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 국회에서 아베 총리가 "도쿄올림픽이 '완전한 형태'로 개최되지 못한다면 선수를 최우선으로 생각해 연기 판단도 할 수 있다"라고 함으로 사실상 도쿄올림픽은 '연기'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어제 IOC에서도 4주 내에 '중지'나 '연기'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일본에서는 여전히 올림픽을 '강행'하자는 여론도 있고 JOC회장도 예정대로 열리길 바란다는 목소리도 있다.
어제 블로그를 올리고 나서 일본 TV 프로그램에서 유명한 정치가가 나와서 "희생을 전제로 도쿄올림픽이 열려야" 한다는 걸 듣고 참 일본이 좋아하는 '정신승리' 스토리를 만들려고 무리하게 억지를 쓰는구나 싶었다.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거물급 코미디언이 얼굴에 핏대를 세워가면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올림픽이 꼭 필요하다. 올림픽을 하기 위해서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발언을 하면서 자기가 하는 말에 도취하고 주위에서도 그 분위기와 의견에 동조하는 걸 보고 너무 놀랐다. 억지에도 정도가 있지, 도저히 제정신으로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미쳤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런 것이 먹힌다. 무리하면 할수록 대단히 감동적인 스토리가 되는 게 일본 분위기다. 나도 일본에 몇십 년이나 살았지만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는 감각이다. 너무 동떨어진 터무니없는 감각을 보면 내가 미쳤나 생각한다. 올림픽이 '전쟁'도 아니고 올림픽이 열리는 자체가 '승리'인 것처럼 어떤 일이 있어도 올림픽을 해야 한다는 어거지였다. '희생'이라니, '희생'을 감수하라니? 일본 전국체전이면 괜찮다. 선수가 일본인이고 일본이 책임을 지는 것이니까. 올림픽에서 '희생'을 전제로 한다는 자체가 올림픽 정신에 위배되는 게 아닌가. 국제적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가 먹히지 않는다.
오늘 동경은 최고기온이 13도로 흐리고 쌀쌀한 날씨였다. 동경 시내에는 벚꽃이 만개했고 교외인 내가 사는 주변에도 피기 시작했다. 벚꽃이 피고 날씨가 쌀쌀해지면 벚꽃이 오래가니까, 이번 주 내내 날씨가 쌀쌀하다니까 벚꽃을 위해서 반가운 소식이다. 다음주는 최고기온이 10도로 내려간다고 한다.
집에 신선한 야채가 다 떨어져서 야채와 식료품을 사러 배낭을 지고 나갔다. 무인 야채 판매에서 보라색 무를 하나 샀다. 마트에 가기 전에 가끔 쌀이 있는 가게에 들렀다. 한 달 이상 가지 않다가 오늘 들러서 가게 주인에게 요새 손님이 별로 없죠? 했더니 그렇지도 않단다. 코로나 19와 관계없이 평소와 다름없고 학생들이 이사 와서 학생 손님이 늘었다고 한다. 어머나, 깜짝이야. 세상은 나와 전혀 다른 감각으로 돌아가고 있구나. 마트에 가서 습관처럼 마스크 코너를 봤지만 마스크가 있을 리는 만무하다. 마스크가 없다는 걸 확인하려고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화장실 휴지 코너에 갔더니 몇 개는 있지만 여전히 비어있었다. 일본에서 생산한다면서 왜 화장실 휴지가 채워지지 않는 걸까? 휴지가 들어오는 족족 다 팔리는 걸까? 예전에는 항상 가득가득 쌓여있었는데. 대신에 티슈페이퍼는 꽤 채워진 상태였다. 화장실 휴지의 빈 선반을 보고 또 급격히 피곤해지고 말았다. 쌀을 사러 갔는데 현미는 2킬로 들이 밖에 없고 원산지가 두 군데로 딱 네 봉지밖에 없었다. 집에 밥 한 번 할 정도의 현미가 있다. 오늘 사지 말고 다음에 사야지. 힘이 빠져서 급격히 구매의욕이 떨어져 마트에서 아무것도 사지 않고 빈손으로 나왔다. 이번 코로나 19 사태로 사람들은 많은 걸 '사재기'하고 있지만 나는 하나도 '사재기'를 하지 않았다. 나보다 필요한 사람에게 양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냉장고를 파먹고 주변 농가 야채를 사서 먹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했다. 하지만 나도 먹여야 될 식솔이 있었다면 전투력을 발휘해서 '사재기'에 동참했을지도 모른다. 불안해서 '사재기'한 사람들을 나무랄 처지가 못 된다.
마트에서 힘이 빠져서 나와 강건너 벚꽃이 피는 공원에 들렀다. 아직, 여기 벚꽃은 3부 정도 피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벚꽃을 보고 있으니 정신이 좀 들었다. 강가를 따라서 10분 이상 걸으면 벚꽃이 좀 일찍 핀 강변 산책로가 있다. 나선 김에 거기까지 가려고 했더니 마침 친한 이웃이 강아지 산책을 데리고 나왔다. 이웃에게 마트에 쌀을 사러 갔는데 사지 않고 그냥 나왔다고 했더니 이웃이 5킬로여서 무거워서 사지 않았냐고 묻는다. 현미는 2킬로짜리 밖에 없어서 무겁지는 않은데 왠지 그냥 힘이 빠져서 살 기운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보기에는 남을 밀치고라도 제 걸 사는 사람으로 보이죠? 했더니 그렇단다. 겉보기와는 달리 실상은 그렇지도 못해서 만약에 무슨 일이 있으면 딱 굶어 죽기 쉬운 사람이라고 했다. 이웃과 산책하면서 벚꽃이 핀 것도 봤다. 강아지가 산책하면서 오줌을 싸지 못할 장소에 난 달래도 좀 뽑았다.
어제까지 일본 분위기는 도쿄올림픽을 강행할 것 같은 포즈를 취하면서 성화 봉송을 위한 이벤트까지 했다. 그런 한편으로 일본 정부에서는 '연기'를 고려한 다른 액션도 취하고 있었다. 먼저 코로나 19 대책을 위한 G7의 화상 정상회담을 했다면서 도쿄올림픽을 "인류가 코로나 19를 극복한 증거로 '완전한 형태'로 실현하는 것에 대한 지지를 얻었다"라고 밝혔다. 일본의 관심은 코로나 19가 아니라, 도쿄올림픽에 있었다. 인류가 아직 코로나 19를 극복하지 못했다. 인류는 현재 코로나 19와 전쟁 중이다. 그 뒤에 한중일 외상이 코로나 19 대책을 위한 회담을 가졌다. 일본에서 회담 성과로 "한국과 중국이 도쿄올림픽의 '완전한 형태'로 개최하는 걸 지지했다"라고 일본 외무상이 먼저 발표했다. 중국은 코로나 19가 한 번 휩쓸고 지나갔고 한국은 코로나 19 태풍을 맞고 있을 때, 일본은 어떤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뜬금없는 발표였다. 그로서 일본 정부가 코로나 19 대책은 관심이 없고 오로지 도쿄올림픽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일본은 평소에 '혐한과 혐중'을 밥 먹듯 하면서 왜 자신들의 중요한 행사에 한국과 중국의 지지를 받고 싶은 걸까? 한국과 중국에서 반발할게 뻔한 욱일기를 내세우는 올림픽을 할 거면서? 일본 정부가 하는 걸 보면 '자아분열'이 아닌가 할 때가 많다.
일본 정부는 도쿄올림픽을 강행하는 시나리오와 '연기'하는 시나리오도 준비해서 진행하고 있었다. 오늘 '중지'는 없다고 했는데, '중지'는 할 수가 없다. 도쿄올림픽의 '연기'도 막대한 영향을 초래하는데 '중지'한다면 바로 아베 정권이 망한다. 오늘 오전에 국회에서 '연기'할 수 있다는 발언으로 그동안 강행하던 도쿄올림픽에 가까스로 브레이크를 걸 수 있었다. 일본만이라면 얼마든지 강행할 수 있고 일본에서는 무리해서 강행하는 걸 아주 좋아한다. 하지만, 외국에서 반발이 심할 것은 너무나 뻔하다. 실제로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에서는 내년으로 연기하지 않으면 선수를 보내지 않겠다면서 보이콧한다고 했다. 지금 세계가 그야말로 코로나 19와 전쟁 중인 상황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전쟁 중이던 나라도 휴전했다. 그런데 올림픽이라니, 아무리 올림픽이라도 목숨 걸고 할 필요는 없다. 만약에 올림픽을 강행해서 코로나 19에 감염된다면 그 책임을 어떻게 질 수 있나? 일본에서 아무리 애가 타도 억지를 부리지 못할 상황까지 왔다.
일본의 코로나 19 대책도 일종의 '자아분열'로 보인다. 일본 정부에서는 내일 휴교명령을 해제하고 학교를 재개하도록 발표할 모양이다. 학교에서는 감염된 사례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 원래 전국 일제히 휴교 명령을 내릴 때부터 초중고 학생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인데 왜 그럴까 생각했다. 왜냐하면 대부분 학생들은 도보권으로 가까운 학교에 다니고 학교도 과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 가족은 밖에서 감염해서 돌아올지도 모른다. 휴교로 인해 부모에게 영향이 컸다. 그런데 지금은 휴교 명령을 내릴 때와 상황이 달라져서 감염 확진자가 5배나 많아진 상태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폭발적인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학교 재개에는 전국 일제히 하지 말고 지역의 상황에 맞게 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를 재개하면서 한편으로 26일부터 4월 말까지 미국을 입국 규제한다고 한다. 미국의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기에 입국 규제가 이상하다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입국 규제가 '원천봉쇄'가 되지도 않는다.
일본 정부가 외부에 대해서는 입국 규제를 하면서 '원천봉쇄'를 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도쿄올림픽 관련 행사는 강행했다. 민간에 대해서는 지역 이동 자제와 이벤트나 모임 자제를 요청하면서 국가 주도 행사는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데 강행한다. 지난 3월 14일에 동경 중심 노선인 야마노테 선의 다마치와 시나가와 사이에 다카나와 게이트웨이 역이라는 새로 역이 생겼다. 코로나 19 감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JR은 개업식을 중지하고 관련 이벤트도 연기했다. 하지만, 일본에는 덕후와 철도 팬이 많고 원래 이런 이벤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5만 4천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오늘 유튜브로 그날 영상을 봤는데 역무원이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 사람들도 밀집해서 코로나 19가 전염되기 쉬운 상황이었다. 개업한 당일 차표를 몇 장이나 사서 인터넷에서 '되팔기'하려는 사람들도 많았던 모양이다. 3월 21일에는 센다이 시에서 올림픽 성화 전시 행사에 5만 2천 명 이상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도쿄에 5만 명과 지방의 5만 명은 좀 다르지만 사람들이 관심 있는 행사를 하면 모이지 말라고 해도 이 정도로 인파가 몰린다. 3월 22일 K-1 시합이 관중 6,500 명이 밀집한 가운데 사이타마 아레나에서 치러졌다고 한다. 물론 주최 측에서는 방역에 신경을 썼다고 하지만, 시합의 성격상 사람들이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고 침이 튀는 것은 당연하다고 봐야 한다. 어제 우에노 공원과 다른 벚꽃 명소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까, 공원은 야외니까 다르지만 사람들이 밀집해 있으면 야외라고 안심할 수도 없고 마스크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일본에서도 도쿄올림픽에 대해 코로나 19 사태가 진전됨에 따라 '연기'하는 쪽으로 여론이 기울었다. 여론조사에서도 '연기'하는 것이 좋다는게 70%나 된다고 한다. 아베 총리가 강경하게 진행했지만 여론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하기도 쉬워졌다.
일본에서는 코로나 19와 도쿄올림픽을 놓고 터무니 없는 저울질을 했다. 국민의 생명과 돈을 놓고 저울질한 것이다. 일본 정부와 일본 사람들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쿄올림픽을 택했지만 코로나 19가 훨씬 무거웠다. 코로나 19는 일본만이 아니라, 세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으니까,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세계에서 일본만이 코로나 19를 만만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근거 없는 허세다. 그와 반대로 세계에서 코로나 19와 정면으로 '전쟁'을 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한국 정부는 바보같이 코로나 19에 '무모한 도전'을 하고 있으며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꿈에 그리던 도쿄올림픽을 '연기'하고 코로나 19와 전면전을 할 것인가? 제발, 정신 차리고 코로나 19에 집중해서 승부를 봐야 하지 않을까? 일본이 싫다고 해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든다. 나는 도쿄올림픽 강행을 '승리'로 여기지 말고 코로나 19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일본이 되었으면 좋겠다. 일본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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