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23 종강을 하고
오늘 동경은 흐리고 기온도 낮은 추운 날이다. 어제 본 일기예보로는 최고기온이 4도라고 해서 이번 겨울 가장 추운 날이 되지 싶었다. 어제로 학기가 끝났다. 학기가 끝나면 피곤하기도 하지만, 기분이 싱숭생숭해진다. 종강을 하기까지는 온통 신경이 강의에 쏠려있다. 어제는 전혀 예기하지 못했던 사고가 있어서 결코 만족스럽게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강을 했다. 금요일에 종강을 한 수업은 이번 학기에 가장 힘들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던 과목들이었다. 내 과목만이 아니라, 학교 분위기, 학생들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수업을 하기가 힘들었다.
목요일에 끝난 여성학과 노동사회학은 수업 분위기도 좋았고 잘 끝난 과목이다. 학생들도 종강을 많이 아쉬워했다. 여성학을 듣던 학생 중에는 ‘혐한’ 학생이 있었다. 아니다, ‘혐한’ 학생이 많다. 근래 일본 사회 분위기 자체가 ‘혐한’이니까, 당연하다. 단지, 그 학생은 자신이 ‘혐한’이라는 걸 명확히 드러낸 것뿐이다. 나를 향한 눈빛이나 감상문에도 ‘적의’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강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 것에 관해서는 솔직히 썼다. 나도 솔직히 대답을 했다. 그러는 사이에 언제부턴가 학생의 눈빛에서 ‘적의’가 걷혔다. 여름방학때는 섭섭해하기까지 했다. 가을에 접어들어 순한 양이 되어 갔다. 나에게 친밀감까지 느끼는 모양이다. 종강을 하니 많이 아쉬워한다. ‘혐한’감정으로 나에게 ‘적의’를 보였던 학생이 순한 양이 되었다. 그 학생을 ‘혐한’감정으로 분노하게 만든 것은 일본 사회 분위기다. 나는 학생들의 ‘혐한’감정에 휩싸여 있는 분위기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사회학에는 작년 여성학을 일 년간 들었던 학생이 네 명 있었다. 그 네 명의 무조건적인 신뢰에서 강의가 시작되었다. 사실 노동사회학에서 다루는 내용은 학생들 수준에 비해 어렵다. 그래도 학생들은 열심히 따라와 줬다. 그리고, 종강 했더니 학생들이 섭섭해서 어쩔 줄 모른다. 내 강의를 듣고 인간으로서 많은 걸 배웠다는 학생은 자기네 집에 가는 기차표를 주면서 버리지 말고 보관하란다. 뭐야, 황당하네. 작년부터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이 특히 섭섭해서 어쩔 줄 모른다. 선생님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덕분에 좋은 시간을 보냈단다. 가만히 봤더니 학생들이 많이 외로운 모양이다. 강의를 통해서 학생들과 교감하고 공유한다. 그러나, 강의를 하는 사람으로서 학생들이 느끼는 외로움에 대답할 생각은 없다. 그러면서도 휘청거리는 뒷모습이나, 섭섭해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많다. 학생들은 다른 사람들과 교류를 원하지만, 친구가 적거나 없다는 것이다. 강의를 통해서 나와 교류를 했을지 모른다.
강의내용을 잘 전달하고 말고 가 아닌, 학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사람이 더 중요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