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26 엽기적인 현실
오늘 동경은 아주 청명하게 뜨거운 날씨다. 최고기온이 37도에 최저기온이 26도라고 한다. 어제도 덥기는 마찬가지로 최고기온이 36도에 최저기온이 28도였다. 오늘은 습도가 50% 이하로 낮아서 습도가 높았던 어제 보다 지내기가 수월하다. 수월하다고 하지만 오후 4시가 넘은 지금 해가 짧아져서 저녁이라는 걸 느끼는데도 35도나 된다. 저녁에 가까워 커튼과 창문을 열고 바깥을 봤더니 너무 더워서 창문을 닫고 커튼을 다시 내렸다.
금요일 요코하마에 가서 진하게 놀고 온 후유증으로 어제 토요일은 집에서 지낼 요량이었다. 그런데 일기예보를 봤더니 최고기온이 36도라고 해서 더위가 무서워 학교로 피난을 갔다. 학부 도서관은 주말에 문을 닫기 때문에 냉방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몰랐다. 학교에 냉방이 꺼진 걸 안 것은 학교에 도착해서다. 하지만, 햇빛이 덜 들어오는 곳, 그늘진 곳은 실온이 낮아서 지낼 만했다. 실은 오늘도 학교로 피난할 예정이었지만, 냉방이 없으면 학교에 갈 필요가 없다. 어제 힘들었던 것은 저녁에서 밤이었다. 바람 한점 없는 무더운 저녁과 밤이었다. 허긴 최저기온이 28도라는 것은 저녁, 밤이 되어도 열기가 식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어제 좋았던 점은 도서관에 오며 가며 참외를 몇 개 살 수 있었고 고추도 두 봉지 샀다. 학교에서는 가져간 책을 마저 읽지 못해도 전날 산 실크실 네 타래를 다 감았다.
타이에서 만든 것으로 생사, 아주 부드러운 실이었다. 생사를 쓰는데 익숙하지 않다. 생사는 면이나 삼베, 모도 마찬가지로 염색하기 전 상태라서 흰색이라기보다 크림색에 가깝다. 생사는 원재료의 형태에 가장 가까운 가공이 덜 된 상태다. 실을 보니 대량생산한 것이 아니라, 가내 수공업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실을 접하면 어떤 사람이 누에고치를 키워서 삶아 실을 뽑아낸 것일까? 상상하게 된다. 실을 보면서 가내 수공업으로 생산한 집의 상태를 상상한다. 타이 시골에서 누에고치를 키워 실을 만든 사람들은 여성의 손길에 의한 것이겠지. 단지, 실의 상태로 보면 결코 품질이 좋거나 쓰기 쉬운 것이 아니다. 뜨개질을 해도 전혀 실용적이 아니라, 원래 형태를 유지하기 힘들다. 재료로서 결점이 많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 시골에서 여성들이 키운 누에고치로 실을 뽑아 낸 것이 내 손에 오기까지 먼 길을 상상하게 감정을 자극한다는 점에서는 아주 뛰어난 소재다. 결점이 장점이 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실크 생사는 친근한 소재가 아니었다. 대신에 광목, 모, 삼베, 모시등이 염색을 하기 이전 상태를 접하는 일은 참 많았다. 특히, 광목이나 삼베는 상복과 소복이었다. 실크가 있어도 어린아이가 직접 쓸 일이 없었던 것이다. 광목은 이불 홑청으로도 많이 쓰여서 결혼을 준비하는 젊은 여성은 몇 번이나 빨아서 햇볕에 바래고 다시 빨고를 되풀이하면서 하얗고 보드랍게 만든다. 정성과 설레임으로 자수와 뜨개질을 해서 혼수품을 준비했던 것이다. 생사나 염색이 안된 상태라는 것은 사람 손길이 더해져서 무궁무진하게 가공할 가능성을 남긴 것이다. 어제 학교에서 의자를 두 개에 실타래를 걸고 감으면서 상상하고 추억을 떠올렸다.
오늘은 너무 덥다는 핑계로 주말 행사인 청소를 안 하기로 했다. 요새 낙으로 여기는 야채를 사러 가는 것도 포기하기로 했다. 더운 것도 너무 더워서 엽기적이다. 지금이 어느 절기인가, 8월 하고도 하순인데 7월 가장 더울 때와 같다니 믿기가 힘들다. 태풍이 두 개나 지나면서 폭염을 가져간 줄 알았더니, 폭염은 그대로 남기고 갔다. 내일도 최고기온이 35도를 넘고 최저기온이 27도로 지내기 힘든 날씨다. 폭염이나 열대야도 너무 오래 지속되어 폭염이나 열대야라면서 구분하는 것이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그저 제발 빨리 이 엽기적인 더위가 가시길 바랄 뿐이다.
엽기적이라는 것은 보통 잘 있을 수 없는 상상하기 어려운 보고 싶지 않은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면 엽기적이라는 것도 특별한 구분이 아닌 것이 되고 만다. 오늘 페북에 올라온 아사히신문 온라인에 실린 기사에 의하면 자민당 총재선에 나오는 이시바 씨가 자신의 선거캠페인으로 내건 '정직, 공정'이라는 말이 누군가를 공격하는 말이 된다니 쓰지 않겠다고 한다. 이시바씨가 내건 '정직, 공정'이라는 말은 사실상 선거 상대인 아베 총리를 겨눈 것이다. 자민당 내에서 이시바 씨가 내건 것이 아베 총리를 공격하는 것이 된다고 해서 비판이 인 것이다. 이시바씨가 선거에서 이기고 싶은 상대인 아베총리를 겨눈 말을 내거는 것은 당연하다. 거기에 '정직, 공정'은 선거용으로 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인 것이다. 그런 말이 개인, 그것도 공인, 정치적 리더에게 공격이 된다는 상태야 말로 엽기적이다. 그것이 개인적인 공격이 된다는 것 자체가 일본 정치가 엽기적인 상태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아베 총리는 자신이 당선되면 보복인사를 해서 가만두지 않겠다고 위협하면서 견제하고 있다. 양아치나 조폭도 아니고, 같은 당내에서 이런 협박을 하면서 선거를 한단다. 설사, 양아치나 조폭이라도 자신이 속한 조직을 생각하면 이런 협박을 하면 안 된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태는 문제가 되지 않고 상대방이 내건 '정직, 공정'을 문제 삼는다. 아베 총리를 지지하는 자민당 내 세력은 아베 총리가 '정직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 된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내 입장에서도 곤란하다. '정직하거나 공정하지' 않은 사람이 리더가 된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커닝을 하지 말라고, 거짓말하지 말라고, 어떻게 말하나. 채점을 공정하지 않게 하겠다고 해도 되나? 뭘 기준으로...... 세상이...... 꼭 '정직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지만, 교육이나 정치, 사회에서 인정하면 안 된다. '정직, 공정'이라는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런 걸 정치적 리더가 대놓고 무시한다면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엽기적이다. 날씨가 엽기적인 것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가 없지만, 세상이, 정치가 엽기적으로 변하고 있다. 날씨는 스쳐 지나가지만 정치는 살아가는 현실이다.
주말 행사인 청소나 간단히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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