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22 일본의 성폭력 리스크 회피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비가 촉촉히 내리는 차분하게 추운 날씨였다. 요즘 관심을 가지고 읽는 책을 읽는 것과 뜨개질을 하는 것을 주로 하고 있다. 기온상으로는 아주 추운 날이지만 어제까지 맑고 따뜻해서 그런지 기온 보다 날씨는 따뜻한 느낌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MeToo와 #WithYou의 태풍이 불고 있다. 요새 거론되고 있는 인물 외에도 다른 '성폭력' 범죄가 고발되고 있다. 주로 여성들이 자신의 실명과 얼굴을 드러내며 용기를 내고 있다.
오마이뉴스에는 남성이 지난날 문단의 선배들로 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성폭력' 피해자는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도 있다. 남성의 경우는 주로 남성에게 '소년'들이 '성폭력'의 피해를 입어왔다. '성폭력' 피해자는 여성과 남성이 똑 같은 증상을 나타내고 같은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남성의 '성폭력' 피해에 대해 기사가 올라온 것은 중요하다. '성폭력'이 '본능'이나, '성욕'이 아닌 '권력'을 배경으로 '강자'가 '약자'를 대상으로 행해지는 '범죄'라는 것을 알려준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MeToo와 #WithYou를 보면 일본과는 좀 다른 양상이 보인다. 청주대에서 '성폭력' 교수에 대한 학생들 대응방식이 일본과는 사뭇 다른 것 같다. 출신대학 선후배나 학생들이 교수의 '성폭력'에 대해 정보를 공유해서 예방적으로 대응했고, '성폭력'에 대한 고발도 '연대'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사건은 일어나지만, 아주 은밀하게 행해진다. 폐쇄적인 연구실에서 학생들이 그런 정보를 공유해서 같이 대응하는 것은 그다지 없다. 예를 들어 문제가 있는 지도교수가 연구실에 나타난다면 눈치가 빠른 학생들은 자리를 피해서 피해를 모면한다. 그런 눈치를 모르는 학생은 남아서 피해를 입는다. 특정 학생이 '이지메'를 당하고 있어도 주위 학생이 민감하지 않으면 그 걸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일어난다. 언뜻 듣거나 보기에는 '이지메'로 보이지 않는 일이라도 해당학생에게는 '이지메'가 되는 걸 모른다. 왜냐하면, 같은 말이라도 문맥을 모르면 뜻하는 의미를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행해진다. 그런 형태가 '이지메'를 당하는 본인에게는 가장 괴롭다. 그래서 같은 지도교수 밑에 있는 학생 각자가 괴로워하는 일이 일어난다. 학생들이 정보를 공유해서 같이 대응했다면 같이 '연대'할 수 있었을까 싶다.
한국에서 휘몰아 치고 있는 #MeToo와 #WithYou에 대해서 지금까지 '성폭력'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는 물론 다른 곳에서도 긴장할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공들여 쌓은 것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예를 들어 '성폭력'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에게 민감한 시선이 쏠리고 있다. 그런 경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가 '성폭력'에 대해 민감해지지 않으면 참으로 많은 것을 한순간에 잃게 될 것이다. 이를 계기로 참된 성평등 사회를 지향한다면 위기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일본에서도 회사나 대학 등에서도 대응하는 방식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전에는 조직을 보호하려고 고발을 한 피해자를 내보내는 식이었다. 조직은 조직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성폭력'을 행하는 사람은 조직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조직에 의해 보호를 받았던 것이다. '권력자'는 조직의 생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조직이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것을 믿고 안심해서 '성폭력'을 행했다. 조직을 위해서는 피해자를 제거하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효율적인 처리방법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조직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실은 '범죄자'를 보호했던 것이다.
근래는 흐름이 바뀌었다. 피해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조직의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바뀐 것이다. 일종의 '리스크 매니지먼트'이다. '성폭력'이라는 '범죄'를 지은 자, 즉 사회윤리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범죄자'를 보호한다는 것은 그 조직이 얼마나 건전하지 못한지를 나타내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결단코 피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 '성폭력'사건이 방치된 것이 드러나면 회사의 이미지 실추로 입는 '손실'이 훨씬 크다.
그래서 회사나 대학도 '성폭력'에 대해서 조금은 성실히 대응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예를 들어, 기업에서 '성폭력' 사건이 적절히 처리되지 않은 것이 드러나면, 기업 이미지가 실추해서 주식가가 내려가고 투자도 받기 어렵다. 우수한 학생들이 그런 기업에 들어가지 않는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지금 학생수가 점점 줄어가는데, 대학교수가 문제를 일으켜서 대학 이미지가 실추하면 당장 학생들이 응시를 하지 않는 식으로 나타난다. 대학을 광고해서 학생들을 끌어와도 모자랄 판에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범죄'를 저지르거나, 문제를 일으킨 교수를 보호하지 않는다. 교육적으로도 그런 '썩은' 대학에는 가지 말아야 한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성폭력'에 조심해서 '성폭력'이 일어날 여지가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런 사람들은 일반 상식적인 사람들 수준인 것이다.
'성폭력'을 행하는 '범죄자'와 일반 상식적인 사람들과 동일시하면 안된다. 예를 들어 청주대학의 '성폭력'교수를 보고 "자기 딸과 같은 또래 학생들에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하는데, 그들은 '범죄자'다. 일반 상식적인 사람이 아닌 것이다.
한편으로 '성폭력'은 중독적이고 상습적인 '범죄'라서 '범죄자'들은 자신들이 잡히지 않고 '성폭력'을 계속하기 위해 이전보다 한층 더 치밀하고 은밀하게 매일 불철주야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며 범죄의 기술을 연마해서 '피해자'를 늘려가고 있다. '치한'들에게 '치한행위'라는 '성폭력'은 '살아가는 보람'이었다. 잡히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가족을 비롯해 사회적 지위 등 모든 것을 잃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만 둘 수가 없다.
'성폭력'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추악할 수 있는지, 추악한 존재인지 알려주는 것 같다. 지금 한국에서 보도가 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빙산의 일각'이며 '새발에 피'다. 앞으로 봇물이 터진듯이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성폭력' 피해에 대한 고발의 쓰나미가 밀려올 것이다. 터질 것이 터지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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