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07 한산한 신오쿠보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비가 온다.
나는 왠지 오랜만에 밥이 먹고 싶어서 아침부터 밥을 하는 중이다. 밥은 반찬이 필요한지라 뭔가 반찬도 있어야 한다. 밥을 해가면서 블로그를 쓴다.
요즘 동경 날씨는 더위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급격히 가을이 되어가는 날씨가 동시에 진행 중이다. 즉 이상한, 괴로운 날씨라는 것이다. 햇살이 있을 때는 아직도 아주 따갑다. 그러다 갑자기 비가 온다. 어제도 아침에 맑았는데, 오후에는 비가 오다가 맑아지다가를 세 번이나 했다. 날씨가 아주 재주를 부린다. 지난 주도 화요일에 수업을 하는 데 너무 땀이 나서 목에 땀띠가 나는 줄 알았다. 그것도 교실에 따라 상태가 다르니 학생도 수업에 집중을 못하고, 나도 괴롭고 학생에게 쾌적한 수업환경을 제공하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
지난 주에 논문이 끝나서 겨우 한시름 놓았다. 그 다음은 거기서 빠져나오는데 며칠이 걸렸다. 마치 외국에 다녀오면 갔다 온 며칠 후에 피곤이 밀려오는 것처럼 노곤했다. 여름방학이 끝날 때 약속했던 학생들에게 논문이 끝나서 시간이 있다는 메일을 했다. 신오쿠보에 밥 먹으러 가자고. 그랬더니 당장 이튿날, 수요일 오후에 가자는 문자가 왔다. 나도 그래, 가지고 수요일 저녁에 신오쿠보역에서 만났다.
학교 수업에서 만나는 학생이라, 개인적인 말을 한 적이 없어서, 학생들 개인적인 사항은 모른다. 학생들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과 성실한 학생이라는 것은 안다. 한 명은 오사카 출신이란다. 일 학년인데 항상 화장을 한다. 화장도 틀이 잡혀있다. 이 건 화장경력이 꽤 된다는 것이다. 한 명은 나가노 출신이다. 오사카 출신 학생은 내 얼굴만 봐도 웃느라고 정신이 없다. 내가 웃기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버린 학생이다. 나가노 출신 학생은 좀 개성적이고 독특하다. 그랬더니,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한다. 요즘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학생도 좀 본다. 내 주위에 그런 학생들이 온다. 그냥, 아마추어로 활동하는 학생들도 오지만, 프로가 되고 싶은 아이들도 온다. 내가 아무래도 그런 뭔가 창작적인 것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자극하는 면이 있나 보다. 성량이 풍부하다면서, 돈을 벌어서 보이스 트레이닝을 받는다고 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게 세 가지라면서, 연예인과 고래 조련사, 세 번째는 잊었다. 나는 고래조련사와 잊어버린 것은 할 수 있겠다고, 그런데 연예인이 되면 다른 두 개는 못한다, 노래를 취미로 하라고 했다. 한 아이는 박물관 학예사가 되고 싶단다. 박물관 학예사는 아주 많은 지식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야. 나도 그에 관련된 과목도 담당을 한다. 일본문화사에는 그런 학생들이 오더라. 너는 차근차근 해나가는 스타일이니까, 괜찮을 것 같아. 연예인이 되고 싶은 아이는 나에게 관계되는 일을 하는 사람을 알면 소개해 달란다.
신오쿠보에 가면 항상 가는 가게가 있다. 순대집이라는 신오쿠보에서 오래된 가게이다. 20년 되었다는… 나는 이 집 순대만 먹는다. 원래 순대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돼지고기도 못 먹었다. 그런데 이 집 순대는 냄새도 없고 맛있다. 외국에 살다 보면, 불고기나 뻑쩍찌근한 한정식이 먹고 싶은 게 아니라, 가끔 이런 주전부리 같은 음식이 먹고 싶다. 닭도리탕을 예약해 놨다. 좀 이른 시간에 가서 그런지 손님이 없다. 사장님이 직접 나오셔서 서빙을 해 주신다. 학생들이 두 시간 걸려서 왔다니까 순대를 한 접시 서비스로 주신다. 나는 15년 이상을 때로는 비행기를 타고 다녀도 이런 서비스가 없었는데… 그런데, 손님이 없다. 6시가 넘어서 다른 손님이 한팀 들어왔다. 한 시간 이상 우리 셋만 있었던 것이다. 사장님께 아무래도 8월에 있었던 영토문제와 신오쿠보에 있었던 헤이트 데모가 관계가 있냐고 했더니, 영향이 있다고 한다. 거기에다 불경기다. 불경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니까. 내가 거기를 그렇게 오래 다녀도 오늘처럼 손님이 없는 걸 처음 봤다. 식사를 마치고 걸어 나오면서 다른 가게를 봐도 손님이 드물다. 한국광장이라는 슈퍼에 들렀더니 거기도 한산하다. 그래서 반찬이나, 떡종류가 반액이었다. 나는 참외를 사려고 들렀는데 참외가 없었다. 반찬이나 떡도 쌌지만, 안 샀다. 학생들도 아무것도 안 산다. 내가 김자반이 190엔으로 싸다니까, 둘도 나랑 같이 산다. 그리고 가부키초를 거쳐서 신주쿠로 왔다.
요즘 한창 광고하는 빅카메라와 유니클로가 콜라보 한 가게에 갔다. 빅크로라고, 아주 크게 유니클로 옷과 가전제품을 같이 전개한다. 좀 새로운 느낌이다. 가전제품과 옷이 어우러져있다. 사람도 많다. 사람들이 몰려 있다. 신주쿠도 전혀 생기가, 활기도 없는 데, 여기는 아주 조명이 밝고 가게도 흰색을 기본 색조로 컬러풀한 상품이 눈에 잘 들어온다. 사람들이 많이 있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과 없는 곳 명암이 확실히 갈려 있다. 평일이라, 그 나름 평균적으로 사람이 있을 거라 예상을 했는 데 그렇지 않았다. 일본이 불경기 불경기 했지만, 신주쿠에 이렇게 사람이 없는 걸 본 적이 없다. 예상외로 아주 심각하다. 유니클로에 가도 뭔가 사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저 요새 새로운 거라고 선전을 하니까, 좀 본 것이다. 그리고 별로 싸지도 않다. 그래도 유니클로에는 사람이 몰려서 장사가 잘 된다. 나는 별로 안 간다. 사는 것은 정해져 있다..
신오쿠보에 사람이 너무 없는 게 씁쓸한 기분이었다. 내가 한국사람이라, 한국사람들이 장사를 못할 거라, 걱정이 되는 차원이 아니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다.
사회를 계속 관찰을 하는 입장에서, 사람들이 긴 시간에 걸쳐 노력해 쌓아 온 결과를 정부와 무책임한 매스컴과 몹쓸 사람들이 몰지각한 행동으로 쳐부순 것에 화가 난다. 신오쿠보는 신주쿠 가까이에 있는 도심이었지만, 아주 이상한 곳으로 보통사람들이 가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외국사람들도 방을 빌릴 수 있었고 거기서 가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신주쿠 가부키초는 세계 최대의 환락가다. 거기서 일을 하는 한국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꽤 있었다. 한참일 때는 신주쿠 구야쿠쇼 도리에 서 있으면, 성장을 하고 일터로 출근하는 한국 언니들이 줄을 이었다. 신오쿠보는 신주쿠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는 인상이었다. 신주쿠에서 가부키초에 가서 풍속 영업점들을 지나, 러브호텔가를 지나서 가는 곳이었다. 보통사람들이 지나가지도 않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한국사람들이 중심적으로 상업지구를 형성해 갔다. 한국사람들이 드나들면서, 한류가 유행을 하면서 일본 사람들이 몰려서 요 몇 년은 동경에서 가장 활기가 있는 곳이었다. 이렇게 오는 데 20년 이상 걸렸다.
영토문제가 이슈가 되어 있을 때, 신문보도에 의하면, 양국 간에 문제가 있어도 신오쿠보에 가는 사람들 발길은 계속된다는 것이었다. 혐한 데모 영상을 유튜브로 봤다. 일본 친구가 말을 해서 알았다. 좀 기가 막혔다. 그래서 걱정이 되었다. 실제로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한산하다. 슈퍼에도 어쩌다가 내가 간 시간에 한산한 게 아니었다. 그런 것이라면, 사람만 한산하지, 물건은 한산하지 않다. 그런데, 사람이 한산하고 물건이 한산했다. 손님이 안 오니까, 물건을 진열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거기서 참외를 살 수 있었는데, 참외도 안 보인다. 참외가 안 보이는 것도 처음이다.
일부 일본 사람들이 신오쿠보를 공격하는 것은 자신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신오쿠보에서 장사하는 가게에 사람이 오는 것은 자신들의 경제를 살리는 것이다. 외국인이 장사를 해서 가겟세를 내고 세금을 내고, 일본 사람을 고용한다. 시기와 질투로 거기에서 살고 장사하는 사람과 거기에 놀러 오는 사람을 공격하지 말라.
어리석은 사람들이여. 당신들 스스로가 당신들이 살아가는 사회 숨통을 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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