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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학생

봄맞이 준비

2015/03/06 봄맞이 준비

 

오늘 동경은 아침에 흐렸다가 오후가 돼서야 맑아졌다. 어제까지 따뜻했는 데 오늘은 추운 날이다. 집에 먹을 것이 너무 없어서 마트에 가서 과일, 주로 감귤류를 사왔다. 여덟 종류의 감귤이 부엌에서 밝은 색감으로 빛나며 집안 분위기를 밝게 해 준다. 계절적으로 노랑색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지금 해가 질 무렵으로 서쪽에서 해가 지기 전에 햇살을 강하게 비추고 있다. 오늘 내가 한 일은 마트에 가서 과일을 사서 짊어지고 올라온 것뿐이다.

어제는 대보름날이라서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걸 챙긴 적이 없지만, 이번은 오곡밥 재료를 받아서 오곡밥을 하려고 마음 먹었다. 나물은 엄두도 못내고 오곡밥만이라도 하자. 어제 아침에 일어나서 오곡밥 재료를 씻어서 물에 담가뒀다. 오곡밥을 해서 친구네도 좀 나눠주려고 랩에 싸놨다. 요며칠 4학년 졸업이 걸린 성적을 발표해서 자신의 성적에 의문이 있는 학생은 확인을 요청할 수 있는 기간이었다. 한 학생이 자신의 성적에 문제가 있다고 신청을 했다. 나는 결석과 평상점, 리포트점을 알려줬다

학생은 자신이 제대로 체크를 못 한 것을 인정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단위를 받을 수 없을지 메일로 이런저런 걸 주고받았다. 나로서는 이미 성적을 낸 마당에 지금에 와서야 뭔가를 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러나 해당 학생은 취직도 정해져서 졸업을 해야 한다. 리포트를 써서 내라고 과제를 줬다. 두 시간에 작성이 가능한 과제를 냈다. 학생은 리포트를 쓰지 않고 3일이나 계속 어쩌고 저쩌고 한다. 막판에 와서는 나에게 출석을 고치던가, 평상점이나, 리포트점을 고칠 수는 없느냐고 한다. 완전 열 받고 말았다. 학생들에게 부정을 하지 말라고 강조하는 입장인 데, 학생이 나에게 부정을 하라니… 열 받았지만, 학생에게는 다른 말을 했다. 내가 성적을 고칠 재료를 내놓으라고, 아무 근거도 없이 나는 못 움직인다는 게 결론이라는 메일을 했다. 학생은 어디까지나 학생이다

그동안 학생과 메일로 실랑이를 하면서, 그 시간에 리포트를 10개도 더 쓰고도 남을 시간이다. 끝까지 리포트도 쓰지 않으면서 개겨서 어떻게 단위를 받으려나 했다. 어제 오후 5시까지 우체국에 가서 성적을 정정한다거나, 정정하지 않는다는 서류를 보내야 한다. 그래서 아침부터 리포트가 오길 기다렸다. 오후 3시에 리포트가 도착했다. 그 리포트도 내가 지시한 것을 무시한 리포트였다. 학생이 취직한 곳이 큰 은행이다. 어떻게 취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말이 통하지 않는 걸 보면 대출서류를 제대로 읽을지 정말 의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담당하는 과목에서 몇 점을 못 받아서 일 년을 더 대학에 다니라고 하기 싫다. 며칠동안 말이 통하지 않는 학생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는 데, 어제가 정점이었다

우체국에 가서 서류를 부치고 친구네 집에 오곡밥도 배달하고서 산책 삼아 계란이라도 사러 가기로 했다. 그냥 집에 있다가는 스트레스로 아주 불편할 것 같았다. 공원을 통과할 무렵 친구가 문자를 보냈다. 역에서 집으로 오는 길이라고, 오는 길에 들른단다. 나는 계란 사러가는 길이니까, 돌아오면서 내가 친구네 집에 들른다고 했다

계란을 사러 갔더니 바케츠에 매화와 동백꽃이 놓여있었다. 좀 가져오려고 했더니 할머니가 나와서 다른 꽃도 잘라 주신다고, 두 종류 매화와 세 종류 동백꽃을 많이 얻어 왔다. 할머니의 수다를 듣다 보니 시간이 좀 걸렸다. 친구가 일이 있어서 다시 나간다고 산책을 하다가 도중에 만나자고 한다. 친구네 우체통에 큰 매화 한 가지와 핑크색 동백을 놓고 왔다. 집에 들러서 꽃을 물담가 놓고 다시 산책을 나갔다

그런데 내가 열불을 받아서 속이 끓고 있었는 데, 할머니의 수다를 듣다 보니 어느샌가 잊고 말았다. 오히려 꽃을 많이 받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친구와 길이 엇갈리기를 몇 번인가 한 후에 겨우 친구를 만나서 달을 같이 보고 소원을 빌었다. 잠시 수다도 떨었다. 학생이 큰 은행에 취직했다는 데, 그렇게 말도 통하지 않을 정도면 대출을 잘못해서 더 큰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르겠다고. 학생 인생이야, 어쨌든 내가 담당하는 과목으로 인해서 졸업을 못하는 상황은 부담스럽다. 그런 스트레스를 친구도 안다

최근에 만든 걸레, 꽃무늬 걸레다. 청소를 하는 사람에겐 청소도구도 중요하다. 봄맞이 준비랄 것은 없지만, 꽃무늬 타올로 걸레를 만들어서 기분이 좋다. 당분간 이 걸레는 기분을 밝게 하는 전시용이다. 꽃도 내가 가장 시선을 주는 곳으로 이동했다. 같은 조건이라도 기분 좋게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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