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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생활

바람 부는 날

2015/01/12 바람 부는 날

 

오늘 동경은 맑게 개인 날씨였다. 아침에 눈부신 햇살이 들어오는 걸 보고 커튼을 열었다. 집안의 커튼을 열어놓고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어젯밤에 읽던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오늘까지 연휴인 것이다. 연휴가 아니어도 월요일에는 강의가 없으니까, 도서관에 가던지 집에서 지낸다. 오늘 아침은 다시 잠을 자서 깨어보니 11시다. 세상에 오전이 다 가고 말았네. 가끔은 스스로가 대책이 없음에 어의가 없어진다. 오전을 잃어버려서 하루를 의욕적으로 시작하려 했던 마음도 없어지고 말았다. 오늘은 요가를 건너뛰자. 어젯밤에 찐고구마와 김치를 먹어서 몸이 부었지만, 건너뛰자.

아침겸 점심으로 어제 끓인 미역국을 데워서 밥과 같이 먹었다. 미역국이지만, 한국식이라서 든직하다. 요새, 밥이 맛있어서 불안하다. 아무리 겨울이지만, 옷을 입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의가 시작되면 음식을 만들어 먹을 시간이 없으니 별로 못 먹는다. 그래서 주말에 많이 먹는 것 같다. 주말에는 먹고 쉬는 게 중요하다는 핑계로…

오전이 없어져 반 토막짜리 하루가 되었으나 할 일은 해야지. 밥을 먹은 후에 짙은 커피를 내려 마시고 과일로 후식까지 먹고서 일을 시작한다. 학생들 겨울방학 과제를 체크해서 빨간펜으로 정정해서 돌려준다. 과제를 체크하거나, 레포트를 채점할 때는 왜 이렇게 일이 더딘지 모른다. 괜히 하기가 싫어서 과자가 당기고 커피를 더 마신다. 일의 양이 많은 것도 아니면서… 지금 집에는 학기말 리포트를 받아와서 채점할 것이 쌓여 있다. 채점할 것에는 학생들 스트레스와 나의 스트레스도 묻어 있는 모양이다. 레포트 뭉치와 눈이 마주치면 못 본 척한다. 시야에 들어오면 신경이 쓰인다. 언젠가 해야 할 일이지만, 미루고 싶다

나는 달력을 책상에 놓고 할 일을 적어 놓는다. 일을 하면 지우는 식인 것이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거나, 연장하는 것, 각종 서류 마감이나, 약속도 적어 놓는다. 기일을 안 지키면 일이 더 귀찮아지기 때문에 기일을 지키는 것이 편하다. 까먹는 일도 있어서 달력을 보면서 체크한다. 다음날 가져갈 가방도 전날에 미리 챙겨 놓는다. 아침에 한꺼번에 하려면 빼먹는 것도 있으니까… 그래도 가끔 잊는 것이 있다

오늘은 날씨가 맑고 기온도 낮지 않았지만, 바람이 세게 불었다. 창문이 덜컹거릴 정도로 바람이 세어서 체감온도는 좀 낮았다. 겨울방학 과제 점검을 마치고 산책을 나갔다. 주말에 산책을 안 해서 몸이 좀 부어 있는 상태다. 바깥바람을 쏘여야 기분도 상쾌해지니까. 쓰레기를 들고 나섰더니 바람이 춥다. 이번 겨울 처음으로 모자를 쓰고 산책을 나갔다. 동백꽃을 찍으려고 카메라도 들고나갔다. 

내가 사는 단지에는 동백꽃 종류가 다양하고 많았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주변 나무를 너무 많이 베어서 삭막해지더니 드디어 동백나무도 많이 잘라냈다. 지금 피어 있는 것은 아주 작은 것이다. 키가 크지 않게 하고 있다. 이미 키가 훌쩍 큰 동백나무들을 아예 잘라냈다. 다양한 종류에서 빈약한 종류가 되었고, 주변 경관을 보면 날이 갈수록 삭막해져서 열을 받는다. 오래 산 사람들도 같은 걸 느끼면서 한숨을 쉰다. 분명히 돈을 써가면서 정비한다는 것이 점점 빈약하고 삭막해지는 쪽으로 간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그런 것을 느끼고 생각하면 일본에서는 살기가 어렵다고 일본 친구가 충고한다. 보여도 안 보이는 척, 들어도 못들은 척, 눈감고 귀막고 입 다물고 살아야 한다고. 일본사람들도 무조건 참으면서 살고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참다못해 속으로 곪아터진다

아직, 동백꽃이 많이 피지 않았다. 피어 있는 동백꽃도 힘이 없어 보인다. 동백나무가 잘린 것을 알면서도 괜히 다시 한번 나무들을 점검해서 없는 걸 확인하고 또 실망한다. 전에 봤던 흐드러지게 피었던 매력적인 모습이 눈에 선한 데, 현실적으로 그 나무들은 없어졌다. 나무가 잘려서 휑하게 삭막해진 길에 추운 겨울바람이 스친다. 괜스레 내 마음도 시려온다. ,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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