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03 층간 소음문제
오늘 동경 날씨는 흐리다.
아침부터 약간 어두컴컴하다. 겨울용으로 방과 방 사이에 미닫이문을 내서 끼웠다. 조금은 방한이 된다.
최고기온도 낮아서 전형적인 겨울 날씨다. 집안이 춥다. 이런 날씨는 일을 할 의욕이 저하된다. 그러나, 날씨에 따라 일을 가리고 있을 처지가 못된다. 그래서, 일하는 기분으로 올리려고 과자를 그것도 좀 재미있는 과자를 눈앞에 놓고 마음을 달래 가며 일을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창밖에 가을풍경이 남아있어서 눈이 즐겁다는 것이다.
지난 주 월요일 아침에 관리사무소에서 왔다. 아직 일어나서 아침도 안 먹은 때라, 얼굴도 씻지 않았다. 관리사무소에서 무슨 용건일까, 그러면서 문을 열었더니 친절하게 생긴 아저씨가 서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주위에서 내가 개를 키우고 있다는 통보가 있었단다. 그리고 밤중에 소음을 낸다고 통보가 있어서 확인차 나왔단다. 여기는 규정상 개나 고양이를 키울 수 없다. 물론, 규정을 무시하고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키우지 않는다. 개나 고양이는커녕 식물조차 못 키운다. 일년에 두 번은 외국에 나가서 두 달씩 살고 들어오는 처지라서, 동물이나 식물에게 책임을 못 진다. 밤중에 소음은 어떤 건지? 아파트가 오래된 아파트라서 위층에서 하는 게 아래층에 울리고 소리가 들린다. 어느 정도는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나름 아래층에 소음을 신경을 쓰는 처지다.
그러나, 깜짝 놀랐다. 아니 왜? 지금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뜬금없이 새삼스럽게 이제 와서 왜 문제가 생기는지? 아침을 먹으며 생각을 했다. 뭐야, 혹시 내가 외국인이라고, 한국사람이라고, 문제가 된거야? ‘영토문제’가 이런 파장이 되어 영향을 미치는 걸까? 그냥 있다가, 피해망상에 사로 잡힐 것 같다. 문제는 일찌감치 제대로 파악을 해야 한다..
아침을 먹고 얼굴도 씻고 옷을 갈아입어 관리사무소에 갔다. 아까 아저씨는 없고 사무 보는 아줌마가 있다. 아까 아저씨가 와서 했던 말을 자세히 알고 싶다고 인사를 했다. 사람이 자신의 생활습관은 잘 모르잖아요, 혹시 제 부주의로 주위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다면 미안하니까, 문제를 자세히 알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그 말을 듣더니, 관리사무소는 내가 개를 키우거나 소음을 내는 사람이 아닐 거라고 본단다. 그러면서, 그런 말을 듣고 확인하러 오는 사람도 없다고, 그리고 자신이 소음을 낼지도 모른다는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주의를 하면서 사는 사람이라는 걸 안단다. 그래도 내가 결백하다는 것을 관리사무소는 알아주어야 한다. 내가 개를 키우는지 아닌지, 언제든지 집안에 들어와서 확인을 해도 좋다고. 그리고, 소음이라는 건 뭐냐고. 밤중에 돌을 떨어뜨리는 소리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절대로 내가 내는 소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러면서, 그 전에도 그런 통보가 있어서 확인했더니 밤중에 체조를 하면서 퉁퉁 뛰었단다. 그 건 단순히 소음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것이고, 사실이면 사건이 될 거라고 말을 했다. 나온 김에, 개를 집에서 키운다면 나처럼 일을 다니는 사람은 못 키울 거라고, 왜냐하면 일을 나간 사이에 개가 울면 금방 주위 사람들이 알 텐데, 어떻게 키우냐고 했다. 그리고, 나름 소음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알렸다. 아래층과도 인사를 잘하는 데, 혹시 아래층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면 문제는 심각한 거다. 아래층이 아니란다. 그러면서 내가 소음을 내는 게 아니라, 항상 집에 틀어 박혀있는 사람이 그런 망상을 하는 거라고 본단다. 내가 원인제공을 한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머릿속에서 생겨난 피해망상인 것이다.
내가 외국인이어서, 터무니없는 누명을 쓴 거다. 지금까지 살면서 주위 사람과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 없었다. 같이 살던 사람들과는 친구가 되는 편이다. 어제 친구에게 말했더니 일본 친구가 차별이라고 팔딱팔딱 뛴다. 어쨌든 나는 너무 놀랬고, 아주 피곤했다.
어제 아침은 갑자기 친구네 집에 가게 돼서 마땅히 가지고 갈게 없다. 냉장고에 있던 친구가 좋아하는 까망벨치즈를 하나 주머니에 집어넣고, 고구마를 쪄서 따끈따끈한 걸 들고 갔다. 용건은 공개수업을 같이 하는 건데, 어떻게 그 말은 진전이 잘 안 된다. 실은 친구가 나를 집으로 초대하려고 꽃화분을 사놓고 몇 주가 지났단다. 그리고 케이크도 만들었는데, 다 먹었단다. 그래서 티라미스를 다시 만들었다. 내 말을 듣고, 인간들이 더럽고 치사하다고 화를 낸다. 아, 다행이다. 나보다 분하고 억울해 주는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어서. 친구가 당한 일을 자기일 처럼 억울해 주는 친구, 일본에서는 별로 없다. 경험상 1% 정도 확률이다. 이 친구와 여기까지 오는 데, 4년이 걸렸다. 그리고 처음이다. 다른 사람들은 20년 이상 사귀어서 힘든 일을 같이 보내도,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해도, 내게 집을 물려준다고 해도 내 입장이 되어 억울해 하진 않았다. 위로가 되는 건 집이나 재산이 아니라, 호화로운 식사가 아니라, 공감하는 작은 마음인 것 같은데, 의외로 어려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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