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16 화학 반응
오늘(월요일)도 동경은 흐린 날씨였습니다.
기온은 낮았지만, 밖에 나가보니 예상 외로 포근했답니다.
오늘도 저는 강의가 없는 날이라, 집에서 쭉 리포트 채점을 하고 있었지요. 며칠을 집안에 처박혀서 학생들 리포트만 읽고 또 읽는 것도 좀 피곤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과목마다 만점이 나왔다는 겁니다. 한 과목에서는 만점이 두 명 나왔습니다. 아주 다른 측면으로 접근한 리포트였지요. 하나는 중국 유학생, 하나는 일본 남학생입니다. 중국 유학생 리포트는 일본어가 약간 정확하지 않은 부분도 빨간펜으로 다 고쳐놨지요. 일본 남학생은 일본학생들이 아주 잘하는 방법으로 내면의 변화를 대상으로 했습니다. 이 학생은 확실히 뭔가에 눈을 떴다고 할까, 개종을 했다고 할까, 강의를 통해 화학반응이 일어나 인생관이 바뀌었다는 겁니다. 가끔 이런 학생들이 있습니다. 이런 게 좋은 일인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제 강의에는 이런 학생들이 있습니다. 어떨 때는 집단으로 개종하는 사태가 나기도 합니다. 무섭지요. 문제는 왜 그런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모른다는 겁니다. 물론, 전적으로 제 책임이 아니지요. 나는 그냥 제가 할 일을 하는 것뿐이지요. 오랜만에 작년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교 일학년 때, ‘명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생물학’이었습니다. 생물학에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 들은 건 아니고 시간 땜빵을 하느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학기말 마지막 강의를 듣고, 눈 앞이 확 트이는 것 같았어요.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일년치 학비는 이 강의를 들으려고 낸 거였구나, 아깝지 않다. 이런게 대학강의라는 거구나, 아주 인상적이었죠. 또 하나는 사회학 강의였는데 내용은 어려워서 이해를 못했는데, 교수가 완전히 그 분야에 미쳐있었습니다. 그 교수가 미칠만큼 매력적인 것이구나 생각을 했지요. 그래서 저는 학기말 마지막 강의 때는 뭔가 맺는 말을 하려고 합니다. 가끔 뒤돌아보고, 다시 앞을 향해서 살아가는 거지만, 현재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제학생들은 저를 보고 자신을 얻고, 희망을 가진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도 살아가는데, 나도 살아갈 수 있겠다’라는 거랍니다. 참 제가 그렇게 보일려고 그러는게 아니라, 열심히 노력해도 학생들에게는 그 정도로 보인다는 거지요. 오히려 학생들이 걱정을 해주고 많이 가르쳐줍니다. 철이 없는 저에게 졸업생들이 언니나 오빠처럼 잔소리를 합니다. 저는 학생들 말을 잘 듣습니다. 그러면서 삽니다. 제 존재자체가 학생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니 정말 행운입니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내일 도시락을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없어서 가까운 슈퍼로 고구마를 사러 갔습니다. 예상외로 밖은 포근하더군요. 바람도 없고 습기가 많은 날씨였습니다. 슈퍼에 가는 길에 작은 숲 같은 데가 있었는데, 거기 나무를 싹 베어냈습니다. 요즘 이 근처 환경정비를 한다고, 큰나무들을 베어내고, 길을 고치는데 미관상 보기싫고 안좋다는 겁니다. 그 정도가 지나쳐서 시민들이 화가 날 정도입니다. 아니 숲에 나무를 다 잘라내서 훵하게 만드는 감각이나, 신경이 이해가 안 됩니다. 저도 산책을 할 때 마다 화가 나겠지요. 시민 이지메도 아니고, 스트레스를 주는 방법도 가지가지입니다.
슈퍼에서 잔고구마를 두봉지 사 왔지요.
내일 도시락은 찐 고구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