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06 채점을 하면서
오늘 동경은 맑고 따뜻한 날이었다. 이번 주는 채점을 하고 성적을 입력하는 주간이다. 주로 학교 도서관에 가져가서 널널하게 펼쳐 놓고 채점을 한다. 어제는 날씨가 좀 풀린 것 같아서 그냥 집에서 했다. 평상점을 집계하는 것이라, 그다지 집중하지 않고 하다 보니 거의 10시간 이상 단순한 숫자를 보고 기입하는 작업을 했다. 장시간 노동으로 정신이 없고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이번 채점에서 아주 명확히 두 갈래로 갈라졌다. 성적이 딱 중간인 학교와 성적은 중간보다 아래라는 학교가 향하는 방향은 반대였다.
성적이 중간인 학교는 학기말이 오기 전에 성적이 걱정되어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였다. 뚜껑을 열었더니 결과는 예상보다 참담했다. 과목에 따라 다르지만, 지금까지 평균에서 가장 아래 점수가 평균이 되고 말았다. 아주 하향조정인데, 그 정도면 단위가 안 나온다. 중간인 학교 기말 리포트는 통으로 베낀 것이 4분의 1이다. 내가 읽어도 뭔 말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4분의 1이 일베형 리포트다. 강의에서 강조했던 ‘다문화주의’를 제대로 이해도 못 하면서 아주 차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리포트, 헤이트스피치 레벨을 베껴왔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베낀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 그냥 깡패처럼 좀 멋있어 보이는 걸 베낀 것이다. 깡패가 아무 데서나 멋있는 것이 아니다. 깡패가 멋있어 보이려면 준비된 많은 것이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깡패처럼 행동한다는 것이 다름아닌 학력 수준이기도 하다.
요새 논문을 쓰면서 한국에 관한 걸 검색하려고 단어를 치면 처음에 나오는 것이 헤이트스피치였다. 5페이지 이상이나, 그런 정보가 계속 줄줄이 나온다. 솔직히, 나는 인터넷에 이렇게까지 헤이트스피치로 도배가 되어 있는 줄 몰랐다. 참, 일본사람들, 넷우익이 열심히도 작업을 했구나 싶지만, 한편으로 학생들이 걱정스러웠다. 그런 정보를 읽고 판단할 수 있는 학생은 괜찮지만, 판단을 못 하니까. 판단을 못 하는 건, 학생들만이 아니다. 지금 일본사회가 그런 분위기에 있다. 역시, 그런 효과가 학생들 리포트를 통해서 나왔다. 반정도 학생이 베낀다는 것은, 학생들이 베끼는 걸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전에 인용이 아니라, 베끼는 건 안된다고 단위가 안 나온다고 했다. 그래도 베끼는 학생이 있지만 여기까지 일 줄은 몰랐다. 화도 안 난다. 그냥, 기분이 더러울 뿐이다. 이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가나, 이렇게 손쉽게 뭔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분위기에서는 좋은 성적이 나오기도 힘들다.
실은, 작년에 성적이 아래인 학교에서 베끼기가 많았다. 기가 막혔다. 그런데, 올해는 베끼기가 적다. 특히, 전기에서는 베끼기가 전무했다. 후기에서 베끼기가 약간 나왔다. 결석이 많아서 평상점을 못 받고, 당연히 리포트 점수도 낮은 학생들이다. 가만히 봤더니 학생들이 선생에게 의리상 베끼기를 안 한 것도 많이 있는 것 같다. 선생이 자기를 알고 있다는 학생들은 미안해서 못하는 모양이다. 어쨌든 학생이라는 것이다. 수업분위기가 좋으면 학생들도 능력을 발휘하고 평상점도 좋다. 평균점수도 높아진다. 무엇보다도 학생들 자신이 변해간다. 자신들의 변화를 스스로 멋있다고 여기며 자신이 생기는 모양이다. 그 들의 변화는 멋있는 것이다. 수업내용은 여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학생들이 믿고 따라왔다. 나도 학생들이 믿고 따라준 것이 고맙다. 이렇게 학생들과 교감을 했다는 것이 결과로 나온다.
아무래도 인간들이 하는 일이라, 분위기에 좌우되는 것이 많다. 좋은 분위기가 중요하다. 학생들이 선생에게 최소한의 신뢰가 있어야 한다. 어렵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가는 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일까? 일본사람들이 그렇게 ‘혐한’과 ‘혐중’으로 난리에 난리를 치더니, 헤이트스피치를 해댄 효과가 이렇게 나타날 줄이야…... 어른들의 '혐오'로 일본 아이들이 망가져 가고 있다. 망가진 아이들이 이 사회의 미래다. 어떻게 손을 쓸 도리가 없다. 자신들이 자신들 목을 조르고 있다. 제발,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알고 수습해줬으면 좋겠다. 그럴리는 만무하지만, 그냥 말이라도 해보는 것이다.
사진은 동백과 매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