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6 세무서와 치킨 수프
오늘 동경은 아침에 잠깐 맑았다가 오후는 흐렸다. 월요일에는 도서관에 가는 날인데 도서관 카드를 갱신하지 못해서 오늘은 갈 수가 없다. 오늘 해야 할 일은 세무서에 가서 세금신고하는 것이다. 장부를 정리해서 준비했는데 서류 하나가 부족해서 신고하지 못했다. 개강해서 대학에 갔더니 서랍에 작년 원천징수한 것이 있어서 서류가 다 준비되었다. 오늘은 세무서에 가서 신고하는 것이 좋다. 늦으면 늦을 수록 귀찮은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밥을 먹고 준비한 서류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세무서에 갔는데 서류가 부족해서 다시 가는 일이 생기는 것은 싫으니까, 오전에 제출에 필요한 서류를 작년에 신고했던 걸 보면서 작성했다. 점심시간에 가면 오후에 일을 마칠 수가 있다. 이른 점심으로 계란을 삶아서 먹고 낮에 집을 나섰다.
오전에 뉴스를 봤더니 여기자를 성희롱했다는 재무성 사무차관이 자료를 낸다고 한다. 음성 파일이 나와서 자신의 음성이라는 걸 인정했으니 빼도 박도 못해서 사임을 하는 건가?? 생각했다. 세무서에 다녀와서 뉴스를 봐야지 하면서 나갔다.
세무서에서는 괜히 긴장한다. 내가 무슨 탈세하는 것도 아니고 신고하는 내용도 축소한 것인데, 괜히 뭔가 지적당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불안하다. 잘못해서가 아니라, 준비가 부족하면 세무서에 다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세무서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와서 다시 간다는 것은 하루를 허비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기에 스트레스 없이 한 번에 끝내려면 준비를 제대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오늘은 세무서에 사람도 적어서 그다지 기다리지 않고 일을 봤다. 지금까지 30년 동안 신고서를 내가 작성했는데 오늘은 세무서 직원이 작성해줬다. 그래서 일이 빨리 진행되는 옆에서 말을 했다. 30년이나 세무서에 다녀도 지금까지 내가 작성했다고 했더니 원래는 직원이 하지 않는 것이란다. 오늘은 웬일로 직원이 적극적으로 도와준 것이다. 세무서에 가면 긴장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데 편히 일을 봐서 다행이었다. 세무서 직원이 여느 때와 달리 친절하다. 재무성이 국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어서다. 세무서가 재무성 관할이니까, 모리토모 학원에 문서를 조작해서 특혜를 준 것에 대한 납세자의 반감을 무마하려고 친절하게 대응하는 모양이다. 세무서는 세금을 걷는 입장이니까, 항상 친절해야 한다. 이번 환급받을 세금이 83,397엔이다. 작년은 11만 6천 엔이었는데 올해는 적어서 봤더니 원천징수한 세금이 적은 차이였다. 어쨌든 일을 하나 처리했다.
세무서에서 돌아오는 길은 동물원행 전철을 타고 신록을 보면서 산책을 겸해서 걷기로 했다. 평일 낮시간에 전철을 탔더니 빠른 전철에도 불구하고 차량에 탄 사람이 아주 적었다. 동물원 역에도 아이를 데린 엄마들이 조금 있을 뿐이었다. 가깝고 멀리 보이는 신록이 눈부시다. 학교로 가는 길은 변했지만 녹음은 이전보다 더 많이 우거진 느낌이다. 신록이 아름다운 계절에 한 번쯤은 걷고 싶은 길이다. 날씨가 흐리고 쌀쌀해서 걷기에 좋았다.
도서관을 그냥 지나치기가 섭섭해서 카운터에 앉은 직원에게 인사하러 들어갔다.. 친한 직원도 왔다고 한다. 평소라면 오는 날이 아닌데 우연히 와있다고 해서 밖에서 기다리다가 친한 직원과 잠깐 수다를 떨고 나왔다. 오늘 새로 책이 200권이나 왔다는데 도서관에 못 들어가니 궁금하기 짝이 없다. 어떤 책이 왔을까? 다음 주 월요일에는 옮겨져서 없을 것이다. 나는 월요일에 도서관에 가고 친한 직원은 월요일에 쉰다. 그래서 당분간 볼 수가 없다. 직원이 말하길 월요일에 내가 가면 다른 직원들이 안부를 전해 준단다. 허긴 도서관 직원들이 다 나를 안다.
도서관을 나와 삶은 죽순을 사려고 야채 무인판매에 들렀지만 없었다. 마트에 들러서 닭고기와 닭뼈를 조금 샀다. 월요일에는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른다. 내가 사는 닭고기를 싸게 파는 날이다. 감자와 양파도 샀다. 내가 잘 먹는 치킨 수프를 만들 것이다. 집에 와서 세무서에 갈 때 입었던 옷을 벗고 손빨래를 담가놓고 닭고기를 씻어서 가볍게 삶는다. 빨래를 짜서 널었다. 닭고기와 닭뼈를 가볍게 삶아서 다시 씻는다. 큰 냄비에 물을 붓고 닭고기와 닭뼈를 놓고 삶는다. 그동안 양파를 까고 감자 껍질을 벗긴다. 닭고기 냄비에 다시마도 좀 넣는다. 닭고기가 좀 삶아진 듯하면 큼직하게 썬 양파와 감자를 넣는다. 밑간으로 소금과 후추를 친다.
닭고기와 닭뼈를 초벌 삶아서 씻으면 수프가 깨끗해서 기분이 좋다. 오늘도 스프가 잘 끓여졌다.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지 치킨 수프가 아주 맛있게 느껴졌다. 나는 닭고기가 닭날개 팔뚝이 살과 뼈의 밸런스가 가장 좋은 것 같아 주로 그걸 산다. 월요일에 사는 것은 닭날개 팔뚝이 15개 들이다. 거기에 닭 한 마리 분 뼈를 사서 같이 끓이면 수프가 맛있다. 어디까지나 내가 좋아하는 비율이다. 포인트는 닭고기와 뼈로 국물을 내고 수프를 맑게 하는 것이다. 대파가 있을 때는 대파를 넣기도 한다. 스프를 먹다가 나중에 국물이 남으면 수제비를 넣어서 먹기도 한다. 수프만 먹거나 밥이나 국수와 먹어도 잘 맞아서 한번 끓이면 여러 날 먹는다.
오늘 볼 일을 기분 좋게 끝내고 치킨 수프도 맛있어서 좋은 하루로 끝날 것 같았다.
오전에 봤던 재무성 사무차관이 어떤 자료를 냈나, 그만뒀나 싶어서 뉴스를 확인했다. 사죄가 아니라,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있는데도 성희롱 기사를 낸 주간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고 한다. 명예훼손이라고 성희롱을 부정하면서 성희롱당했다는 여기자에게 나와서 조사에 협조하라고 한다. 권력을 이용해서 가해자가 피해자와 언론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음성 파일이 공개되었고 그 음성이 자신의 음성이라는 걸 인정했다. 그래 놓고 성희롱을 하지 않았다니? 성희롱이라는 걸 모르나? 상습적이었다는데, 뭘 믿고 아베 총리 뒷배을 믿고 이렇게 나오는 모양이다. 허긴 아베 총리 친구인 저널리스트 야마구치는 성폭행을 해놓고 공항에서 체포 직전에 상부의 연락으로 체포를 면했고 처벌도 없다. 이번 재무성 고위공직자의 성희롱과 저명한 저널리스트인 야마구치의 성폭행이 아베 정권의 여성관과 도덕관을 적나라하게 알려준다. 어쩌면 하나같이 기가 막힌다.
만약에 한국이라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성희롱이나 성폭행이 '의혹' 수준이 아니라, 객관적인 증거가 있다. 성희롱 음성 파일이 공개되고 성폭행당한 증거를 경찰에 제출해서 경찰이 범인을 체포하려 했는데 아베 정권의 측근이라는 이유로 처벌을 면했다? 정말로 국민이 개돼지로 보이나? 국민은 아니어도 납세자인 내가 보면 그들이 개돼지로 보인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개돼지에게 미안할 정도다.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학생들 보기가 부끄럽다.
정작 수치스러운 일을 한 사람은 전혀 다른데 수치를 당한 사람이 따로 있는데, 왜 나까지 수치스러워야 하는지 묻고 싶다.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국물을 내는 값싼 닭뼈만도 못하다. 닭뼈는 맛있는 국물을 내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준다..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월급 받는 사람들이 부끄러운 짓을 해놓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뻔뻔스럽게 갑질을 하다니 개차반이다. 당신들이 말하는 '아름다운 나라'가 이런 겁니까? 전쟁을 향하고 여성에게 폭력을 행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인지 묻고 싶네요. 봄이 오면 새싹을 내는 잡초보다 못합니다.
신록을 찍은 사진이 아깝지만 눈도 기분도 신록으로 씻고 싶다. 마침 정의의 여신도 사진에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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