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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생활

우울한 동경

오늘 동경은 기온이 낮지만 맑게 개인 날씨다. 


2월 하순부터 한달 미얀마에서 지내다가 왔다. 그래서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을 쉬고 있었다. 정확히는 2월 18일에 출발해서 호치민을 경유, 19일 오전에 양곤에 도착해서 지내다가 3월 18일 저녁 양곤을 출발해서 하노이를 경유, 19일 오후에 하네다에 착륙했다. 미얀마에 다녀온 이야기는 사진과 함께 나중에 풀기로 하자. 일본과 미얀마는 너무 다른 나라여서 비교하기가 어렵다. 동경과 양곤도 너무 달라서 비교하는 의미가 별로 없다. 하지만, 비교하면서 이야기 하게 될 것이다. 


동경을 출발하는 날 갑자기 날씨가 풀려 따뜻하게 느껴졌다. 양곤은 도착하기 전에 예상했던 이상으로 더운 날씨였다. 동경에서 양곤에 가서 지내면서 적응하는데 어려운 점은 그다지 없었다. 어쩌면 미얀마에 대해서 너무 모르기 때문에 긴장 할 것도 없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느낌에 익숙하다. 전혀 모르는 나라에 가서 적응하는 것이 오래 살아서 익숙했을 동경에서 지내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 오래 살아 온 동경에서 사는 것이 훨씬 스트레스가 많다는 느낌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이번에 양곤에 가서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어서 씁쓸했다. 말도 모르는 낯선 땅을 여행하는 것보다 오래 살아 온 동경에 돌아 오기 전부터 긴장해서 잠을 설칠 정도다. 일본, 동경에서 살고 있는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라는 씁쓸한 현실을 다시 인식했다.


동경에 살면서 외국에서 한달이나 두달을 지내다가 돌아오는 생활을 한지 오래다. 외국에 나가서 동경을 잊고 있다가 돌아와 다른 눈으로 동경을 보면 새삼스럽게 보이는 면이 있다. 그러면서 항상 동경에서 사는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점진적인 변화를 볼 수가 있다. 이런 면은 서울을 보는 눈도 마찬가지다. 사회를 관찰하는 사람으로서 익숙한 것에 대해 신선하게 비교하며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나 이런 방법을 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연히 내가 그런 생활을 하고 사회를 관찰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더운 나라에서 추운 나라로 돌아오는 사이에 비행기 내 기온도 왔다갔다 했다. 미얀마는 최고기온이 38도여서 오후 늦은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너무 더워서 택시타고 공항에 오는 시간이 30분 정도 걸리는데 공항에서 출국게이트를 들어 서기 전에 물을 1리터나 마실 정도였다. 마신 물의 양으로는 인생 최단 시간에 최대의 양이었다. 물을 많이 마셨다는 것은 그만큼 더워서 땀을 많이 흘렸다는 것이다. 양곤 공항은 물론 비행기 안도 냉방이었다. 냉방은 하노이 공항도 마찬가지였다. 냉방에서 난방으로 바뀐 것은 하노이에서 동경으로 향한 비행기 안이었다. 공항이나 비행기 안이 냉방에서 난방으로 바뀐다고 해서 그동안 익숙했던 몸에 새겨진 기온을 갑자기 바뀌는 것은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하네다에 내렸더니 공항은 난방이어서 덥다고 느낄 정도였다. 


외국에서 일본사회를 느끼는 지점은 일본을 향하는 비행기 출발게이트다. 일본행 출발게이트에는 일본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벌써 일본사회 냄새를 풍기고 있다. 일본사회 냄새라는 것은 아주 동질적인 분위기를 가진 사람들이 긴장된 느낌으로 뭉쳐있는 것이다. 다른 출발게이트에 모인 사람들이 다양하고 긴장된 느낌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대비되기에 특수하다. 일본사람이나 일본사회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런 긴장감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긴장한다는 느낌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네다에 내려서 집에 오는 동안 전철을 두 번 갈아 타고 한시간 반 정도 걸려서 온다. 그동안 전철이나 길에서, 마트에서 사람들은 관찰한다. 노선과 시간대에 따라서 전철을 타는 사람들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낀 공통점을 '우울함'이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무표정'에 가까운 '피곤한' 얼굴 들이었다. 계절적으로는 분명히 '봄'이 오고 있는데, 사람들이 느끼는 '봄'은 멀리 있나 보다. 나는 동경이 '우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항상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외국에 나가면 동경이나 일본을 잊고 있다. 일본을 잊고 싶다는 심리가 작용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동경에 돌아와 '우울'한 현실을 보면 사실 깜짝 놀란다. 동경의 현실과 본인의 기억상실에 대해서다. 자신의 사는 동경의 현실을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럴리가 없다'고 '왜 우울하게 보이는지' 이유를 알고 싶다. '우울하다'는 것을 보고 느끼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다. 


맑은 날씨의 동경은 양곤이나 중간에 경유한 하노이에서는 볼 수가 없는 맑은 공기에 파란 하늘이 있어서 기쁘다. 그런 점에서는 분명히 밝은데,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만드는 분위기가 '우울하다'는 것이다. 사람들 '표정'만이 아니라, 입은 옷의 색감도 어두웠다. 사람들의 성별과 연령대가 다양한데 마치 사회전체가 몇 종류의 제복을 입고 있는 것처럼 비슷한 색감의 옷을 입고 있었다. 어두운 색감의 옷과 '무표정'한 사람들의 얼굴이 어우러져서 '우울함'을 증폭시키는 것 같다. 사람들이 입는 옷의 색감은 사람들의 기분에 영향을 준다. 군사정권에서 민주화가 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미얀마에서 보면 아주 컬러풀하고 다양한 색감의 옷을 입고 있다. 도중에 경유한 베트남은 '사회주의'국가지만, 공항에서 '사회주의'라는 걸 느끼기는 힘들다. 이상하게도 '자유 민주주의'가 발전한 일본에서 사는 사람들의 복장과 표정에서 암울한 '사회주의'를 느끼는 것은 내가 이상한 것일까?


며칠 동안 집주위에서 느낀 생명력은 계절의 변화로 꽃이 폈다는 것이다. 목련이 폈다. 공원 가까운 집에 미모자꽃도 피었다. 가까운 유치원 마당에서 아이들이 반팔소매를 입고 뛰어 놀고 있었다. 도서관에 오가는 길 집마당에 자목련도 피어 있었다. 건강한 여중생들이 자지러지게 웃으면서 지나가는 걸 볼 때, '우울함'과 동거하는 '건강함'을 보면서 조금 안심한다. '우울함'만은 결코 아니지만, '우울함'을 크게 느껴진다. 동경에도 '봄'이 오길 바란다.


나는 더운 나라에서 지내다가 추운 나라로 돌아와 감기에 걸려서 며칠 앓았다. 감기는 너무 다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몸에서 보내는 신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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