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17 무력감에 빠진다
오늘 동경은 추운 날씨였다. 어제도 추웠지만, 오늘은 한층 더 기온이 내려가서 최고기온이 18도였다. 어제부터 온 비가 아침에도 개이지 않았다. 오후에 비가 그쳤지만 지면이 마르지도 않고 기온도 올라가지 않았다. 15도였으니 겨울날씨의 최고기온인 것이다. 집이나 이불을 다 여름용으로 바꿔서 춥게 지내고 있다. 허리가 아파서 어젯밤에는 얍은 담요을 한 장 추가했더니 몸이 훨씬 편했다. 며칠 추운데 그냥 자서 허리가 아팠던 모양이다. 주말에는 밥을 하고 된장찌개를 끓여 쌈을 싸서 먹었다.
일본에 오래 살았지만 가끔 일본 사회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이해가 안 된다기보다 중요시하는 관점이 너무나 다를 때 내가 미쳤는지 당신들이 미쳤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는 멘붕이 와서 무력감에 빠진다. 요즘은 이런 무력감에 빠지는 허탈한 뉴스를 연속해서 봐서 세상이 미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정말로 이상해진 건가 하는 마음이 든다.
요 며칠 사이에 있었던 뉴스와 그에 대한 반응이다.
이틀 전에 읽은 '치한'에 대한 기사였다. 기사 내용에는 문제가 되는 부분이 많아서 놀랬다. 30년 동안 '치한'을 했던 경험자가 아주 리얼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치한'을 하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내용이 무지막지해서 읽기만 해도 구토가 날 것 같았다. 30년 동안 매일 하루에 몇 명에게나 '치한'을 했으니 잡힌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거의 '치한'을 하기 위해서 사는 인생이랄까? 역에서 잡혔을 때, 울면서 사죄하면 경찰에 넘기지 않고 풀려난다고 했다. 이런 것은 '치한'에게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라, 기사에 자세하게 쓰면 안 되는 내용이다. 그래서 여기에는 구체적으로 쓰지 않는다. '치한'이 되기 전에 어릴 때 여동생을 '성추행'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 내용도 도저히 쓸 수가 없다. 성장해서는 '치한'이 되어 수많은 여성들에게 '성폭력'을 행했다. 그는 여성이 적극적으로 반항하지 않는 것은 용인한다고 본다는 것이다. 너무 무지막지해서 반항을 할 수가 없다. 말도 안되는 말이다. 결국 그는 '치한'으로 잡혀서 형무소 생활도 하지만 '치한'은 형기가 짧고 형무소 생활도 지내기가 괜찮다고 한다. 불만이 있다면 '치한'행위를 못 한다는 것뿐이다. 기사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 놀랍다. 30년 '치한'을 한 사람에게 그의 범죄로 인해 피해 입은 '피해자'를 배려하는 내용이 전혀 없다. 그 사람에게 안됐다는 '동정'과 '치한'을 이해하려는 내용이었다. 나는 '피해자'들이 어떻게 되는지 아는 입장에서 보면 경악스러운 내용이다. 우선, 여동생이 인격이 파괴되었을 것이라,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가족,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었을 것이다. 거기에 매일 같이 생산해낸 수많은 젊은 여성 '피해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거기에 성폭력 '가해자'에게 너그러운 이해를 보이는 댓글들....... 내가 미쳤나? 이번 주와 다음 주 여성학 시간에 '성폭력'에 대한 것이라, 학생들에게 나눠줄 자료로 쓰고 싶지만 여학생들이 자료를 읽고 쓰러지는 사태가 일어날 것 같아 쓰지 못하겠다.
일본의 남녀평등이 세계적으로 봐서 아주 뒤떨어진 수준이라는 기사가 떴다. 그 이유로 정치가에 여성이 적고 나이 든 남성들이 권력을 잡고 있어서라고 했다. 국회의원에 차지하는 여성비율이 아랍권이나 북한 보다도 낮다고 한다. 남녀평등을 위해서 국회의원에 나이든 남성 비율을 낮추고 여성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기사에 댓글들이 가관이었다. '치한'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하고 너그러웠는데, 국회의원에 여성비율이 낮다고 한 것에는 아주 강하게 '비판'적인 댓글로 도배가 되었다. 이런 기사는 아주 일반적인 내용으로 솔직히 '비판'적이어야 할 이유가 그다지 없다. 그러나 멸시하는 북한보다 국회의원에 여성비율이 낮다고 해서 자존심이 상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날 서게 '비판'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댓글이 다분히 '여성 혐오'적이어서 눈 앞이 캄캄했다. '치한'에게 관대하고 국회의원에 여성비율을 높여야 한다는데 '비판'적인 것이 세트인 것이다. 댓글에 나타난 양상이 그 사회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서 역시 그런가 하는 마음이 든다. 이런 목소리가 크면 다른 목소리를 내기조차 힘들다. 요새 학생들을 보면 건전한 의견이 소수라서 이상한 의견을 말하는 목소리가 오히려 크다. 건전한 상식을 가진 학생들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된 것이다.
어제 읽은 신칸센 사고 뉴스를 읽으면서도 내가 이상한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규슈에서 동경에 오는 신칸센이 사람을 치는 사고가 났는데 모르고 계속 운행을 했다는 것이다. 신칸센 앞부분이 부서졌고 사람을 친 피를 묻힌 채로 사고 후에도 한참 달렸다고 한다. 그 기사에서 문제가 된 것은 운전사가 뭔가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지만 새가 부딛히는 경우도 있으니까, 정차도 하지 않았고 보고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운전사가 잘못한 것이냐, JR의 규칙이 잘못된 것이냐에 대해서 세세하게 따지고 있었다. 나는 사람을 치였다는데, 그 사람에 대해서 전혀 언급이 되지 않는 것이 너무 이상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에 대해서 기사 내용이 다루지 않는 게 '정상'인가? 기사를 읽으면서도 그런 마음이 드는 내가 이상한가? 했다. 이런 걸 보면서 오래 살아온 일본이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이럴 리가 없는데, 기사를 이렇게 써도 되나? 가장 중요한 것이 뭔가? 머리가 돌 것 같다. 허탈해진다. 매일 무력감에 빠진다. 그런 이상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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