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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목포에 집을 사는 상상

오늘 동경은 맑고 최고기온이 12도로 따뜻한 날씨였다. 이번주 대부분 강의가 학기말을 맞아 종강을 한다. 내일로 대부분 끝나고 다음주 수요일에 한과목이 남았을 뿐이다. 나는 종강을 할 때 강의 전체를 뒤돌아 보고 지금까지 뭘 말했는지, 현재 어디에 있으며 앞으로 어디를 향해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한다. 이번 학기 종강, 특히 오늘은 1학년의 '여성학'과 2학년의 '노동사회학'이다. 요즘 일본에서는 보통 과목이 한학기로 끝났다. 실질적으로는 석 달정도로 학생들과 가까워질 무렵에 학기가 끝나고 만다. '여성학'은 1학년이 봄학기와 가을학기에 걸쳐서 1년 동안 듣는 걸로 되어 있다. 1학년에서 '여성학'을 들은 학생들이 2학년에 올라와 '노동사회학'을 1년에 걸쳐 들어서 합계 2년동안 내 강의를 듣는다. 2년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보면 알게 모르게 정도 드는 것이다. 오늘 종강을 한 '여성학'과 '노동사회학'을 들은 학생들은 고맙게도 한 명도 빠짐없이 내 강의를 듣고 시야를 넓혔다고 감사함을 표해줬다. '노동사회학'을 들은 학생들과는 솔직하게 열띤 토론을 거듭해서 학생들이 크게 성장했고 자신감도 붙었다. 학생들의 마지막 감상문을 읽고 다 좋았는데 귀갓길 도중에 갑자기 허해졌다. 허한 마음을 달래려고 특별히 살 것도 없었지만 중간에 마트에 들러서 헤집고 다니다가 과일을 좀 사서 왔다. 생각해보니 2년동안 매주 보던 학생들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으니 마음이 허해질만도 하다. 대학교 1학년은 아직 고등학생 때도 안벗은 아이들이다. 2학년이 되면 제법 어른스러워진다. 어쩌면 학생들에게 중요한 시기에 내 강의를 접한 것인지도 모른다. 마트에서 나와 작은 강을 건너다가 어둠속에서 흐르는 강물을 봤다. 지금 일본사회가 암흑과 같더라도 내 강의가 학생들 마음에 작은 강물처럼 흐르다 보면 언젠가 바다를 만나겠지 생각했다. 언젠가 바다를 만나길 기대하는 것이다. 선생이라는 직업은 항상 학생들에게 '짝사랑'을 하는 것은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그런 말을 했다가는 동료에게 욕을 먹는다. 나는 학생들에게 사랑받는 선생이라고 한다. 그럼 뭐하나, 항상 만나면 성장을 지켜보고 헤어지는게 일인데..... 학기말이 되면 정해진 듯 마음이 허해온다.



오늘 아침에 학교에 가면서 뉴스를 봤더니 손혜원의원이 목포 구도심에 일제시대때 지은 적산가옥을 몇채 샀다는 걸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그게 문화재 거리로 지정이 되었다는 것으로 '투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조카가 내려가서 집을 리모델링해서 카페를 하고 게스트하우스도 한다고 한다. 웃기는 것은 신문에 조카가 샀다는 건물 (건물이라면 좀 크고 높은 걸로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도 다 건물이 되는 모양이지만) 사진을 봤더니 바로 옆에 지붕이 다 허물어진 것이 보인다. 아, 이런 곳이구나. 저런 곳에 아무리 리모델링을 했다고 해도 카페에 사람들이 갈까? 주변이 그렇다면 게스트하우스에 손님이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손혜원의원이 '투기'를 했는지, 아니면 '투자'를 했는지를 밝히려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투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카에게 동생도 모르게 집을 사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게 하려한 것도 '차명'이라고 보지 않는다. '증여'한 것이다. 사정이 있어서 동생을 거치지 않은 것이라니까, 그럴 사정이 있었겠지 한다. 왜냐하면 나라도 그렇게 할 것이라, 그렇다. 


나는 그 기사를 읽으면서 유년시절 목포에서 지냈던 걸 떠올리며 다른 상상을 했다. 나도 이런 걸 알았으면 집을 몇 채 샀을 것이다. 주변 경관이 좋다는데, 집이 낡고 헐었어도 예전에 잘지은 집이었다면 리모델링을 하더라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가까이에 와서 살 조카가 있으면 조카에게도 사줄 수 있다. '투기'로 집 가격이 오르면 시세차익을 노리고 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노년을 지낼 곳으로 살 집이다. 가까이에 조카들이 있어서 조카네가 터를 잡고 사는 걸 지켜볼 수 있다면 행복한 일이다. 자신들이 살 마음이 있다면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못할 이유가 없다. 나로서는 작은 도시에 살면서 일상에 소소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노년을 보내기에 아주 좋은 조건인 것이다. 서울에서 비싼 아파트를 사서 숨막히는 대도시 생활보다 훨씬 좋을 것 같다. 집이 싸면 생활을 훨씬 여유있게 할 수 있어서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뉴스를 보면 손혜원의원 조카가 문화적인 공간을 만들고 있다니까, 뉴스에 나온 가격이라면 가난한 예술가도 얼마든지 사서 올 정도가 아닌가? 예술가들이 모이면 젠트리피케이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정착하면 문화가 활성화 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자유한국당에서도 들고 일어났고 매스컴에서 벌떼같이 난리가 아니다. 댓글을 봐도 명백히 나눠진다. 목포 구도심을 잘 모르지만 이 정도로 전국에 떴으니 안목이 있고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계산을 할 것이다. '투기'가 아닌 '투자'로 괜찮은 곳으로 뜨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한다. 그렇다면 성공인 셈이다. 


한국에서는 '집'이 '투기'의 대상인지 몰라도 사람에 따라 '투기'가 아닌 자신이 애착을 가지고 살 곳이라면 꼭 팔 것을 생각해서 사지 않을 것이다. 재산증식을 위해서 집을 사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산다면 애착을 가지고 살고 싶은 곳이 가장 중요하다. 자기가 살다가 가족에게 물려줄 수도 있으니까..... 사람에 따라 생활에 중요한 조건이 다를 것이다. 대도시가 좋은 사람이 있겠지만, 노년이라도 대도시가 매력적일까? 작은 도시에 문화적인 축척이 있다면 매력적이다. 나라면 일상적으로 소소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고 문화적인 자극이 있는 곳이라면 아주 좋은 장소가 된다. 보통, 지방에 가서 연고가 없으면 지역사회에 들어가기가 힘들다. 텃세가 있어서 힘들다고 한다. 목포 구도심에는 사는 사람이 적은 것 같으니 텃세를 하는 토박이가 적다는 뜻이 될 것이다. 그 주변을 좋아해서 모이는 사람이 모여서 살면 매력적인 거리로 되살아날 가능성이 크다. 외부사람이 들어오기 좋은 조건이 된다. 아무래도 이번 일을 계기로 목포 구도심이 널리 알려져서 손혜원의원이 하고 싶었다는 구도심 살리기가 되는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내가 한국에 살아서 이런 걸 알았다면 목포 구도심에 집을 샀을 것이다. 가장 궁금한 것은 미세먼지가 어떤지다. 목포니까, 미세먼지가 훨씬 덜하지 않을까? 유년시절 목포에서 잠시 있었던 집도 적산가옥이었다. 뉴스를 보고 유년시절의 추억과 더불어 노년생활을 떠올리는 즐거운 상상을 했다. 




사진은 담쟁이를 찍을 때, 이집 주변을 둘러싼 엄청난 돌이 부러워서 찍은 사진이다. 이돌이 매력적이라는 이유로 이집을 내가 살 수 있다면 사고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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