… 그래서 인간의 정이 얽히고설키는 감정의 세계에서 나오는 데, 시간이 조금 필요하고 공백도 필요하다
다른 세계로 갈 준비를 해야지…


요새 찍은 사진이 없어서 전에 찍었던 사진을 올린다. 다행히도 구멍(공백)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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