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19 성장
오늘 동경은 아주 맑은 날씨다. 최고기온이 7도니까, 높은 편은 아니다. 거기에다 바람이 쌩쌩 분다. 창문을 꽁꽁 닫은 집안에서 지내기는 괜찮은 데, 밖에 나가면 아주 춥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요가를 했다. 요새 추워서 산책을 못해 몸이 둔감하다. 목욕탕 청소를 하려고 욕조에 있던 물로 매트들을 빨았다. 바람이 불어서 매트가 잘 마르겠지. 닭을 삶았던 국물에 기름을 걷어내고 냉장고에 남은 각종 야채를 넣어서 수프를 끓인다. 연근, 당근, 브로콜리, 토마도, 샐로리에 달달한 대파를 넣었다. 냉장고를 비워가야 하기에… 음식물 쓰레기, 과일껍질이 모여서 쓰레기장에 가져갔다. 바람이 불어서 쓰레기통 뚜껑이 다 뒤집어져 있었다. 옷을 내는 쪽에 인형들이 버려져 있었다. 하나만 데려오려고 했는 데, 다 귀엽다. 집으로 데려오기로 했다. 내 생활에 살아있는 걸 부양하기는 힘드니까, 이런 것이라도 ‘입양’하기로 했다. 새로운 가족이 늘어났다. 이런 아이들과 같이 논 적이 없었는 데, 새로운 경험이다. 그런데 귀엽다는...
요새는 학기말이 다가와서 끝난 강의도 있지만, 부산하다. 그리고 학기말에는 어김없이 싱숭생숭한 기분이 든다. 내가 강의를 통해서 뭘 했는지, 그런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가끔 학생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런 질문을 받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스스로가 그런 자괴감이 든다. 일종의 학기말 증후군이라고 본다. 교육이라는 것이, 성과를 알기가 어렵다. 사실 일본 대학은 교육이라는 측면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전문지식을 습득(연구)하면서 전달하는 장인이라는 것이 기본적인 자세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교수들도 선생이라는 입장보다, 같은 길을 가는 선배라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 학문을 하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지만… 학생들은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이 한다는 게 기본적인 입장이라서 여유롭다.. 그러기에 교육이라는 것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 자유로운 전문직이었다.. 그런데 근래는 교육기관이라는 측면이 점점 강해진다. 대학의 자율성이 점점 적어지고, 자유로움도 좁아지면서 대학 다움을, 대학생 다움을 잃어가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대학이 전문학교가 되지는 않는다. 근본적으로 직업학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기말에는 강의를 마감해야 하는 부담과 시험이나 리포트 등이 있다. 학생들도 긴장하는 시기가 된다. 사무적인 일도 몰리고, 다음 학기에 관한 것도 거의 지금 결정이 된다. 그리고 그만두는 선생이나, 옮기는 직원이 있고 여러모로 술렁인다. 나도 다음 주에는 화요일과 금요일에 송별회가 있다. 나는 그런 곳에 잘 안가는 데, 어쩌다가 내가 주도하게 되었다.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지만, 상대방의 지명에 따라서, 상대방이 원한다면 어쩔 수가 없는 법이다. 새로운 길은 가는 사람과 은퇴하는 사람이 있다.
요새 학기말레포트를 채점하고 있다. 레포트를 채점하면서 리포트 과제를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으로 잘 낸 건지,, 리포트를 통해서 강의 성과를 알기도 한다. 괜찮은 데서는 좋은 레포트가 나온다. 그래서 선생을 신뢰하는 학생들은 리포트를 열심히 쓴다. 물론, 읽는 사람도 열심히 읽어야 해서 피곤하고 몸이 아프기까지 하지만, 열심히 쓴 레포트를 읽을 때, 아, 다행이다 싶어진다. 좋은 클래스에서는 평균점수가 높아진다. 서로가 배려하고 끌어올리고 성원을 하기 때문에 평균점수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요새 아이들이 인정머리가 없는 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학생들의 사회성도 성장한 것이다. 나도 학생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마지막까지 같이 가려는 의지에 보답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마감하는 좋은 시간을 같이 보내야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기대하고 있으니까… 원래 이런 것은 강의내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감정적인 것이 강해져간다. 왜 그렇지?
어제는 토요일인 데도, 리포트 채점을 하려고 리포트를 짊어지고 학교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에 가니 시험기간이라, 학생들이 많았다. 우선은 교정해서 보낼 논문을 교정했다. 새로운 책도 좀 읽고 겨우 마음을 잡고 일을 시작한 것은 오후가 늦어서다. 레포트는 지역 연구, 오스트라리안 스터디스에서 낸 리포트가 가족의 역사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그런 것에 관심이 없어서 모르고, 가족 간에 그런 대화도 없어서 과제로 낸 것이다. 그런데, 아주 좋은 과제물이 된 것 같다. 평균적으로 리포트 밀도가 아주 높다. 아주 열심히 썼다는 것이다. 밀도가 높다는 것은 읽는 데도 집중력을 동원해야 한다. 집중해서 읽어도 빨리 읽을 수가 없다. 일의 효율에 비해 피로도가 엄청나다. 밤이 되서 배고프고 피곤해서, 몸이 아파와서 일을 계속할 에너지가 고갈되어 집에 왔다. 레포트는 별로 못 읽었지만…
해가 바뀌면서 학생들 분위기가 변해 있었다. 새해가 돼서 성장을 했나 보다 했는 데, 리포트를 통해서 성장한 모양이다. 리포트에 선생님 이런 리포트를 쓰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것이 쓰여있다. 자신에 대해서,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고…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은 역사를 알게 되었다고… 할머니 형제가, 할아버지 형제나 친구들이 전쟁으로 인해 많이 돌아가신 걸 알았단다. 확실히 성장했다. 선생이라는 사람에게 신뢰가 성장했고, 자신감도 단체로 성장했으니 분위기가 달라진다. 자체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했다고 할까.
NPO매너지먼트론 리포트도 평균점수가 높다. 리포트가 거의 다 좋았다. 난 리포트 점수가 짜다. 그리고 강의가, 쉬운 강의가 아니라서 어려운 강의라도 따라가려는 학생들이 온다. 그래서 평균이 높지만, 그렇다고 평균적으로 좋은 리포트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좋은 리포트는 학생들이 자극을 받아 동기부여가 되었을 때 좋은 리포트가 나온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좋은 리포트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에 리포트는 나와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런데, 학생들 리포트가 평균적으로 좋게 나왔다. 내가 뭘 했는지 모르지만, 고마워진다. 뭐야, 학생들이 나를 키운다는 것인가… 나는 언제 철이 들라나…
입양한 가족의 사진이다. 갈색 토끼 아이는 속을 잘 모르겠다. 나와 눈도 맞추지 않고, 다른 아이들처럼 혼자서 앉지도 못하고 까칠한 건가? 시간이 지나면 좀 알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