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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아베정권

일본, 후쿠시마, 동일본 대지진의 트라우마

일본에서 3월 11일은 2011년에 있었던 후쿠시마,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날이다. 요새 코로나19로 인해 동일본 대지진을 되새기고 말고 할 여유가 없다. 통상적으로는 3월에 들어 각종 매스컴에서는 동일본 대지진 중심의 특집 기사를 내고 특별 편성한 프로그램을 방송한다. 3월 11일을 클라이맥스로 한 동일본 대지진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국민적인 대행사가 열리는 기간이다. 올해는 후쿠시마의 재건을 슬로건으로 한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해이니 만큼 매스컴에서는 나름 오래 특별한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의 감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추모하는 모임도 열지 않게 되고 말았다. 그래도 TV에서는 하루 종일 동일본 대지진에 관한 내용을 방영했던 모양이다. 일본 사람들에게 동일본 대지진은 마치 하나의 '전쟁'과도 같은 것이었다. 일본이 참패한 '전쟁'이었지만, 다른 '전쟁'들과 마찬가지로 패한 것을 인정하지도 않고 반성도 없다. 나는 당시 캔버라에서 뉴스 영상을 통해서 동일본 대지진을 봤다. 일본에 있던 사람들은 동일본 대지진 자체만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 상황과 매스컴을 통한 쓰나미 영상을 무한 반복해서 재생하는 파급력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깊은 상처를 입고 트라우마를 지니게 되었다. 

 

2011년은 대지진의 영향으로 개강이 늦어져서 캔버라에서 돌아오는 것도 늦춰졌다. 동경에 돌아와 보니 일본 정부는 지진 피해에 대해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단결해서 곤란을 극복하자'는 슬로건이 넘쳐났다. 당시 민주당 정권은 대지진을 맞아 우왕좌왕했고 정부는 정보공개를 제대로 하지 않아 국민은 정부의 발표를 믿을 수가 없었다. 정부 각료도 단결을 못하면서 국민에게는 단결해서 극복하자는 정신론만 제시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관해서도 2011년에 있었던 지진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우왕좌왕하면서 각료들이 손발이 맞지 않으면서 '국민에게 단결해서 극복하자'라고 독려하고 있다. 국민이 단결해서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정부가 서포트를 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다. 

 

대규모 '혐한' 데모가 처음 일어난 것은 2011년 8월 후지 TV 데모로 일컬어지는 데모였다. 데모는 후지 TV가 한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방영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참고로 후지 TV는 산케이 신문을 발행하는 후지 산케이 그룹이다. 한류 드라마 방영은 시청률이 나와서 돈이 되니까 방영하는 것이지 한국을 위해서 방영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대지진 이후 사회가 불안하고 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 지진 피해를 입은 일본을 위해 국민적인 성금을 모으기 운동을 한 이웃나라 한국에 대한 '혐오'로 대동 단결한 것을 보고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면 '혐한'의 이유가 된다는 말인가? 그러고 보니 동일본 대지진 때, 이번에는 1923년 관동 대지진 때처럼 '조선인 학살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걸 자랑하는 논조를 보고 내 눈을 의심한 기억도 있다. 아마, 당시는 민주당 정권이어서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지 않고 지났나? 코로나19 사태에 한국과 중국에 대한 입국 금지로 '혐한과 혐중'으로 시선을 돌리는 일본 정부는 관동 대지진에서 100년 가까이 지나도 '조선인을 학살'했던 정신은 변하지 않은 모양이다. 허긴 '전쟁'과 마찬가지로 '조선인 학살'에 대한 반성도 없으니까.

 

오늘 동경은 맑고 기온이 21도까지 올라간 아주 따뜻한 날씨였다. 어제는 하루종일 흐리고 비가 와서 기분이 가라앉았는데 날씨가 맑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분이 밝아진다. 날씨가 이대로 따뜻하다면 올해 벚꽃이 피는 시기는 아주 이를 것으로 보인다. 

 

오후가 되어 산책을 겸해서 주위를 보러 나갔다. 가까운 우체국에 들렀다가 큰 공원을 거쳐서 야채 무인판매에 가는 도중에 강물이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걸 봤다. 강물은 어제 비가 와서 탁했고 물도 불었지만 빛을 받아 반짝이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았다. 야채 무인판매에 가서 대파를 한 단 사서 마트를 향했다.

 

마트에 가서 천리향과 한라봉 등을 세 봉지사고 부엌 세제를 샀다. 오늘도 마스크가 있는 곳을 봤지만 하나도 없었고 화장실 휴지가 있는 곳 선반은 텅텅 비었지만 상자 티슈는 세 봉지 있었다. 한 봉지가 곽 다섯 개 포장이다. 기저귀 종류가 있는 곳에 갔더니 기저귀는 나름 있었다. 일본에서 화장실 휴지 대란이 난지 보름이 지나지 않았을까? 정부나 메이커에서는 일본에서 생산하니 물량이 충분하다는데 왜 마트에는 화장실 휴지가 공급되지 않는 걸까? 공급되는 물량이 들어오는 족족 다 사재기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부가 나서서 물량이 충분히 있다고 해도 소비자가 체감하기에 물량이 부족하면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뜻이다. 사재기를 하는 사람들을 비난해서 불안감이 해결되지 않는다. 

 

마트에서 강가로 나와서 친한 이웃과 만나 강아지 산책을 같이 했다. 거기에 도서관에서 일하는 이웃도 합류했다. 어제 헬스장에 가서 몇 달 쉰다는 수속을 하고 왔다고 한다. 일본 코로나19 감염 경로에 외국 여행에서 돌아와 헬스장을 이용하는 패턴이 있다. 며칠 전에 아이치현 49세 여성이 하와이 여행에서 돌아온 확진자가 헬스장을 이용했다. 가나가와현에 사는 70세 남성이 이집트 여행에서 돌아와 코로나19 증상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5일이나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느라고 밀접 접촉자가 1,406명이나 되고 말았다. 나중에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일본에서 헬스장은 나이 든 사람들이 운동도 하지만 수다를 떨러 가는 측면이 강하다. 마스크를 벗고 운동해서 땀을 흘리고 샤워나 목욕탕을 공유하니 코로나19에 감염하기 쉬운 환경이다. 그래서 눈치가 있는 사람들은 일찍 감치 헬스장에 가는 걸 삼가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헬스장에서 코로나19 감염 확진자가 나와서 헬스장에 다니던 사람들은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이웃이 헬스장에 등록해서 나가지 않아도 이번 달 회비가 통장에서 빠져나갔지만 6월부터 재개하면 6월 회비는 받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헬스장에서 나름 손님을 배려하지 않으면 헬스장이 망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헬스장에서 주차권을 받아 시간이 있어서 역 가까운 약국에 갔더니 때마침 한 사람이 마스크를 들고 나왔다고 한다. 오후 2시경인데 마스크를 진열하고 있어서 남편은 7장들이 한 봉지, 자신은 30장들이 한 팩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정말로 뜻하지 않은 타이밍에 마스크를 살 수 있었다니, 운이 참 좋았네요. 마치 복권이라도 당첨이 된듯한 축하 인사를 했다. 일본 약국에서 팔고 있는 마스크는 가격을 많이 올리지 않았다. 30장들이 마스크가 평소에 사는 가격의 세 배였다고 한다. 

 

일본에서 겉으로는 코로나19가 퍼지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조용히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3월 15일까지 폐쇄를 정했던 디즈니랜드가 개장을 4월로 연장했다. 대학에서도 늦게나마 코로나19의 감염 확산을 방지하는 의미에서 학과 사무실이나 도서관 오픈 시간을 줄이거나 축소했다. 동네 도서관에서 일하는 이웃에 의하면 지금은 도서관에서 책을 반납할 수는 있어도 다시 빌리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와 친한 이웃은 요즘 너무 우울한 모양이다. 나이가 80세 가까운데 동경에서 태어나 자랐고 지금까지 살면서 전쟁 중과 전쟁이 끝난 후를 포함해서 요즘처럼 이상한 세상은 경험한 적이 없다고 한다. 전쟁 중에 먹을 것이 없어도 친가가 사이타마에서 농사를 해서 식량이 조달되었고 전쟁에 패한 후도 먹을 것에 고생한 적은 없다고 한다. 일본은 말할 것도 없이 동경도 옛날에는 가난했고 많은 일이 있었다고 했다. 이웃은 정치나 국가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지만 지금 일본이 자신이 경험한 '최악의 상태'라고 했다. 이웃이 말한 '최악의 상태'는 나는 벌써 10년 이상 전에 재일동포 2세에게 들었다. 동경 다운타운에서 나고 자란, 불량배였던 그가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이 전쟁 때보다 살벌해져서 세상이 무섭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 동경을 떠나 바닷가 시골에 틀어박힌 생활에 들어갔다. 그는 내 이웃과 비슷한 연대다. 둘은 국적과 성별은 달라도 비슷한 시기에 동경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다. 재일동포 2세는 일찌감치 일본이 '최악의 상태'가 되었다고 했으며 내 이웃은 요즘 느낀다는 시간차가 있지만 자신들이 속한 사회와 국가에 대한 절망감이다. 나도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 절망감을 안기는 정치는 무엇인가? 

 

오늘은 2011년에 있었던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날이다. 친한 이웃은 그때 기부를 했고 그 이후 절전에 신경을 쓰는 생활을 한다. 나도 캔버라에 있었지만 모금활동을 했고 이런저런 기사도 썼다고 하니 이외라고 느낀 모양이다. 동일본 대지진 그 자체도 있지만 마트에 생필품이 다 떨어지고 교통이 끊기고 정전이 되는 경험을 했다. 일본인들의 '전쟁' 경험과 같은 트라우마로서 동일본 대지진이 있다. 쓰나미와 방사능 오염 만이 아닌 마치 '전쟁'이 난 것 같았던 결핍을 경험했다. 그렇기에 동일본 대지진을 화제로 대화할 때 아주 조심해야 한다. 특히 '희생양'이 된 후쿠시마 사람들이 입은 상처는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다. 나도 동경에 사는 사람으로서 후쿠시마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지난 학기말에 지리 강의에서 동일본 대지진 때 영상을 상영했더니 여학생 하나가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내 수업을 듣던 여학생이라 나에게 사정을 말하면서 부들부들 떨고 기절할 뻔해서 내가 껴안고 달래야 했다. 사정을 모르는 선생들은 내가 여학생을 울린 줄 알고 나에게 눈총을 주면서 지나갔다. 나는 대학교 일 학년 학생이면 아주 어렸을 텐데 동일본 대지진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나중에 지리 담당 교수에게 여학생이 패닉에 빠졌다고 다음부터 같은 영상을 강의에서 쓴다면 조금 유의해 달라고 했다. 

 

동일본 대지진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과 아픈 상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것은 잔혹하게도 세트가 되어 있다.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전쟁'에 패한 것을 반성하지도 않고 앞으로 나간다는 너무 위험한데 일본은 위험한 길을 가고 있다. 코로나19도 일종의 '전쟁'이다.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전쟁'이 났을 때, 대규모 '혐한'데모가 일어났던 것처럼, 코로나19 사태라는 '전쟁'에서도 '혐한'으로 모면하려 하고 있다. '전쟁'처럼 국민을 단결시키고 애국심을 자극하는 일은 없다. 동일본 대지진을 극복하기보다 '혐한'이 더 일본인을 단결하게 한다. 코로나19의 종식을 위해 정부와 국민이 단결하는 것보다 '혐한과 혐중'이 훨씬 더 일본 정부와 국민을 단결하게 만든다. 결국 목적은 국민을 '단결'시켜서 '애국심'을 극대화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국민이 '단결'해서 '애국심'이 넘친다고 동일본 대지진이 수습되지 않았던 것처럼 코로나19가 종식되는 일은 없다. 그래도 상관이 없다. 애초에 동일본 대지진을 제대로 수습하거나 코로나19를 종식시킬 의사가 없으니까. 어쨌든 '혐한'으로 대동 단결한다. 엉뚱한 상대와의 '전쟁'은 자신들의 상처를 더 깊게 후벼 팔 뿐인데도 불구하고 다 같이 '파멸'로 향하는 길을 택한 것 같다. 더 이상 '전쟁'이 아니라, '평화'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웃나라를 적대시하고 '혐오'하는 것보다 자신들 상처를 보듬고 서로를 위로하는 '치유'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일본에서는 아주 어려운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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