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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학생

마술 피클

2013/12/23 마술 피클

 

오늘 동경은 잔뜩 흐려서 추운 날씨였다. 저녁이 되니 하늘이 맑아진다. 아마, 내일은 맑은 날씨가 되겠지…
나는 어제까지 집에 손님이 있어서 쉬질 못했다. 오늘은 작정하고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요가도 안 하고 게으른 하루를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 좋겠는 데, 추운 날은 책을 읽는 것도 잘 안된다

아점으로 고구마를 쪄서 먹었다. 그리고 심심한 드라마를 보면서 어제 시작한 뜨개질을 한다. 이게 계속가도 좋을지 어떨지 아직 모르는 상태다. 생각없이 화면을 보고 뜨개질을 하면서 따뜻한 물을 마셨다. 피곤하긴 했던 모양이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한국영화를 한편 봤다.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는 데, 괜찮은 영화였다. 멋진 하루…


베란다에는 어제 오후에 빨아서 넌 검은색 계통 옷들이 널려 있다. 날씨가 흐려서 잘 마르지 않는다. 날씨가 흐리면 춥기도 하지만 기분도 무거워진다.

지난 금요일에 연내 수업이 끝나서 겨울방학에 들어갔다. 2교시에 학생수가 많은 수업이었다. 오스트라리안 스터디스로 그 날 토픽이 문학이었다. 학생들에게 단편소설을 두 개 나눠주고 정해진 시간 내에 읽고 감상문을 쓰도록 했다. 그리고 하나는 선물로 수업이 끝나면 가져가라고 뒀는 데, 반쯤 남았다. 학생들이 열심히 읽어서 좋은 감상문이 나왔다. 그런데, 20분 정도 집중했더니 피곤했는지 해설 하는 단계에서 아이들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학생들이 문학작품을 읽는 일이 적다. 그래서 수업시간을 통해서 읽게 하는 것이다. 좋은 작품을 읽으면 감동도 있고, 생각할 것도 많은 법…그러나 아주 편하고 간단하게 읽는 걸 좋아한다. 읽는 것도 때로는 격투를 하듯 싸우는 것이 있다. 너무 편한 것에 익숙해지면 노력이 필요한 걸 하기가 힘들어진다. 수업에서는 힌트로 한 번 맛을 보일 수는 있으나, 그 이상은 자신이 알아서 해야 한다

그래도 크리스마스가 가깝다고 무대의상은 크리스마스 색이었다. 위에는 빨간색, 바지가 짙은 초록색이다. 목걸이로 트리를 장식하는 오너멘트를 했다… 움직이는 크리스마스트리라고… 학생들 반응은 별로였다. 일년에 한 번 입는 옷이다. 이런 옷을 입으면 코트 안감과 휘감겨서 정말 웃기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래서 귀찮다

 

3교시와 4교시 수업이 학생 수가 적다. 지난 번에 블로그에 썼던 피클에 관한 내용을 소개했더니, 내가 만든 피클을 먹어보고 싶다나… 두 종류를 조금씩 가져갔다. 마트에서 시식하는 것처럼 하려고… 점심시간에 냉장고에서 피클을 커낼 때, 동료들이 궁금해하는 눈길을 느꼈지만, 아무 말도 안 했다.. 모자라거든…

 

거기에다, 예쁜 그림을 가져갔다. 필통은 2교시 수업 때 나에게 과자를 가져다준 중국 유학생과 대만 유학생, 집에 도둑이 들어서 귀국 몇 달 전에 모든 걸 잃은 중국 유학생에게 줬다. 3교시에 들어가서 학생들에게 안내를 했다. 거기서부터 학생들은 들떴다. 그리고서 피클을 맛보고 완전히 행복감에 젖은 모드로 전환되고 말았다. 선생님, 다음에는 물만두가 먹고 싶어요. 저 술은 없나요? 내가 중국집이냐, 지금은 수업시간이야. 지난 번 수업에서 어려운 부분을 했다, 끝나지 않아서 숙제를 냈다. 그게 해결이 되어야 겨울방학 숙제를 할 수 있다. 중요한 부분이라, 제대로 해야 한다. 그런데 학생들은 들떠서 각자가 중구난방으로 마음이 여기로 갔다가 저기로 간다. 피클을 먹고 취했나, 행복해졌다. 완전 애기들이 지저귀를 차고 신나게 노는 것 같은 모습이다. 나는 편두통을 느꼈다. 내가 뭔가 잘못해서, 학생들이 아기로 돌아가고 말았다. 무슨 스위치를 누른 거지?? 학생들이 각자 완전히 자신을 가지고 자신들이 가진 귀여운 모습을 드러낸다. 각자가 저 선생님은 확실히 날 좋아한다는 근거 없는 확신에 차 있다. 수업이 끝날 때 예쁜 그림을 하나씩 주고 수업은 들뜬 분위기에서 끝났다. 내 편두통은 전혀 멈추지 않는다. 내가 뭘 잘못했다는 것인가… 편두통의 원인은 아마 내가 지금까지 수업을 해도 못했던 걸, 피클을 먹고 학생들이 딴 세계로 갔다는 것이다. 행복감에 젖었다. 피클에 내가 졌다는 것이다.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다. , 편두통이 난다.

 

3교시 수업이 끝나서 자리에 돌아가 보니 미국인 동료가 집에서 구어 온 쿠기가 놓여있었다. 내 걸 챙기고, 4교시 수업에도 가져갔다. 4교시에서는 미리미리 주의를 줬다. 3교시에 완전 중구난방이 되어서 수업이 끝났다고, 그래서 내가 머리가 아프니까, 4교시에서는 차분히 수업을 하자고… 피클을 먹고 싶다던 학생이 있는 수업이었다. 가져간 피클을 먼저 맛보게 하고, 나중에 쿠키를 나눴다. 그림도 나누고, 학생들이 들뜬 마음에도 차분히 수업을 끝냈다. 그런데 왠지 학생들이 행복해한다. 차분히 행복하다는 걸 퐁퐁 풍기면서 수업이 끝났다. 학생들이 왜 그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피클에 뭘 넣었는지 전혀 기억에 없다. 그럼으로 학생들이 피클을 먹고 딴 세상에 간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내가, 드디어 마술을 할 수 있는 마녀가 되었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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