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23 초등학생 같은 대학생들
오늘 동경은 살짝 비가 오면서 아주 서늘한 날씨였다. 올해는 장마가 아주 길어서 언제 장마가 끝날지 모르겠다. 그러나, 장마가 걷히면 불볕더위가 사정없이 들이닥친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장마냐, 불볕더위냐 하면, 그래도 장마가 낮다.
이번 주에 한 과목이 종강, 다음 주에 종강하는 과목이 있다. 보통은 이번 주로 종강을 하는데, 올해는 학기가 길어져 다음 주에 종강을 한다. 달력상으로 보면 일 년 중 가장 더운 시기다. 강의는 다음 주로 끝나지만, 학생들은 무더운 시기에 학기말 시험을 본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학생들이 지쳐서 파김치가 된다. 선생들도 학기말이 되면 지쳐서 파김치가 되어 있다. 나도 씁쓸한 학기말을 맞고 있다.
결코 짧지 않은 기간 강의를 했지만, 올해 봄학기처럼 학생들이 말을 안 듣는 걸 본 적이 없다. 그 수준도 말을 안 듣는 초등학생 수준이다. 초등학생이 말을 안 들으면, 그냥 말 안 듣는 초등학생이다. 그러나, 대학생이 말을 안 듣는 초등학생 수준이라는 것은 아주 심각하고 복잡한 문제다. 초등학생은 성장하면서 바뀔 확률이 얼마든지 있지만, 대학생은 이미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을 안 들었지만, 대학까지 온 것이다. 초등학생은 아직 어려서 책임능력이 없지만, 대학생은 책임능력이 있는 어른이다. 멀쩡하게 책임능력이 없는 어른들이 집단적으로 늘어난다.
학교 수업에서 말을 안 들으면 어쩔 수가 없다. 기본적인 지시도 안 들으면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자신들 인생을 스스로 헛되게 살아가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회에는 그런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지만, 대학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내가 가르치는 대학은 중견 사립이다. 요즘 학생들이 적어서 대학에 들어가는 걸 원하는 사람은 다 들어갈 수 있는 세상이다. 대학에 진학하는 과정에서 걸러졌던 학생들에게 그런 과정이 없어졌다. 중견이 초등학생 수준이면, 그 아래는 어떤지 상상이 안 간다.
오늘 마지막 수업으로 최종평가를 하고 지금까지 했던 과제도 다 점검하는 날이었다. 같은 수업을 두 번째 듣는 4학년 학생이 결석이 많아서 골치가 아팠다. 30회 수업 중에 10회나 결석을 했다. 4학년이라, 가능하면 단위를 주고 싶다. 다른 학생들은 결석이 거의 없다. 결석이 5번 있는 학생은 운동선수로 시합에 나간 것이다. 그 학생은 열심히 해서 마지막 시험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다. 4학년 학생이 오늘도 결석했다. 나는 잘됐다 싶었다. 단위를 줄 수가 없다. 다른 학생들이 물어본다. 결석한 학생이 어떻게 되냐고, 내가 대답했다. 여기서 끝나는 건 괜찮아, 다음 학기에 다시 수강신청을 하는 게 무서워. 정말이다.
학생들이 자주적으로 배우려는 의지가 없으면, 학교 강의만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는데, 정말로 뭔가 자주적으로 할 의지가 너무 박약하다. 그냥, 몸뚱어리만 학교에 와서 교실에 앉아있다. 단순한 작업에는 몰두하지만, 조금 복잡하면 손을 든다. 그런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는 교사가 될 학생도 적지 않다. 건전한 가치관과는 거리가 먼,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교사가 되면, 이 사회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건지? 앞이 막막하다. 요즘, 내가 정상인가 싶을 때가 많다. 그 정도로 이상한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렸더니, 오늘은 옥수수가 싼 날이었다. 옥수수를 많이 샀다. 양송이와 두부도 샀고 백합도 얻어왔다. 이번 주말에는 옥수수를 뜯고 양송이와 두부를 먹으면서 지낼 것이다. 옥수수를 좋아하지만, 학기말이 너무 우울해서 그렇게 기쁘지 않았다. 그래도 좋아하는 것을 실컷 먹어 둘 요량이다. 우울한 기분을 위로해 주는 것은 백합향이다. 내가 바라는게 욕심이 너무 많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