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28 허탈한 학기말
오늘 동경은 맑고 햇살이 강한 따뜻한 날씨였다. 어제도 맑았지만, 바람이 불어서 체감온도는 일기예보에 나온 최기기온 보다 훨씬 춥게 느껴졌다. 오늘 한국에서는 설이지만, 동경에서는 그냥 평범한 토요일일 뿐이다. 목요일로 종강을 해서 학기말을 맞은 주말이기도 하다.
학기말을 맞으면 허탈감에 빠진다. 학기말이 골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를 매듭짓는 시기이기도 한 것이다. 짧으면 한학기 길면 2년을 맡았던 학생과 헤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학기는 15회 강의나, 30회 강의로 짜인다. 15회에서 1회나 2회 정도는 조정을 위해서 여유를 두고 강의를 짠다. 마지막에 와서 남는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걸로 강의를 한다. 이번에는 ‘위안부문제’로 했다. 지금 시기에 일본에서 ‘위안부’를 테마로 강의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부담이지만, 시국이 너무도 하 수상해서 했다. 적어도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는 ‘위안부’가 무엇인지, 왜 알아야 하는지 알리고 싶었다. 내가 했던 수업에서 썼던 자료를 포함한 내용은 다음 기회에 자세히 소개하기로 한다.
목요일에 ‘여성학’과 ‘노동사회학’이 종강하면서 학기말이 되었다. 학기말이라서 정리할 일도 많고 사무적으로 처리할 것도 많다. 그런 와중에 강의를 마치면 허탈해진다. 그렇다고 학생들 반응이 나쁜 것은 아니다. 동료들에 의하면 나는 특별히 학생들에게 사랑받는 인기있는 사람인 모양이다. 이번 학기말에도 세 명의 남학생과 한 명의 여학생이 ‘고백’을 해왔다. ‘사랑한다’고……일본에서 ‘사랑한다’는 말은 아주 낯선 말이다. 요즘 학생들에게도 낯선 말로 알고 있는데, 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쿨하게 ‘고맙다’고 했다. 학생 중에는 선생에게 그렇게 관심을 보여서 점수를 따려는 학생도 있는 모양이지만, 나에게 그런 것이 통할리는 만무하다. 이번 ‘고백’ 한 학생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직접적으로 전하던 아니던 학생들이 나를 좋아했다는 걸 알고 있다. 학생 중에는 자신만이 나를 좋아한다고 굳게 믿고 있던 학생도 있었다. 학기말이 되기 일주일 전에 그림을 두 장 그린 것을 가져와서 스쿨버스를 타고 역까지 같이 갔다. 그 학생은 이 대학에 와서 ‘선생님을 만난 것이 가장 좋은 일이었다’고 했다. 그림에는 ‘장래에 (나처럼) 머리가 짧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고 그렸다.
다른 세 명은 자신들이 흥분상태로 들떠 있었다. 목요일에 끝난 두 과목은 학생들이 잘 따라준 편이라, 학기말이 되어 강의가 끝나는 걸 학생들이 섭섭한 분위기였다. ‘노동사회학’은 강의가 끝날 때 학생들이 숙연해져서, 자신들의 마음을 전하려고 무서운 집중력으로 감상문을 썼다. 감상문에는 수강생이 다, 한 명도 빠짐없이 강의를 듣고 자신들이 변했다고, 감사하단다. 마지막에 레포트점수를 확인하면서 점수가 낮은 학생도 마냥 기쁜 듯이 웃고 있었다. 내가 ‘웃을 일이 아니야, 나는 더 좋은 레포트를 기대했어’. 학생은 괜찮다고. 학생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내 강의를 들어서 좋았다고 하지만, 나는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이 없다. 화를 낼 것은 화를 내고 솔직히 말을 한다. ‘정신차리라’고, 세월이 하 수상하니까, 정신을 바짝 차려서 정치가들이 나쁜 짓을 못하게 감시하라고, 잘못하면 전쟁으로 갈 수도 있다. 나는 아줌마니까, 전쟁에 나갈 일도 없고, 전쟁이 난다면 맨 먼저 도망친다. 전쟁은 니네 일이니까, 알아서 잘하라고 했다.
나는 학생들이 자신들 사회를 주체적으로 이끌어갈 구성원이며, 자신들의 의사를 표명하고 행동하기를 원한다. 그런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 학생들이 ‘난민’처럼 자신들 사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걸 보면, 화가 난다. 자신들이 그런 대접을 받고 있는 것조차 모른다.
사진은 올해 연하장이다. 건강하게 보이는 달걀에서 태어난 건강해 보이는 병아리다. ‘닭’의 해라는 데, ‘달걀’과 ‘병아리’와 ‘닭’에게조차 미안한 시국이다. ‘달걀’과 ‘병아리’와 ‘닭’에게도 미안해서 눈치를 봐야 할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달걀’과 건강한 ‘병아리’에 건강하고 건전한(?) ‘닭’이 필요하다. 적어도 ‘정상적인’ 범주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