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동경 날씨는 선선했다. 아침 첫 교시 강의만 있는 날이라, 보통은 오전에 일을 마치고 도서관에 들러서 책을 읽다가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야채 무인판매와 마트에 들르는 것이 정해진 코스다. 시간이 맞으면 이웃이 강아지와 산책할 때 같이 가기도 한다. 오늘은 오전에 수업을 마치고 건강진단을 가야 했는데 오늘까지 마감하는 서류를 마저 만들어서 보내느라고 못 갔다. 오늘 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어제 미리 다음 주 남자들이 건강진단을 할 때 마지막에 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지난번에 여직원들이 건강진단을 받을 때, 남자가 끼어 들어서 이상했던 적이 있다. 중간에 끼면 긴장감을 조성한다. 다음 주, 맨 나중에 혼자서 건강진단을 받기로 했다.
첫 교시에 가서 지난주 강의를 피드백하면서 지난주까지 이번 학기 학생들 성향분석을 마쳤다고 했다. '일베 학생들'에 썼던 것처럼 올해 신입생이 아베 정권하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온 학생들이라서 그런지 지금까지 학생들과는 전혀 다른 점이 있다. 아직, 이름이 붙여지지 않는 '뭐뭐 세대'라고 불릴지 모르는 아이들이다.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지향하는 것도 '아사히 신문'에서 '산케이 신문'으로 바뀌었다. 널뛰기처럼 정반대로 뛰어넘는 극적인 변화다. 상상도 못 했지만, 현실이다. 각 강의마다 '넷우익'에 해당하는 '일베 학생'이 있어서 나를 공격한다. 그들도 내 학생이다. 그냥, '일베 학생'을 존중해주고 싶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나도 망설인다. 사실, 학생들에게 주의하고 야단을 치는 것도 힘들어서 적당히 넘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런데, 한명의 '일베 학생'이 나를 공격한다고 해서 몇십 명 중에 한 명이라는 비율이 아니다. 한 명이 나를 공격하는 것이 두려워서 '일베 학생'을 존중하는 쪽으로 나가면 이 강의가 망한다. '일베 학생'은 나를 공격하는 게 수강하는 목적인 것 같은데, 나 혼자 감당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라, 한 과목이 망한다. '넷우익'의 위력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다. '넷우익'이 하는 활동은 사회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기에 참 마음이 복잡하다고 했다.
지금 일본에서 하고 싶은 말을 못한다. 꼭 정부를 비판하거나, 정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의견도 말하면 안 되는 분위기다. 2011년에 있었던 후쿠시마 지진 이후, '애국심'이 너무 드높아져서 무섭다. 후쿠시마 지진 이후 공익광고로 강조된 것이 '국민의 단결', '일체감'이라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후쿠시마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재난은 전쟁에 진 것과 같다. 전쟁 상대가 적이 다름 아닌 내부에 있는 '경제발전' '근대화' 같은 고속성장만을 지향했던 시스템이다. 그런 시스템이 지진을 맞아 파괴되면서 경종을 울린 것이다. 일본 정부와 동경전력은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해결하는 방식이 아닌 엉뚱한 쪽으로 나갔다. '국민의 단결'이라는 정신론으로 뭐가 해결이 되나? 일본은 국민이 국가와 직접 연결되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나와 가족, 친구와 동료, 이웃과 공동체, 지역과 사회라는 실제로 얼굴을 맞대서 대화를 하는 다양한 중간단계를 뛰어 넘고 개인이 바로 국가와 연결되고 말았다. 그러면서 나와 국가 사이에 있던 것들이 완전히 힘을 잃고 말았다. 거기에는 인터넷 시대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거기에 8월인가 '한류 반대' 후지테레비 데모가 열렸다. 내가 기억하기로 대규모 '혐한 데모'의 시작이다. 데모를 보면서 또 한번 당황했다. 아니, 지금 일본에서 시급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후쿠시마 지진은 수습도 되지 않았는데, '한류'가 문제인가? 후지텔레비에서 한류드라마를 너무 많이 내보낸다고, '한국사람 죽이라'고 데모하다니. 한류,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된다. 후지텔레비가 한국사람에게 점령당해서 한류드라마를 내보낸다. 한류드라마를 통해서 일본 사람을 세뇌시킨다, 한국에서 일본을 점령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황당한 말도 돌았다. 후지텔레비가 후지 산케이그룹이다. 후지텔레비를 한국사람들이 점령할 수도 없거니와 그들은 시청률이 좋아서 돈이 되기 때문에 한류드라마를 방영하는 것뿐이다. 이런 단순한 것이 '넷우익'에 의해 '소설'이 쓰였다. '혐한'은 일본이 단결하기 위해 필요한 접착제이며 외부의 '적'으로 쓰였다. 일본의 '애국'과 '혐한'은 세트로 동전의 양면이다. 일본에서 '혐한'이 없으면 '애국'이 성립할 수가 없다.
나와 국가가 합체함으로 어떤 변화가 생겼나? 나는 별볼일 없지만, '일본'은 대단해. 별볼일 없는 나도 '일본'이라는 국가와 일체감을 느끼면서 세상에 무섭거나 두려울 것이 없어졌다. 멋있어진 느낌이다. 주변에서 얼굴을 맞대는 사람들 눈치 볼 것도 없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변해갔다.
그동안 중요했던 얼굴을 맞대는 인간관계가 약해졌다. 나와 국가 사이에 있던 다양한 매개체가 힘을 잃으면서 개인이 더욱더 고립되고 약해지고 말았다. 개인이 약해지면서 의식적으로 강한 집합체인 '일본'이라는 국가의 갑옷이 필요해졌다. '일본'이라는 갑옷을 입으면 막강해진 느낌이 든다. 허약한 내몸과 갑옷 사이에 '애국'이 들어가서 채워준다. 거기에는 '혐한'이나 '혐중'이라는 주변 국가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이 전제된 '우월감'이 들어가서 완성된다. '강하다'는 것은 '약한 존재', '차별'해서 '우월감'을 보장해주는 뒷받침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넷우익'이 하는 '헤이트스피치'처럼 열정적인 데모는 없었다. 일본 정부에서는 '표현의 자유'라고 약자에 대한 '폭력'을 방치했다. 그래 그동안 '혐한'과 '혐중'을 열심히 해서 한국과 중국에 어떤 대미지를 줄 수가 있었나? '혐한'과 '혐중'으로 일본이 어떤 이익을 얻었나? 몇 백권이나 되는 '혐한'과 '혐중'서적이 있다. 한국에는 자기네보다 더 많은 '반일'서적이 있는지 조사했지만 한국에는 '반일'서적이 없었다. 왜냐? 팔리지 않거든. 일본처럼 팔린다고 그런 책을 만들어도 되는지도 문제다. '넷우익'이 말하는 '애국'은 옛날 '우익'들의 비즈니스였다고 본다. '넷우익'이 '헤이트 스피치'를 해서 한국이나 중국에 대미지를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일본 사회를 파괴했다. 현실적으로는 자신들 내부의 '사회적 약자'를 공격했다. 그런 것이 '애국'이라는 허울로 정당화되고 말았다. '애국'이라는 말 앞에서는 모두가 사고가 정지되어 사리판단을 할 수가 없다. '애국'이라는 말이 가진 힘 앞에 사람들은 대항할 생각도 못하고 무력해진다. '애국'이라는 단어가 가진 '주술적 힘'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2009년 교토 조선초급학교에 가서 '재특회'가 난동을 부린 사건을 보고 너무 놀랐다. '재특회'는 그렇다 치고 어른들이 몰려가서 아이들에게 그런 난동을 부린 것에 대해, 일본 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발언하는 걸 보지 못했다. 그걸 계기로 내가 일본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걸 알았다. 어린이나 약자는 무조건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다. 그런 어린이를 공격한 것에 대해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북한이나 한국이 일본과 갈등이 있다는 뉴스가 나오면 항상 조선학교 아이들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여학생을 공격했다. 그런 뉴스가 나오면 자극을 받아서 가는 사람이 는다고 뉴스로 나오지도 않게 되었다고 했다. 이건 엄연히 일본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일본에서는 '혐한'과 '혐중'을 지나서 '자화자찬' 책이나, 프로그램이 유행한다. '일본은 대단하다'는 말에 취해있는 것 같다. 굳이 여행온 외국인 관광객 입을 빌리지 않아도 일본에 좋은 것 많다.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강대국인 일본이 '애국심'으로 무장하면 주위에서 보면 무섭다. 더욱더 무장할 이유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이 힘을 써야 할 부분은 무장이 아니라, 복지가 아닐까?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예전에 친구에게 어느 종교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거기에 가면 교주가 나와서 "최고입니까?" 하면 신자들이 "최고입니다" 대답한다. "행복합니까?" 물으면 "행복합니다"라고 대답한다. 정해진 형식으로 계속 반복하면서 사람들이 고양되어 도취해 간다. 현실적으로는 종교에 돈을 갖다 바쳐야 해서 생활이 힘들다. 하지만, 거기에 가면 대규모로 모인 사람들이 대합창으로 "최고입니다", "행복합니다"를 외치면서 환각상태에 빠진다. 마약을 하면 그렇게 될까? 지금 일본이 그런 상태다.
개인과 절대적인 존재로 여기는 국가와의 일체감은 종교적이다. 국가가 '신'에 해당한다. '신'과 합체한 나는 '막강'하다. 국가라는 매직 워드가 가진 힘이 현실적인 내가 별볼일 없다는 걸 깨끗하게 지워준다. 나는 국가의 힘을 빌려서 '최고'가 되고 '행복'하다고 믿고 싶다. 나는 이런 일본을 보면서 북한과 비슷하다고 느낀다. 북한에 간 적은 없지만, 북한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이전부터 일본이 북한을 지향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지만, 거의 완성단계에 왔나? 싶을 정도다.
'일베 학생'이 나를 공격하는 것은 '애국'이 아니라, 소중한 자신들의 사회를 파괴하는 것이야, 적어도 강의 한과목을 망하게 할 수 있어. 사회적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아침 일찍부터 강의를 들으러 오는 많은 학생들을 어떻게 하느냐고, 오늘은 작정해서 말했다. '일베 학생'이 공격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줬다.
학생들 눈빛과 태도가 달라졌다. 선생이 자신들을 위해 하는 말이라는 걸 안 모양이다. 자기네 부모가 터무니 없이 '혐한'을 하는 걸 보고 너무 싫다는 학생들이 꽤 있다. 학생들도 철부지 아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에 부모들은 조심하시라, 아이들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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