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29 극단적인 세상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비가 왔다. 장마철이라, 축축한 것이 당연한 매일이지만, 요새는 기온도 낮아서 쌀쌀하다. 수요일은 아침에 일 교시가 있는 날이다. 오늘은 늦장을 부리다가 거의 지각할 뻔했다.
강의가 시작할 시간에 도착해서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복사해서 교실에 갔다. 교실은 항상 그렇듯 무덥고 탁한 공기였다. 학생들에게 먼저 오면 냉방을 켜라고 몇 번을 말했지만, 아무도 스위치를 켜는 사람이 없다. 학생들이 말을 안 듣는다. 학생들이 지시를 들어서 쾌적한 수업환경을 만드는 데 협력하지 않을 것이라, 내가 포기하는 것이 편하다. 학생들에게 별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말을 안 듣는 것뿐이다.
학생들이 말을 안 들으면 수업하기가 참으로 곤란해진다. 수업이라는 것이 학생들이 말을 들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말을 안 들으면 엄마가 잔소리하는 것처럼 했던 말을 다시 하고, 또 하고를 무한 반복해야 하는 곤경에 처한다. 나는 잔소리를 듣기 싫지만 하는 것도 싫다. 그러나 학생들이 지시를 듣지 않으면 복잡한 심경으로 잔소리를 하면서 수업을 하게 된다. 잔소리하는 걸 포기하게 되면 수업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지난 주 수요일에 일 교시가 끝나고 학생이 자료를 달라고 왔다. 수업도 열심히 듣지만, 공부를 제대로 하는 아주 우수한 학생이기도 하다. 이 학생은 정치활동을 열심히 하는 모양이다. 매주 목요일 다마센터에서 가두연설을 하는 모양이다. 요새 동경 분위기가 무시무시해서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제 칼 맞을지 모를 정도다. 아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은 지 몇 년이나 된다. 강의하다가, 칼 맞을지 모르니까 조심하라고……. 어떻게 조심하면 되나. 강의를 하면서도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다니까, 그 학생도 동의한다. 자신도 언제 칼 맞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정치활동을 하고 있단다. 자신들과 다른 생각,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칼 맞을지도 모르는 세상이다. 단지 한국사람이라는 이유로 칼 맞을지도 모르는 세상이다. 같은 일본사람이라도 정치적인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칼 맞을지 모른다니, 동경의 분위기를 모르는 사람들은 극단적이라고 할 것이다. 내가 극단적인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극단적이다. 학생도 세상이 너무 무섭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행동하고 있다고. 가슴이 아팠다. 그 학생이 하는 일이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다. 자신들의 정치적인 견해를 학생답게 표현하는 정도다. 그런 정도의 일도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대학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어른으로서 학생에게 부끄럽다. 어쩌다가 이런 세상이 되고 말았나?
나는 학생에게 정치활동이나 공부를 잘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공부나 정치활동으로 뭔가를 이루기보다 그냥 살아남아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어떻게 살 것이냐가 중요하겠지. 너무나 살벌한 세상이라, 학생에게 살아남으라는 것밖에 할 말이 없다. 인간이 로봇이 아닌 이상 제각기 다른 것이 아닌가? 설사 생각이 다르고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칼을 맞아 마땅한 것인가? 혐오가 하늘을 찌른다. 무서운 세상이다.
사진은 생생하게 예쁜 수국이다. 실제로 피어 있는 수국은 피로감이 감도는 색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