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21 피해자성이라는 것
오늘 동경은 최고기온이 28도로 선선한 날씨였다. 오늘도 도서관에 가는 길에 야채 무인판매에 들러서 참외를 사고 야채를 사서 들고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은 도서관이라도 항상 가는 곳이 아니라, 학부 도서관이다. 학부 도서관 앞에 공부하기 좋은 명당자리가 있다. 오늘은 거기서 책을 읽기로 한 것이다. 책을 3권 읽을 수 있었지만 좀 추웠다. 내일 갈 때는 냉방대책이 필요하다.
오늘은 '성폭행' 피해자의 피해자성에 대해서 한국과 일본의 사례를 비교하기로 한다. 일본은 '미투'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일본에 '성폭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회적 환경이 '성폭력'피해가 있어도 고발을 못하게 억압하는 측면이 아주 강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성폭행' 피해는 10%가 넘는다. 실제로는 조사결과에 나온 숫자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치한' 행위라는 '성폭력'이 일상화된 것이라, 포함되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크고 작은 '성폭력'이 자행되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작년 12월 11일에 올린 #MeToo Japan? 에 나오는 이토 시오리라는 여성이 있다. 아베 총리 친구인 저널리스트 야마구치 노리유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피해신고에 고소장을 제출해서 준강간죄로 체포장이 나와 가해자를 체포하려고 나리타공항에서 입국하는 걸 기다리고 있는데, 윗선에서 브레이크가 걸려 뭉개진 사건이다. 두 번째도 수사를 했지만 혐의 부족으로 불기소가 된 사건이다. 일본에서는 형사사건이 기소되면 99.9%가 유죄다. 윗선 개입으로 체포가 뭉개지지 않고 체포했다면,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분명 유죄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토 시오리는 민사에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그 사건의 진상에 대해서 2017년 10월에 '블랙박스'라는 책을 냈다. 그리고 일본 외국특파원협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일본의 '성폭력'에 피해에 대해서 고발한다. 나는 일본에서 귀중한 '미투'라서 이토 시오리의 사건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토 시오리가 일본 외국특파원협회에서 기자 회견하는 영상을 보고 직감적으로, 아, 이토 시오리가 용기를 내서 '미투'에 나섰는데, 많은 사람들의 반발을 사겠구나 했다. 왜냐하면 영상에 나온 미모의 여성은 똑바로 카메라를 보면서 유창한 영어로 말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성폭행' 피해자와는 거리가 있는 똑똑하고 당당한 미모의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에서 갖은 비방으로 린치를 당해서 도저히 일본에서 살 수가 없어서 현재 영국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영국 BBC에서 다큐(Japan's Secret Shame)로 나왔다. 이토 시오리가 한국인이 아닌데도 한국인이라는 댓글도 많다. 이토 시오리를 향한 비방에는 가해자에게 존칭을 쓰고 경어를 썼다는 게 있다. 자신을 '성폭행'한 상대에게 그럴 수 없다는 억지다. 만약에 이토 시오리가 사회적 지위가 높은 가해자에게 존칭과 경어를 쓰지 않는 말투였다면 그것도 꼬투리가 잡혔을 것이다. 실은 말투가 어쩌고 국적이 저쩌고는 사실관계와 상관이 없다. 일본에서는 무슨 사건만 있으면 한국인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한국인 여성은 '성폭행' 당해 싸다는 것이다. 사회 통념상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와 연령이 훨씬 높은 남성에게 존칭에 경어를 쓰는 것은 당연하다. 국적이나 말투와 '성폭행' 피해와는 상관이 없다. 전혀 상관이 없는 걸로 피해자를 공격하면서 가해자를 보호했다.
공격하는 이유에는 취직을 부탁하려고 만나서 육체관계를 맺어 놓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 보복을 한 꽃뱀으로 매도한 것도 있다. 지금 세상에 일본에서 '미투'를 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데, 가족이 다 털리고 자신의 인생만이 아니라, 가족들 생활까지 위협을 받는데 그런 보복 감정으로 자신과 소중한 가족들 인생까지 걸지 않는다. 이것은 김지은 씨도 마찬가지다. 불륜을 '미투'했다고 하는데, 불륜에 자신과 가족들의 인생까지 걸지 않는다. 일본이나 한국에서 '미투'로 무슨 영화를 얻는다고 꽃뱀이나 불륜이 '미투'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성폭행' 피해자인 이토 시오리는 왜 그렇게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을까, 피해자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성폭행' 피해자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죄인'과 마찬가지다. 어느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야 할 여성이 카메라를 직시하면서 영어로 '성폭행' 피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죄인'이 어디서 감히 함부로 눈을 똑바로 뜨고, 많은 일본 사람들이 콤플렉스를 느끼는 유창한 영어로 외국인 기자를 향해 일본(아베 정권?)의 '치부'에 대해 떠들 수 있다는 말인가? 가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관계와 상관이 없는 건방진 여성에 대한 '괘씸죄'인 것이다. 자신들의 콤플렉스를 자극받은 넷우익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총공격을 나서지 않았나 싶다. 이토 시오리로 인해 자신들이 공격받는 것처럼 느꼈다는 것이다. 괘씸하다는 것이나 건방지다는 것도 다 자의적이다. 자신들이 우월한 입장에서 보는 것이다. 이토 시오리의 용기 있는 고발은 일본 사회에 대한 도전장이다. '성폭력'을 당해도 피해자가 울기만 해야 하는 사회에 대한 도전장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두려웠을 것이다. 어느 구석에 찌그러져야 할 '죄인'이 눈을 똑바로 뜨고 유창한 영어로 세계를 향해 일본의 '수치'를 고발한다는 것이........ 김지은 씨의 사건도 외신으로 세계적으로 널리널리 알려졌으면 한다.
나는 일본에서 '미투'를 한, 그것도 아베 총리의 친구를 상대로 할 수 있었던 이토 시오리에 주목했다. 왜냐하면 일본에서는 암묵적으로 '성폭력'을 고발해도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당해서 상처를 입기 때문이다. 즉, '성폭행'을 당해도 입 다물고 찌그러져 있으라는 것이다. 이토 시오리도 피해신고를 했을 때, 경찰서 유도 연습하는 곳에 데려가서 매트 위에 누워서 사람 크기의 인형으로 어떤 체위로 당했는지 재현하라고 했다고 한다. 경찰들은 여럿이 서서 그 걸 지켜보고...... 피해를 알기 위해서라고 하겠지만, 너무나 변태적인 발상이라고 본다. 피해 여성에게 참기 힘든 굴욕이었을 것이다. 피해자가 아니라도 참기 힘든 굴욕이다. 이런 내용은 여성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더라도 경찰에 신고하면 이런 2차 피해를 당한다는 걸 알려준다. '성폭행' 피해를 신고하지 말라는 시그널이다. 가해자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시그널이다. 사회는 가해자 편이라는 것이다.
이토 시오리가 '미투'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일찍부터 미국에서 학교에 다녔기 때문이 아닌가 본다. 아마, 일본에서 쭉 교육을 받았더라면 '미투'를 할 수 있었을까? 거기에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할 수 있었던 것도 그녀가 저널리스트로서 카메라를 향해 뉴스를 전하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도저히 '성폭행' 피해자로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원래 '성폭력'은 상식적 범위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범죄를 상식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는 피해자이지 '죄인'이 아니다. 특히 '미투'를 할 수 있는 여성들은 피해자 중에서도 용감한 여성들이다. 그렇기에 더 사람들이 원하는 피해자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사람들이 원하는 피해자의 모습이라면 동정을 사겠나? 아닐 것이다. 피해자의 모습을 연출한다고 가증스럽다고 할 것이다.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성폭행'을 한 파렴치한 가해자인데, 권력을 등에 없고 '성폭행'을 한 가해자를 이상한 논리로 감싸고 사회가 옹호하고 있다.
한국에서 김지은 씨를 보고 피해자답지 않다는 해괴한 논리를 편다. 피해자답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나는 '성폭력' 피해자의 상담을 해왔다. 피해자들의 특징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한다. 자신들이 '성폭력' 피해자라는 걸 가장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은 피해자 자신이다. 지금도 거의 대부분의 피해자는 그렇다. '미투'를 한 여성을 자신들의 원하는 피해 자상이 아니라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어 린치를 하고 있다. 오죽하면 자기 나라에 살지도 못하고 외국에 피신을 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일본 사회가 어디를 향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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