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5/08 적당한 거리
오늘 동경 날씨는 맑아서 햇살이 강했지만, 기온은 높지 않았다.
요새 날씨가 이상하다. 낮에는 햇살이 따갑고, 저녁은 춥다. 도무지 5월 날씨라고는 믿기가 어렵다. 이러다가, 갑자기 황당하게 더워지는 게 아닐까 무섭다.
오늘은 500명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수업 전반부에 한국과 중국의 문맥에서 말하는 ‘친일’과 ‘반일’에 대해서 해설을 했다. 지난주 쉬어서 두 주 만에 수업이었다. 지난 수업 때, 학생들이 생각하는 ‘친일’과 ‘반일’에 대해서 써서 내라고 했다. 학생들이 중국을 ‘반일’ 데모나 하는 사람들로 인식하고, 몰지각하게 중국에 대한 차별적 감정을 나타낸다. 이건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래서 한번 해설을 한 것이다. 수업의 반을 거기에 쓰고 말았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친일’과 ‘반일’이 너무나 다르다는 걸 알아서 놀랜 모양이다.
일본에서 ‘혐한’ 감정이나, ‘혐중’ 감정을 가진 자신들과 한국이나 중국에서 ‘반일’ 데모를 하는 사람들이 닮은꼴이라는 것, 실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이다. 학생들이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일그러진 자화상’인 것이다. 아직 감상문을 안 읽었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걸 읽어낸 학생이 있을까? 서로 간에 감정을 표출하는 방식이 다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다지 다르지 않은 모습인 것이다. 거기까지 말을 했다가는 학생들 거칠게 반발을 할 거라, 무서워서 직접적으로 말을 안 했다. 감상문에 없으면 다음 시간에 말을 하리라.
점심시간에 후배를 봤다. 지난 4.3 항쟁 추모회를 같이 도왔던 후배다. 4.3 항쟁 추모회가 끝나서 뒤풀이를 아침까지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소개해서 같이 갔던 사람이 얌전하게 아침까지 있었단다. 그리고 가라오케에도 같이 갔단다. 내가 소개했던 사람이 결혼을 했느냐고 물어본다. 내가 모르겠는 데, 관심이 없는 일이라, 물어보질 않았다. 그런데, 후배는 왜 물어봤을까? 그걸 후배에게 물어보지도 않았다. 나중에야, 왜 궁금했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을 만날 때 인적사항에 관해서 묻질 않는다. 상대방이 말을 해오면 그러냐고, 그럴 뿐이다.
새로온 선생이 나에게 거침없이 다가온다. 일본 사람들과 인간관계에서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어렵다. 내가 곤란한 것은, 거침없이 가깝게 다가와 밀착하려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동성이라도, 거침없이 다가오는 사람은 아주 난감하다. 식은 땀이 나고 무서워진다. 몸과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 있다. 아니다, 몸과 마음을 준비하고 싶지 않은 거다. 차간 거리가 아니지만 인간 간의 상식적인 거리를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다음 한국에 갈 때 같이 가고 싶다고 데려가 달란다. 참 편하게 부담 없이 말을 한다. 저랑 같이 여행을 하고 싶어서 기다리는 사람이 100명은 넘으니까, 차례를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 말을 못알아 들은 모양이다. 나를 한시도 가만히 두질 않을 모양이다. 왕부담이다. 다음에 같은 일이 벌어지면 말을 하리라. 부담스러우니까, 너무 가깝게 다가오지 말아 달라고. 낯을 가려서 잘 모르는 사람과 친해지는 것도 시간이 걸리고 여행을 안 한다고 말을 할 거다. 나는 낯가림이 심하고 아무 하고나 친해지기 어려운 타입이다. 문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적당히 거리를 지킬 것 같지만 의외로 적당한 거리감을 모른다. 아주 밀착하거나 거리가 있거나 확실히 나누어진다. 나는 적당한 거리가 좋다.
적당한, 적정한 거리가 서로를 편하게 한다. 서로에게 편한 거리가 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세상 경험이 풍부하다면, 그런 거리를 감지하고 지켜줘야 한다. 사람에게는 나름대로의 영역이 있으니까, 남의 영역에 함부로 들어가지 말자. 그게 아무리 ‘호의’라 해도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마시라. 스토커가 되는 길이라는 걸 아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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