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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 이야기

바다로 간 야크 1

2015/01/02 바다로 간 야크 1

 

오늘 동경 날씨는 맑다. 기온은 낮지만 맑아서 창문을 통해서 햇살이 들어오고 있다. 새해가 시작되어 이틀째로 접어들었다지만, 특별히 새해가 되었다는 기분이 안 든다. 그렇지만, 지난해 마지막 날에는 청소를 평소보다 찬찬히 깨끗하게 했다. 우선 천정부터 전등갓을 털어내고 걸레질을 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전등갓에는 벌레들이 죽은 잔해가 남아있다. 유리창에, 베란다도 깨끗이 씻어냈다. 부엌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주변도 깨끗하게 종이를 다시 깔았다. 텅 빈 공간이 많은 냉장고도 정리해서 청소를 했다. 침대시트도 빨아서 세팅을 다시 해서 기분이라도 새롭게 하려고 조금 노력했다

청소는 열심히 하면 피곤하니까, 적당히 하는 게 요령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날씨와 시간을 보면서 먼저 해서 말릴 것은 말리고 끝나는 시간에 모든 게 잘 끝나게 하는 것이다. 대청소는 사실 청소자체도 중요하지만, 물건을 정리해서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물건을 정리하지 못했다. 대청소의 반 밖에 못했다는 의미다. 그래도 집안 쓰레기는 다 버렸다

새해의 시작은 요란했다. 12시가 되기 전에 지진이 일어났다. 크지는 않았지만, 흔들림을 느끼면서, 무슨 징조일까? 그런데, 새해 시작되면서 갑자기 바람이 강해지며 유리창이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바람도 한쪽으로 부는 것이 아니라, 앞뒤로 정신이 없다. 거기에다 창문에 콩이라도 뿌리는 것 같은 따닥따닥 우박이 떨어진다. 유리창을 다시 튼튼하게 잠갔고 열렸던 창문도 닫았지만, 바람에 덜컹거린다. 마치 내가 사는 건물이 드라마 세트장 안에서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상한 효과음과 덜컹거림으로 새해가 시작되었다. 도대체 어떤 드라마틱한 해가 펼쳐지려고 날씨가 이렇게 요동을 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새해니까, 꿈이 있는 걸로 블로그를 시작하려고 쓴다.

제목은 정해놨다. 바다로 간 야크와 파도가 된 야크에서 망설였지만, 바다로 간 야크로 했다. 야크가 바다로 가서 파도가 되었다는 걸로 했다. 

네팔인가, 티베트의 어느 산에 야크가 살고 있었다. 어떤 산인지, 어떤 풀을 먹었고, 어떤 풍경을 보고 있었는지, 계절과 장소, 바람과 땅과 구름, 설산과 강물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들에게 어떻게 불렸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야크니까… 야크는 주로 티베트, 몽골, 부탄, 중국, 네팔의 고원지대에서 야생으로 살았다네. 그리고 점차로 가축화가 되었다고, 인간들이 정리한 문서에 의하면 말이야. 그렇지만, 야크에게는 어느 나란지, 뭔지가 중요했겠어? 그 건 어디까지나, 그런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에게 중요한 것이겠지. 여권이나 비자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내가 짧은 생을 살면서 보니까, 대다수 인간들에게도 별로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 그냥, 그런 걸 갖고 거기에 살고 있는 인간들을 쥐고 뒤흔드니까, 인간들도 뒤흔들리고 있는 거지. 정말로 웃겨. 특히 국가와 민족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인간들을 뒤흔드는 미친 정치가를 보면 야크가 봐도 웃겨. 그렇다고 내가 그런 말을 세세하게 인간에게 할 수도 없고, 그냥, 쿨하게 보고 있는 거지… 우리에게는 바람과 땅, 풀과 물, 산과 강, 계절과 후손을 낳고 기르고, 가깝게 지내는 인간들의 행복과 불행이 중요해.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 잘 모르겠고, 귀찮아. 편가르기는 우리도 했지, 무리가 살아남아야 하니까. 지금은 거의 가축화되어 있으니까, 편가르기 했던 야생의 기억도 가물가물해… 묻지 마, 다쳐.

그런데, 우리 야크는 주로 설산이나, 고원지대에서 살아왔잖아. 태생이 바다를 본 적이 없어. 바람이 전해주는 소식으로 바다가 있다는 걸 알았지. 그 바다라는 건, 쉴 새 없이 변한다네. 그런 걸로 진짜 바다가 어떤 건지, 전혀 모르지. 그렇지만, 난 언젠가 바다에 가고 싶었어. 언젠가 바다로 가고 싶다는 꿈을 꾸었지. 혼자서 은밀하게 위대한 꿈을 꾸었다고, 이건 인간들 세계에서는 ‘망명’이나, ‘반란’, 혹은 ‘쿠데타’쯤 되는 거겠지? 아니, , 그냥, 소박하고 심플하게 바다에 가고 싶다는 거지…

물론, 바다 같은 강도 본 적이 있지, 물을 마셔야 사니까, 도랑물이나 강가에서 물을 마셔왔고… 그래도 진짜 바다라는 건 뭘까, 괜히 가슴이 설레고, 마음이 부풀어 올랐어. 왜냐고, 모르지, 그냥 그런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어떻게 바다를 가게 될지 모르겠는 거라. 내가 인간이면, 비행기표를 사던가. 자전거를 타서라도 바다를 향할 수 있었지만, 야크 선조 중에 바다로 간 모험 야크가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참 그렇더라고. 그렇다고, 내가 죽어서 고깃덩어리가 되어, 소금을 만났다고 그런 걸 바다와 만났다고 ‘왜곡’하는 것도 야크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고 말이지. 바다에 간다는 걸 목숨과 바꿀 정도로 비장한 건 또 아니지. 그냥, 오래 전부터 야크로 살아온 야크들에게는 이룰 수 없는 꿈같은 모험이라고 할까, 로망이 되겠지? 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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