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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학생

‘사랑’의 택배

2013/04/12 ‘사랑’의 택배

 

오늘 동경은 맑았지만 쌀쌀하게 추운 날씨였다. 

이번 주는 개강이어서 특별히 일을 많이 한 것은 아니지만조금 피곤하다오랜만에 일을 나가서 긴장한 모양이다역시 새 학기라, 알게 모르게 긴장을 한다수업은 첫회라서 거의 안 하고 어떤 수업을 할 건지 설명하고 끝냈다개강을 해서 동료들과도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했다첫날이라뭔가 어수선하게 끝났다학교에서 나오는 버스정류장에 왔더니일찍 나간 친구가 있었다버스와 전철에서 친구와 옆자리에 앉아 수다를 떨면서 왔다둘이서 가게에도 들러 나는 단화 구두도 사고과일과 무도 샀다우리 집 가까이에 산 물건을 놓고 친구네 집 아래까지 같이 갔다가 돌아왔다.

 

집에 와보니 택배가 왔다는 통지서가 들어있다우체국에서 속달이라고… 지금 속달로 올 우편물이 없는 데뭐지배달해달라는 전화를 했다조금 있으니 배달이 왔다.

 

옛날 학생에게서 농사지은 쌀과 표고버섯콩과 야채가 들어있는 식량이었다연락도 없이 학기가 시작되었다고자기가 농사를 지은 쌀을 비롯해서 내가 좋아하는 햇파래를 넣어 멀리서 보내줬다실은 내용물도 내용물이지만규슈에서 보내는 택배값 만해도 비싸다지난 번 치바에 갔을 때 귤을 한 상자 받아서 택배로 부쳤더니 가까운 곳인 데도 천 엔이 넘었다그 정도 귤은 싸게 사면 택배 운송비 정도로 살 수 있다..

 

뜬금없이 보내온 택배였지만옛날 학생이 자신이 농사를 해서 수확한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억해서 넣어 준 것에 ‘사랑’이 담겨있었다아마내가 어딘가에 갔다가 새 학기가 되어 돌아온 걸로 알고 있을 거다나는 잊고 있었는 데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걸 알려주면서 힘내서 학기를 시작하라는 메시지 같다정말로 감동스럽고 고맙다이럴 때내가 선생이기는 하구나 하고 느낀다내가 어떤 선생이었는지 모르겠지만가끔은 기억해서 선물을 보내줄 정도의 사람은 되는가 싶다학생이나누군가가 비싼 걸 선물했어도 이렇게 기쁘진 않다값지다는 것은물건의 가격이 아니다그야말로 자신의 땀과 시간과 노력이 담긴 선물은 사람을 감동하게 한다내 학생이었지만그는 훌륭하게 자라고 말았다자신 스스로가 훌륭하게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것 같다내가 힘들었던 시기에 옆에 있어줬던 학생이라학생과 선생을 떠나서 인간으로서 고맙게 여기는데학생이 나에게 뭔가를 보여준다.

 

실은 오늘 지난 학기에 학생들 앙케트 조사를 보고 상처를 받았다요새 가끔 이런 학생들이 있다자신이 일본인이니까일본인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다던지한국인을 쓰면 안 된다는 등수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인신공격하는 것이다수업시간에 그 내용을 말하면서수업내용이나진행방식 등에 관해 비판을 하는 것은 좋아도 선생을 인신공격하면 안 된다고 주의했다학생이 이름을 쓰지 않아도 누가어떤 학생이 그런 걸 쓰는지 안다성적과는 관계가 없지만주로 수업에 안 나오고 단위를 못 받은 학생들이 그런 걸 쓴다그 걸 들은 학생들이 쇼크를 받았다수업이 끝나서 학생 둘이 왔다어떤 학생이 그런 내용을 선생님께 썼는지 모르겠지만같은 일본인으로서 정말로 부끄럽고선생님께 죄송하다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교육’이라때로는 학생들이 듣기 싫은 내용도 말을 해야 한다그런 학생은 소수이지만사회인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표현을 해도 되는 것과 표현을 하면 안 되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이런 것은 익명으로 인터넷에 쓰는 악플과는 다른 것이다

한 학기 수업을 같이 한 선생을 인신공격해야 하는 관계는 인간관계로서도 참 슬프다그래도 그 걸 사과하러 나온 학생들은 참 용기가 있다다른 학생들은 쇼크를 받았어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는 데… 오늘 받은 ‘사랑’의 택배는 그런 상처를 받은 나를 치유해 준다.

 

나에게 상처를 주는 학생은 극소수다내가 하는 수업내용과 관계없이 내가 하는 수업을 쫓아다니는 학생이 훨씬 많다. 나는 어쩌다가 학생들에게 '사랑' '미움'을 받는 선생인가 보다오늘 첫 수업을 끝낸 감상에도수업내용이 아니라 선생님이 재미있어서 등록했단다나에게 ‘야단’을 맞아가면서도 3년째 내 수업을 계속 듣는 학생도 있었다보통 ‘야단’을 맞으면 그 선생이 싫어서라도 수업을 안 듣는 데참 너도 대단하다고 했다내쪽에서도 그런 학생이 있으면 아주 신경이 쓰인다떨어뜨린 과목을 재수강하는 학생이 단위를 받으려면훨씬 더 열심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기 시작부터 이번 학기도 파란만장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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