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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생활

부추꽃, 작은 별들의 모임

오늘 동경은 최고기온 30도, 최저기온 21도였지만 습도가 높아서 후지덥근한 날씨였다. 어제 낮잠을 많이 자서 밤에 잠을 못 자고 오늘 아침 늦게까지 잤다. 지난 목요일 병원에서 항암 치료하는 링거를 꽂은 채 집에 와서 오늘 낮까지 맞고 마지막 처치를 스스로 하고 바늘도 뽑는다. 날씨가 따뜻한 탓인지 링거가 예정시간보다 일찍 끝나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직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마무리하는 약물을 주입하고 처치해서 바늘을 뽑았다. 

 

늦게 일어나 보니 일 관계 문자도 많이 와 있어 눈을 비비면서 읽었지만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건 세수를 하고 아침도 먹고 정신 차리고 봐야 할 것 같다. 마침, 조카도 문자를 보내 문의가 있었고 아침을 먹었느냐,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라는 등 걱정하는 마음으로 하는 잔소리도 있었다. 어제 내가 보낸 부추꽃 사진에 대한 반응으로 자기네 뒷마당에도 부추꽃이 폈는데 부추꽃이 예쁜 줄 몰랐다는 사진으로 시작되었다. 늦은 아침에 연달아 집중해야 하는 일이 있다 보니 벌써 일을 한 느낌이 들었다. 우선, 늦은 아침을 먹는 걸로 시작하자. 

 

아침을 먹고 컴퓨터를 켜서 날씨를 봤다. 오늘은 맑았다가 밤에 비가 온다고 나온다. 일본을 횡단하는 태풍 14호 난마돌의 영향으로 오늘 밤부터 비가 오기 시작해서 내주 수요일까지 매일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청소하고 침구류를 빠는 날로 정했다. 태풍으로 비가 오면 습도가 높아서 불쾌한 환경이 되기에 청소를 하면 그래도 불쾌감이 적은 느낌이 들어서 태풍이나 비가 많이 오기 전에 청소를 해두고 싶다. 내가 난마돌을 맞는 자세이기도 하다. 이른 아침부터 없는 집중력을 동원한 관계로 벌써 피곤한 느낌이었지만 청소하고 현관에 놓는 작은 카펫도 빨고 침대 위에 까는 패드, 청소를 마친 걸레 등을 빨았다. 작은 실크 카펫은 목욕탕에 펼쳐서 비누칠을 해두었다가 솔질로 빨고 충분히 헹궈서 탈수를 한다. 다른 빨래를 마치고 바로 탈수를 해야 하는 걸 잊고 늦게 탈수해서 마르기 전에 비가 올까 봐 조마조마했다. 밤늦게까지 뒤적거리면서 90% 정도 말려서 실내에 들인 상태다. 

 

청소를 마치고 빨래를 했더니 벌써 오후가 되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졸음이 쏟아져서 눈이 달라붙는다. 왜 이렇게 졸리지? 지난밤에는 그래도 잤는데? 너무 졸려서 항암치료를 받은 직후여서 그런가 하면서 침대에 가서 2시간 정도 잤다. 잠을 잤더니 몸이 가뿐하다. 어제도 같은 시간에 졸려서 긴 낮잠을 자고 말았다. 그래서 일기예보를 봤더니 아침부터 기온이 올라서 더운 날씨에 저녁 6시가 넘어도 28도에 습도가 80%가 넘는 후지덥근한 날로 졸릴만했다는 걸 알았다. 다행이다, 항암치료로 급격한 변화가 아닌 것 같아서다. 

 

목요일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으러 평소와 같은 시간에 갔다. 8시에 도착해서 대기번호 6번으로 나쁘지 않았다. 번호순으로 접수를 하고 바로 혈액검사를 받으러 가는 것이 정해진 코스이다. 혈액검사를 접수하는 기계가 고장이 나서 창구에서 접수를 한다. 혈액검사를 조금이라도 빨리 받으려고 코스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조용히 바쁘게 움직있다. 목요일에는 바로 옆에서 마치 허들 경기에 나선 것처럼 달리는 이상한 아저씨가 부산스러웠다. 나는 조용히 움직여서 그 아저씨보다 일찍 접수했다. 접수하고 기다리는데 자기가 2번째로 왔는데 왜 자기보다 늦게 온 사람이 먼저 혈액검사를 받느냐고 간호사에게 고함을 치는 진상 아저씨도 있다. 아침 일찍부터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그런 것에 익숙해서 그런가 보다 하면서 내가 볼 일을 본다. 이번에는 뇨검사도 했는데 외래에서 뇨검사를 한 건 처음인 것 갔다. 

 

지난주에 백혈구 수치를 올리는 주사를 맞아서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항암치료제를 더 줄여서 기간은 3주 간격으로 하자고 한다. 지금까지 항암제를 100% 맞은 적이 없었고 항암제를 줄였다고 3주 간격을 지켜진 적이 없었지만 항암제를 바꿨으니 우선 그렇게 하기로 했다. 외래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그날따라 환자가 매우 적었다. 항암치료를 받으려면 외래 치료실에 가서 의자에 앉거나 침대에 누워서 링거를 맞는다. 나는 주로 침대에 누워서 링거를 맞는 동안 정신없이 잔다. 항암제를 바꿨더니 머리에서 주체할 수 없이 땀이 흘러서 베갯잇을 다 적시고 말 정도다. 목요일에는 지난번보다 좀 덜했지만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간호사는 항암제에 그런 작용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외래 치료실에도 보통은 환자가 꽤 있고 어떤 날은 침대가 겨우 하나 남을 때도 있었는데 목요일에는 텅텅 비어서 내가 혼자 있었다. 그래서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끝났다.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친한 이웃에게 전화했더니 산책하는 중이라고 한다. 요새 친한 이웃과 산책도 하지 못해서 얼굴이나 보려고 만나기로 했다. 집에 들러서 우편함에 병원에서 가져온 짐을 구겨 넣고 마시다 남은 물은 제초작업에서 사정없이 잘렸지만 뿌리가 남은 수국에게 줬다. 가까운 공원에 싹이 난 호박에게도 줬다. 

 

친한 이웃을 만나러 강가에 갔더니 부추꽃이 많이 폈다. 나는 주변에서 부추를 베어다 먹어서 어디에 어떤 부추가 있는지 대충 알고 있다. 지금은 풀이 무성하게 자라서 도저히 부추를 베기도 어렵지만 꽃이 펴서 부추가 억세진 상태라서 먹기가 불편하다. 나는 부추를 베면서 주변도 정리하기에 내가 요전에 부추를 벤 곳은 부추꽃이 피지 않았지만 다른 풀이 너무 많이 자라서 부추를 베기가 힘들다. 집에 꽃도 없고 병원에서 나와서 기분이 좋은 상태라, 부추꽃을 꺾기로 했다. 부추꽃을 꺾는 것은 처음이라서 꺾기 쉬운 곳에 있는 것만 좀 꺾었다. 집에 와서 키가 작은 건 부엌에 꽂고 중간 키와 긴 것은 테이블에 꽂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꽂아보니 키가 큰 것이 훨씬 멋있다. 부추꽃을 꺾다 보니 뿌리까지 뽑힌 것도 있어서 뽑힌 뿌리를 가져다가 화분에 심었다. 

 

 

 

어제 오전에는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위와 키가 큰 걸 유지할 수 있는 긴 깡통까지 준비해서 다시 부추꽃을 꺾으러 나갔다. 친한 이웃네 가까이라서 같이 만나 이웃은 깡통을 들고 나는 꽃을 꺾었다. 앞으로 필 꽃이 남은 걸로, 키가 큰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조심해서 꽃을 꺾었다. 나는 꽃을 찾고 꺾을 걸 구분하느라고 움직여서 몰랐는데 옆에서 가만히 기다리던 이웃은 벌레에 많이 물린 모양이다. 한 시간 정도 꽃을 꺾고 어느 정도 꺾었으니 집에 가자고 한다. 부추꽃을 한 다발 꺾어서 집에 와 목욕탕 양동이에 물을 받아 저녁까지 물을 올렸다. 

 

저녁을 하기 전에 부엌에서 부추꽃을 손질해서 적당히 자르고 테이블에 놓을 꽃을 꽂았다. 부추꽃에는 기생하는 벌레가 꽤 있어서 벌레를 씻어내고 눈에 보이는 다른 벌레도 잡았다. 어제 충분히 씻어냈는데 오늘 물갈이를 할 때 보니까, 다시 벌레가 있어서 다시 씻고 다른 벌레도 잡았다. 

 

 

부추꽃을 유심히 본 적이 없었는데 어제 보니까, 작은 별들이 모인 것 같았다. 작은 별들이 모여서 꽃이 폈다가 지어 열매를 맺고 씨를 남기는 부추꽃은 가을이 시작되는 시기에 맞게 소박하고 예쁘다. 키가 큰 것도 멋있다. 부추 냄새도 나지만 당분간 부추꽃을 보면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보통 사람들이 사는 삶이 부추꽃과 닮지 않았을까. 크게 주목받을 정도로 화려한 외모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향기도 아니지만 부추로 많은 쓰임을 받고 계절이 되면 작고 소박한 꽃을 피운다. 기생하는 벌레도 먹여 살리고 부추꽃에 나비와 벌도 모여든다. 부추꽃에서 무수한 사람들의 인생과 같이 작은 별들이 빛나는 걸 본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부추꽃에서 무수히 작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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