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09 가을이 왔다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잔뜩 흐린 날씨다. 최고기온이 15에 최저기온이 11도라니, 가을이 아니라 겨울 날씨다. 아직 그다지 춥지 않지만 흐린 날은 실제 기온보다 춥다.
오늘은 오랜만에 9시까지 늦잠을 잤다. 그래도 내가 깬 시점에서는 날씨가 덜 흐려서 얼른 욕조에 있던 물을 세탁기에 부어서 세탁기를 돌렸다. 손빨래도 해서 물기를 빼서 널었다. 어젯밤에 일기예보를 보니 오늘이 맑고 내일도 흐리고 모레는 비가 온다는 데, 여차하다가는 주말에 빨래를 못하게 생겼다. 빨래를 하고 나니 날씨가 점점 흐려간다는… 그래도 어떡하나 베란다에 하나 가득 빨래를 해서 널었다.
날씨가 추워진 걸 느낀 것은 지난 목요일부터다. 목요일에는 건물 안에서도 춥게 느껴져서 정말로 날씨가 추워진 걸 알았다. 어제는 오스트라리안 스터디스 강의에서 토픽이 애보리지니였다. 강의 토픽에 맞는 옷을 입을 것인가, 날씨에 맞춰서 옷을 입을 것인가 아침부터 망설였다. 어제도 아침에는 추웠다. 애보리지니의 그림 같은 무늬의 미니원피스가 여름 것이라서 입었다가 감기에 걸리면 정말로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애보리지니는 내가 애착이 강한 테마다. 호주의 백인과 일본인, 애보리지니와 아이누를 병행시켜가며 말을 한다. 그리고 근대화, 식민지주의, 사회진화론, 풍요롭다는 것은 무엇인가 등이 키워드였다. 이 강의는 학생들이 열기가 있는 수업이다. 까짓것 아낌없이 보여 줘야지. 토실토실한 팔다리와 아줌마의 깡을… 혼자서 중얼거리고는 속에 옷을 잔뜩 껴입고 애보리지니 그림 무늬로 보이는 민소매 여름 원피스를 입었다. 강의하다가 여차하면 옷을 벗는다. 떠들다 보면 자체적으로 발열해서 더워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쪽 다리에만 뒤로 분홍별이 위아래로 박힌 검 정스 파츠에 목이 짧은 검정 부츠를 신었다. 여학생이 오늘 옷도 개성적으로 아주 멋있어요 하트 마크를 붙여줬다. 오늘 아침에 손빨래해서 지금은 베란다에 걸려있다. 올해는 더 이상 민소매 여름 원피스가 등장할 일이 없을 것이다.
어제 수업은 원피스 효과?? 인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평균적으로 감상문 레벨이 높았다. 아주 괜찮은 감상문도 많이 올라왔다. 그래, 그러는 거야. 원피스 효과가 있었는지는 전혀 검증하지 못했지만 내가 전하려 한 것이 조금은 전달된 것 같다. 아, 다행이다. 그냥 미친 아줌마로 끝나지 않아서, 미친 아줌마로 날뛰다가 끝나는 것과 수업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주 작은 차이다.
3-4교시에 그냥 민소매로 교실에서 깝죽거렸다. 3교시에는 코트를 입은 여학생이 창문을 열면 춥다고 선생님은 춥지 않냐고 어이없어한다. 4교시가 끝날 무렵 남학생이 이 시간 이후에는 급격히 추워지니까, 선생님 옷을 입으세요. 코트는 입고 왔지요? 학생들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학생들 눈에 얼마나 철이 없어 보였으면 그런 걱정을 할까?
지난 월요일 친구에게 옷을 어떻게 입는지 보여줘야 한다는 사명감?에, 아니다, 여기서는 그냥 친구와 카페에 가거나 식사를 목적으로 만날 기회가 없다. 강의가 있는 날 강의가 끝나서 만나거나, 다른 일과 겹쳐서 만나는 게 대부분이다. 지난 월요일에는 드물게 그냥 친구를 만난 거다. 휴일 어정쩡한 장소에서 식사하기로 했던 것이다. 사실 두부 요릿집은 완전 화식집이라, 일본 초가집으로 인테리어를 한 곳이다. 근데, 안에 들어가면 보통 남자들이 많은 곳으로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손님층이다. 그러나, 웬만한 곳은 남자들이 많아서 어쩔 수가 없다. 그날 내가 입었던 것은 보라색 바탕에 흰색 별이 있는 스팡콜 미니원피스였다. 내 옷차림을 본 친구가 기절하려고 한다. 이 옷은 보라색을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주려고 샀던 거다. 어쩌다 보니 기회가 없어서 그냥 남았다. 나도 별로 입을 기회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다, 밑에는 검정 스파츠에 검정 부츠를 신었다. 그다지 튀는 패션도 아닌 것이, 튀였나 보다… 난 튀는 사람이라고 한다. 어떤 옷을 입느냐가 아니고 존재 자체가 튄다고, 그걸 자주 잊는다.
어제 일이 끝나서 거의 뛰다시피 집에 돌아왔다. 택배가 내 컴퓨터를 가지러 오기로 했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느라고 마트에도 안 들리고 그냥 집으로 후다닥 돌아왔다. 아저씨는 7시가 돼서야 큰 상자를 가지고 왔다. 거기에는 컴퓨터를 보호하는 완충제가 많이 들어있었다. 컴퓨터 본체는 이미 하루 전부터 현관에 나가 있었다. 택배가 오기만 하면 포장해서 가져갈 수 있게 현관에서 기다린 것이다. 택배 아저씨가 담배냄새에 절어서 아주 피곤해 보인다. 신선한 귤을 하나 갔다 줬다. 매우 고마워한다. 나는 문제의 컴퓨터가 공장으로 가서 너무나 개운하고 시원한 기분이다. 그런데 마트에 안 들려서 주말에 먹을 식량이 시원치 않다는 걸 알았다. 때는 이미 늦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복장으로 택배를 기다렸다가 옷을 갈아입고 하루 일과를 마쳤다는 기분이 들었다. 도저히 마트에 갈 기분이 아닌 것이다.
식량이 부족한 주말을 보낼 것인지, 아니면 마트에 갈 것인지… 모르겠다. 아직, 과일은 충분히 있고 야채도 조금 있고, 그냥 적당히 보낼까 싶다.
아침에 베란다에서 보니, 드디어 내 베란다에도 가을이 왔다. 가을이 왔는 데, 이 추위는 겨울 같다는 느낌, 이상하다. 어제까지 민소매를 입고 깝죽거렸는 데, 벌써 겨울이면 이상한 것이다. 겨울이여, 좀 기다려다오, 아직 가을을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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