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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미소지니와 제노포비아

성폭행의 '신화'와 '실태'

2017/11/20 성폭행의 '신화' '실태'

 

오늘 동경은 흐리고 추운 날씨였다. 아직 가을이 한참 남은 계절인데, 날씨는 벌써 겨울이 같다. 오늘은 월요일로 도서관에 가는 날이다. 도서관에서 그동안 빌리려고 했는데 누군가 빌려가서 읽은 책을 빌렸다. 요새, 책을 집중해서 열심히 읽지 못하고 있다. 조금 난해한 책을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현상을 빌린 책에서 답을 찾을 있을 같다.

 

오늘 도서관에서 읽은 책은 '성폭행 피해자'의 수기이다. 미국에서 있었던 사건의 '피해자'였던 여성의 '가해자'는 잡혔다. 오늘 읽은 책을 쓴 여성의 '회복'에는 '종교'에 의지한 측면이 크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것이다. 그런 사건에서 '회복'한 케이스를 Survivor(생환자)라고 한다. 살아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 책에 해설을 쓴 여성학자에 의하면 '성폭행'을 당한다는 것은 '영혼의 살인'이라고 한다. '살인' 당한 사람이 '회복'함으로서 살아 돌아온 '생환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건'이 있기 전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다.

 

'성폭력'에 대한 연구서로 고전이라는 책에서 '강간의 정의'를 옮겨 쓴다. " (강간은) 성적공격이라기 보다 타인의 권리에 대해 폭력적인 침해다.(중략) 모르는 남자던, 아는 사람이던, 성적관계를 여성에 공생하는 남성의 동기는 , 일반적으로, 성욕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공격성은 착취, 약탈의 한 형태로서 돌고 돌아서 결국은 착취, 약탈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의 일반적 자세를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강간하는 남자의 기본자세는 그가 지닌 주위의 문화에 의해 함양된 것이다. "

 

더불어 '강간(성폭행)'에 대한 신화를 재검증하고 있다. 신화는 일반적으로 유포된 내용으로 널리 알려진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신화와 다르다는 것이 실태가 된다.

 

신화: 성적 욕구불만이 강간의 원인이다.

실태: 성적 욕구불만은 강간의 수많은 원인 중 하나일 뿐이다.

 

신화: 강간은 충동적인 행위다.

실태: 신고된 강간사건의 4분의 3은 계획적인 것이었다.

 

신화: 강간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유혹에 의해서 일어난다.

실태: 강간은 무방비한 상태의 피해자를 상대로 일어난다.

 

신화: 강간에 있어 피해자가 저항하지 못하는 것은 잔혹한 행위 때문이다.

실태: 대부분의 경우, 강간의 피해자가 저항하지 못하는 것은 공포심 때문이다.

 

신화: 강간하는 것은 모르는 남자다.

실태: 많은 경우, 강간하는 남자와 피해자는 아는 사이다.

 

신화: 강간은 성급하게 암묵시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실태: 강간사건에서는 말을 주고 받으며, 범행이 수시간에 걸쳐 행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성폭행'의 근본적인 원인은 '지배의 폭력'이며, 성차별 의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성폭행'을 한 남성 측 연구에서도 "강간이라는 것은, 성적 쾌감이나 성적 만족과 관련된 것이라기보다, 지위, 증오, 통제, 지배와 관련된 측면이 훨씬 강한 성행동으로 유사 성적인 행위이다. 성이라는 것과는 관계없는 상대를 상처 주고 굴욕을 주며, 공포심을 주고, 상대의 자존심을 산산조각 내서, 무력한 존재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지배의 폭력에 '만족' '쾌감'을 느끼게 하는 걸 배우고 가담하는 문화에서 살고 있다. 아무리 그런 문화의 탓으로 불쾌하다고 해도 지구의 대부분은 그런 문화로 뒤덮여 있어 거기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다. 하지만, 폭력을 긍정적으로 다루는 영화, 여성차별을 장난으로 하거나, 여성을 '보고' '등급을 정하며' 성의 상품화에 협조하는 표현에 대해 'NO'라고 하며, 선별하는 것. 예를 들어 강간을 고발하는 것이라도, 강간 피해의 상처로 괴로운 사람들을 다시 상처를 줄 경우가 있을 정도로 센시티브 한 문제이다. 한편으로 지지할 수 있는 표현물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YES'라고 하는 것 등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 있지만, 어느 한쪽의 성에 대해서 공포나 혐오,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표현', '표현의 자유'라는 말로 하는 것은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글을 쓰는 도중에 네팔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신의 생일이라고 네팔에도 전화를 했고 나에게 전화를 했단다. 40분 이상 통하지 않는 말을 했더니, 급격히 피곤하다. 일본어가 안되니까, 영어로 말하자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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