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2 새 컴퓨터
오늘 동경은 맑아서 낮에는 따뜻했지만, 밤에는 기온이 내려가서 춥다. 주말에는 블로그를 올리고 나서 이번 학기 강의, 학생들 수업 태도에 관해 고민하느라 정신없이 지냈다. 그냥 그대로 가면 단위를 못 받는 학생들이 많아질 것 같아서 걱정이었다. 평가는 물론 정해진 기준에 의한 것이다. 솔직히 단위를 주는 기준은 상당히 낮다. 출석을 채우고 최저한을 했으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저한마저도 안 하고 단위를 받으려면 곤란하다. 주위 동료들도 내 기준이 엄격한 것이라고 오해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 오늘 점심시간에 밝혔더니 동료들도 기가 막혀한다. 내가 원하는 최저한은 30시간(90분 수업이라 45시간) 수업에서 한 시간에 할 정도인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 반정도가 그것도 못할 것 같아서 기가 막힌다. 도대체 기준을 얼마나 낮춰야 한다는 건가? 기준이 문제가 아니다. 내가 하는 방식은 초등학생이라도 지시대로 하면 정해진 성과를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칠판에 쓰는 것도 색을 구분해서 한눈에 포인트가 확 들어오게 한다. 학생들을 위해서 칠판에 쓰는 것처럼 노트를 일찍이 썼다면 내 인생이 아주 달라졌을 거다. 자신을 위해서는 생각지도 못 했던 걸 학생들을 위해서라면 한다.
문제는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가 아니다. 오히려 열심히 하면 안된다고도 한다. 학생들이 수업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수업 이전에 공부하는 훈련이 안된 상태로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다. 거기에 수업에 집중도 못한다. 속수무책이다.
오늘은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전 마지막 수업이 있는 날이다. 아침에 학교에 가서 담당부서에 가서 상담했다. 학생들 수업태도가 너무 나빠서 성적이 심히 고민된다는 내용이다. 다음에 학부장을 만나서 커피를 마셨다. 학생들 경향에 관한 의견교환을 했다. 2교시 수업에 들어 가려니 봄학기 강의를 들었던 학생이 인사하러 왔다. 선생님 수업을 듣고 싶어서 왔단다. 여학생들이 그 학생이 나를 좋아한다고 놀린다. 그래도 인사하러 올 생각도 하고 기특하다. 2교시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학생들에게 그대로 가면 단위를 받기가 힘들지도 모른다는 안내 했다. 학기말 마지막까지 열심히 하라고… 겨울방학 숙제도 하라고 했더니 수업에 집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모자라서 어중간하게 끝났다. 점심시간에는 후배 연구실에 가서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의견교환을 했다. 후배도 피곤이 누적된 얼굴이다. 담당부서 직원도 왔다. 직원과는 수업이 끝나서 별도로 만나기로 했다. 3교시에서는 겨울방학 숙제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준비가 됐다. 여기서 그동안 제대로 했던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명암이 확실히 갈라진다. 제대로 했던 학생은 확실히 효과가 나타났다. 지금까지 했던 것이 종합적으로 효과를 내서 세상이 확 밝아졌다. 학생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적당히 중요한 대목에서 결석했던 학생에겐 그만큼 어려워진다. 중요한 대목을 제대로 노트에 안 쓴 학생은 정확하게 그 부분에 구멍이 난다. 거꾸로 그동안 반항적인 태도였던 학생이 옆에서 봐줬더니 마지막에 와서 폭발적인 파워를 발휘하고 말았다. 그동안 반항적인 태도는 관심을 가져 달라는 사인이었구나...... 관심을 보이니까, 자신감을 가졌구나...
3교시를 마치고 갔더니 미국 선생이 크리스마스라고 쿠키를 구워서 왔다. 쿠키를 얻었다. 작년에 강의를 들었던 학생과 수다를 떨었다. 남자친구는 잘 있냐면서 수다를 떨었다. 계단에서 지금 강의를 듣는 학생도 헤어스타일을 바꿨다고 자랑하며 지나간다. 봄학기에 강의를 들었던 학생으로 속을 썩였다. 그걸 계기로 그 아이에게는 내가 특별한 선생이 되고 말았다. 장발이었던 머리를 빡빡 밀었다. 이 추운 날에 그 아이의 정신적인 흔들림처럼 헤어스타일도 극과 극을 달린다. 아토피가 심해져서 인상이 무섭게 보인다. 무섭게 보이는 얼굴이 내게는 아프게 다가온다. 마지막에 성적을 담당하는 직원과 의견교환을 하러 사무실에 들렀다. 학생들에 관해서 직원이나 학부장, 후배와 동료들도 다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학생들 수업 태도는 내가 강의하는 과목에 한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이기에 문제가 심각하다. 그냥 두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공부하는 훈련도 못하고 사회인이 된다. 대학에서는 적지 않은 돈을 학생에게 받는다. 공부하는 훈련이 부족한 학생들을 받았으면 공부할 수 있게 훈련을 시켜야 한다. 대학에서도 학부에 따라 학생들 레벨도 다르고 힘들다.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다른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학습효과에 행복한 학생이 있고, 인사하러 오는 학생도 있다. 선생님 수업을 늘려 달라고 학생들이 요청한다.
아침에 심각하게 시작했는 데, 뚜껑을 열어보니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겨울방학이다.
새 컴퓨터로 처음 쓰는 문장이다. 정리하는 것과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교차한다.
사진은 새 컴퓨터와 학기말을 맞이하는 작업환경에, 뜨개질, 논문을 쓸 준비가 된 책상이다. 책을 높이 쌓아서 지진이 나면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