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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생활

감이 풍년이다

오늘 동경은 최고기온 21도, 최저기온 9도로 아주 맑은 날씨였다. 내가 사는 곳은 날씨가 맑으면 기온이 낮아도 햇볕이 잘 들어서 따뜻하다. 오후 늦게 산책을 나가서 버섯을 따고 부추를 많이 베었다. 돌아오는 시간이 늦어 멀리서 붉게 크고 둥근 보름달이 뜬 것이 보였다. 공원에서 부추를 대충 다듬고 집으로 오는 시간에는 달이 벌써 꽤 많이 올라왔다. 개기월식이라고 해서 저녁을 먹고 달을 봤더니 달이 거의 다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런 신비한 광경을 보면 경외심이 생기는 것 같다. 

 

오늘은 특별히 한 일도 없는데 바쁘게 지냈다. 정말로 생각해 보니 뭘 했는지 모르겠는데 시간이 확 지나고 말았다. 내가 기억하는 건 오후 늦게 산책을 나가서 공원에서 버섯을 따고 부추를 많이 베었다는 것과 돌아오는 길에 다른 공원 어두운 불빛 아래서 부추를 대충 다듬었다는 거다. 집에 돌아와서는 산책 나가기 전에 걷은 곶감을 10개씩 작은 지퍼백에 담아 냉동했다. 내일 아침에 밥하기 위해 현미와 검은콩을 씻어서 물에 담갔다. 저녁은 좀 늦은 시간에 보말과 작은 게, 버섯과 멸치를 넣고 국물을 내서 무와 배추로 된장국을 끓였다. 보말과 작은 게도 마지막 남은 걸 넣었더니 갯내음이 나서 멀미하는 것 같았다. 국물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거품을 걷는 걸 무한 반복했다. 

 

생각해 보니 점심에도 잔 멸치를 씻고 잣과 부추를 넣어서 멸치볶음을 만들었다. 부추를 다듬느라고 시간이 좀 걸린 것 같다. 멸치를 볶고 나면 환풍기를 돌려도 집안에 냄새가 배기에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킨다. 산책을 나가기 전에 베란다에서 말리던 곶감도 걷고 화분에 물을 줬다. 곶감을 말릴 때 감에서 떨어진 단물이 베란다에 눌어붙은 것도 씻었다. 냉장고에 모았던 음식물 쓰레기도 모아서 버렸다. 곶감을 만드느라고 생긴 엄청난 양의 감 껍질을 말린 것과 시든 꽃 쓰레기도 정리해서 버려야 한다. 항상 느끼지만 쓰레기를 버리면 기분이 좋아진다. 

 

주변을 보면 올해 감이 풍년이었던 모양이다. 친한 이웃네 마당에 감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올해 가장 많이 열려서 떨어지지도 않아 많은 수확을 할 수가 있었다. 한 그루는 단감이고 다른 건 곶감용 감이라고 했다. 나는 단감과 곶감용 감을 많이 얻었다. 다른 이웃도 나무에서 잘 익은 큼직한 단감을 쇼핑백으로 하나 가져다줬다. 그 외에도 주변에서 맛있는 감을 싸게 파는 집이 있어서 감을 팔 때는 사다가 먹었다. 올해는 감을 정말로 실컷 먹느라고 한동안 과일을 살 필요가 없었다.

 

친한 이웃에게 얻은 곶감용 감 껍질을 벗겨서 하나씩 매달아서 말렸다. 친한 이웃이 감꼭지 나무를 줄에 매달 수 있게 잘라서 줬다. 감이 꽤 컸는데 곶감으로 말렸더니 쪼그라들었다. 곶감을 만들었는데 공을 들인 만큼 맛있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다. 곶감을 만들어서 맛있는 건 역시 떫은 감인 것 같다.

 

몇 년 전인가 공원에서 아주 많이 따다가 껍질을 벗겨서 감말랭이를 만든 적이 있었다. 그 후로 공원 감나무에 감이 많이 열리지 않아서 감말랭이나 곶감을 만들지 못했다. 올해는 공원 감나무에도 감이 많이 열렸다. 감을 딸 타이밍을 엿보고 있었는데 나보다 다른 사람이 먼저 따고 말았다. 공원 감나무에는 아직도 감이 아주 많이 달렸지만 경사가 가팔라서 감나무 가지를 잡아당길 수가 없다. 지난번 감을 따러 갈 때도 우산을 가지고 가서 감나무 가지를 당겼지만 감을 딸 수 있는 가지에 달린 감은 이미 누군가가 따고 만 뒤였다.

 

올해 새로 발견한 감나무가 야구장 위로 보였다. 멀리서 봤더니 도저히 감으로 보이지 않는 크기였다. 가까이 가서 봤더니 감인데 열매가 아주 작다. 그래도 가지를 잡아당겨서 딸 수 있는 건 땄다. 너무 작아서 껍질을 벗기면 먹을 것이 없을 것 같았지만 껍질을 벗기로 통째로 말렸다. 여기 감도 떫은 감인데 동그랗고 아주 달았다. 곶감을 아직 먹지 않아 모르지만 야구장 감이 가장 맛있을 것 같다. 오늘로 두 접 가까이 감 껍질을 깎아서 말린 곶감과 감말랭이도 다 걷어서 소분해서 냉동했다. 감이 워낙 작아서 손은 많이 갔지만 양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그래도 겨울에 먹을 간식을 만들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 엄청난 양의 곶감을 만들지만 나는 만들면서 바로 주위에 나누기 때문에 정작 남는 것은 별로 없다. 지난 6일 치바에 인터뷰를 가면서도 냉동했던 곶감을 지퍼백에 넣고 갔다. 어제 친구와 만나면서도 작은 지퍼백을 꽉 채워서 줬다. 내가 만드는 곶감이 그다지 맛있는 건 아닌데 주위 사람들에게 주면 좋아한다. 그래서 항상 나눌 수 있는 건 나누려고 한다. 

 

요새는 내가 반찬을 만들 때 친한 이웃에게 나누려고 아예 처음부터 병에 나눠서 둔다. 친한 이웃은 요리를 아주 잘하고 집에 손님을 불러서 접대하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근래는 요리할 의욕이 점점 떨어지는 모양이다. 식재료도 정해진 것만 산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만든 반찬을 나눠주면 아주 기뻐한다. 아는 이웃이나 친한 이웃도 다 요리를 잘하는 전업주부이기에 그에 비하면 내가 만드는 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하지 않는 걸 하니까, 맛을 보라고 준다. 사실, 내가 주위에서 받는 걸 갚는 마음도 있다. 

 

삼일 정도 일을 하고 친구와 만나느라고 친한 이웃과 산책을 같이 하지 못했다. 오늘도 2시에 전화한 모양인데 나는 전화벨 소리가 나지 않아서 전화를 받지 못했다. 3시가 지나 산책 나가기 전에 전화했더니 이미 산책을 나갔는데 아주 멀리까지 갔다고 한다. 이전에는 이런 말을 들으면 도대체 어디까지 간 걸까 걱정했다. 그런데 요전 날 나와 같이 산책 도중에 전화를 받고 같은 말을 한다. 아주 멀리까지 나왔다고 말이다. 솔직히 전혀 먼 거리가 아닌 집에서 편도 도보 20분 거리였다. 아주 멀리 나왔다는 건 전화를 받을 때 정해진 말투로 말 그대로 아주 멀리 간 건 아니구나 생각한다. 오늘은 만나지 못할 것 같으니까, 다시 시간대가 맞을 때 같이 산책하자고 했다. 

 

이렇게 따뜻하게 날씨가 좋고 달은 개기월식으로 보이지 않게 되었던 날,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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