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06 동경의 만추-다카하타후도(5)
오늘 동경의 날씨는 아침에 흐렸지만 대체로 맑고 따뜻한 날이었다.
후배와 이른 아침 겸 점심, 브런치를 먹고 둘이서 신주쿠교엔에 갔다.
역구내에서 코지코너의 슈크림도 두 개 샀다. 디저트로 공원에서 먹으려고. 신주쿠교엔은 도심이라 지금쯤 단풍이 예쁠 것 같아서 갔더니, 오늘은 월요일이라 공원이 쉬는 날이란다. 밖에서 조금 들여다봐도 단풍이 예쁘다. 아, 참 아쉽고 아깝다. 할 수 없이 공원 밖에 햇볕 드는 길가에 앉아서 후배가 집에서 뽑아서 가져온 커피를 마시고, 케이크를 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눈앞에 아는 사람이 지나간다. 뒤에서 말을 걸었다,
미안합니다, 저 유학생 상담실에 계시지 않았나요?
어머, 이게 누구야, 세상에 오랜만이야, 어떻게 지내는데?
글쎄 말이에요.
그러고 나서는 같이 걷던 남편을 두고 나는 같이 있던 후배를 내팽개치고 길에 서서 둘이서 한참 수다를 떨었다. 내 연락처를 적어주며 헤어졌다. 그분도 이케부쿠로에서 단풍을 보러 왔더니 공원 문이 닫혔다며, 아쉬워했다.
유학생 상담실이라는 데는 일본에서 유학생 문제에 관한 상담을 해주었던 볼런티어 그룹이었다. 나는 유학생으로 초창기인 1987년부터 2003년 해체될 때까지 관여했다. 그 볼런티어 그룹은 유학생들의 문제에 관해 볼런티어로 상담을 시작한 건 일본에 외국인(주로 노동자와 유학생을 가리킴)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초창기였고 대표적인 그룹이기도 했다. 거기에는 뜻이 있는 유학생들도 참여해서 볼런티어와 유학생들이 같이 문제를 생각하고 좋은 방법들을 모색하기도 했다. 거기는 아줌마들로 구성된 작은 민간 볼런티어 그룹이었지만, 정말 참으로 많은 일들을 했다.
나는 학생 때부터 유학생 문제를 비롯해 외국인 노동자 관련, 난민, 국제교류 등 각종 활동에 꾸준히 참여해 왔다. 그리고 참여하기 시작하면 그런 단체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중심적으로 관여를 해왔다. 그런 것들이 내 연구의 토대가 되고 필드가 되기도 했다.
사실은 연구하는 사람이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살고 일을 돕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쓰는 게 제대로 된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하다 보니 현장에서 일을 하는 입장에서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 돕는 일의 현장을 논문으로 써가는 사람이 되었다. 현장에서 문제에 부딪치면서 논문을 썼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못쓰는 논문도 쓸 수 있었나 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외국인 유학생이나 노동자들을 둘러싼 문제가 연구테마나 연구대상이었지만 나한테는 현실이었고 살아가는 생활이었으니까,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람들 안에서 나는 인간으로서 성장을 했고 연구자로서도 키워져 갔다. 내가 다녔던 대학이나 강의에서 뭘 배웠는지, 거의 기억이 없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통해, 연구대상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그 들의 삶을 통해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물론, 대학교라는 틀, 특히 나를 자유롭게 해 준 지도교수의 뒷받침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이상은 오늘 신주쿠교엔 앞에서 우연히 지인을 만나서 일깨워진 것 들이다.
다카하타후도 단풍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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