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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미소지니와 제노포비아

아베 사망으로 '혐한'의 완성인가

오늘 동경은 최고기온 25도, 최저기온 22도로 기온은 낮지만 습도 95%로 높아서 쾌적한 날씨와는 거리가 있다. 요새 동경은 기온이 높다가 다음날 기온이 급격히 내려갔다가 날씨가 들쑥날쑥하다. 거기에 매일 같이 비가 오는데 비도 오락가락한다. 예를 들어 하늘을 보면서 비가 올 것 같지 않아 산책을 나갔다가 비를 맞고 돌아오는 일이 허다하다. 어제도 집에서 나갔더니 비가 올 것 같아 멀리 갈 수가 없어서 집 주변을 맴돌다가 비가 와서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비가 많이 와서 산책은 포기하고 낮에 마트에 다녀왔다. 아직 태풍 힌남노가 멀리 있어서 그 영향은 아닐 것 같은데 비가 오는 것이 심상치가 않다. 오늘 마트에 간 것은 과일을 좀 사고 싶었는데 산 것은 사과와 배를 각 하나씩이다. 치즈도 먹고 싶어서 3종류를 샀다. 생각해 보니 계절과일 정도는 먹어줘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비싼 과일이 태풍이 지나면 다시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갈지도 모르겠다. 내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마트에 가서 과일을 사야지. 

 

요새는 비가 언제 올지 몰라서 친한 이웃과 같이 산책을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전화를 한다. 어제 전화해서 날씨에 관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태풍 힌남노가 온다는데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태풍이라고 한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인 것 같다. 이런 태풍이 불면 사람이 살아남기가 힘들 것 같다. 근래 일본에서 보면 자연재해가 너무 많아 그런 뉴스에 익숙해지고 말았다. 우리처럼 직접적인 피해를 받지 않는 사람은 다행이지만 실제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정말 불쌍하다. 매일 같이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 이런 식으로 자연재해가 일상이 되어 익숙해져서 '에휴, 안됐다' 할 뿐 관심도 그다지 없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그런 사람들에게 충분한 케어를 하기나 하는지 도무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이렇게 각자도생으로 자기 살기에 급급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공포스러웠던 더위와 함께 여름이 지나서 정말 다행이다. 올해는 6월 하순부터 더위가 정말로 살인적이었다. 

 

 

일본에서 아베 사망 이후 통일교와 자민당의 유착관계가 매일 같이 보도되었다. 제2차 기시다 내각에서는 표면적으로 통일교와 관계가 있는 각료를 입각시키지 않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새로 입각한 각료에도 통일교와 관계가 있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아베 사망 기사에는 통일교를 빌미로 직접적으로 '혐한'으로 몰아가려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통일교가 한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혐한'의 이유로 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자신들이 뽑은 정치가, 일본에서 오래 집권하고 있는 자민당 의원들이 당선하기 위한 수단으로 통일교와 깊은 관계를 맺었고 앞으로도 재선 하기 위해 통일교와 관계를 청산하겠다고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어디에나 문제가 있는 종교단체는 있지만 그건 다른 걸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통일교와 자민당의 유착관계가 '혐한'으로 연결되기는 어렵다고 봤다. 아베가 저격당한 이유가 통일교 신자를 어머니로 둔 저격범의 원한에 의한 것이기에 아베 사망이 '혐한'으로 연결되기도 어렵다고 봤다. 하지만, 내가 아주 나이브했다는 걸 요새 재일동포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고 알았다. 결론을 먼저 쓰면 아베 사망으로 '혐한'에 철근을 넣고 콘크리트를 친 것 같다. 일본에서 '혐한'은 아무도 허물 수 없는 견고한 사회적 구조물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혐한'을 선동했던 아베가 장기집권으로도 완성하지 못했던 '혐한'을 사후에 드디어 완성했다는 건가 하는 마음이 든다. 이것 또한 위대한 아베의 자랑스러운 업적이 될 것이다.

 

아니, '혐한' 자체가 일본의 자랑이며 일본인으로서의 '프라이드'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우월감'을 표출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웃나라를 '혐오'하는 것이 자랑이며 프라이드에 우월감이라면 정말로 대단히 자존감이 낮다는 걸 만천하에 자랑하는 격이다. 어느 나라에서도 이웃나라를 '혐오'하는 것이 자랑이거나 프라이드가 될 수는 없다. '혐오'하는 것 자체, '혐오'하는 걸로 우월감을 느낀다면 정상적인 범주에서 벗어난 상태라고 본다. 일본에서는 '혐한'이 주로 고령층이라지만 주로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혐한'을 컴퓨터도 쓰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고령층이라는 건 논리적으로 무리가 있다. 그동안 '혐한'을 지켜본 입장에서 보면 온라인상에서 볼 수 있는 '혐한'은 고령층이 아닌 컴퓨터나 스마트폰 이용이 활발한 계층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일본에서 젊은 세대의 자존감이 낮은 것이 문제가 된 지 꽤 된다. 그런데, 아베처럼 국가 수장이 이웃나라에 대해 '혐오'를 선동하고 매스컴이 동조해서 '혐한 비즈니스'로 돈을 버는 환경에서 젊은 세대가 자존감을 높이기는 정말로 쉽지 않을 것이다. 어른들이 원인을 만들어서 환경을 조성해놓고 젊은 세대에게 자존감이 낮다고 문제시하는 게 코미디처럼 보인다. 

 

 

며칠 전에 일본 정부의 주도하에 민족학교 학생들이 차별당하는 현실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https://news.yahoo.co.jp/articles/c90f9990ceb2c21365039cf2569170517dc0e385). 전편과 후편(https://nordot.app/927737332948664320)으로 나뉘어 좀처럼 보기가 쉽지 않은  괜찮은 기사였다. 내용을 간추린 걸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전편을 먼저 쓰고 후편을 나중에 쓴다. 기사 제목도 전편이 <코로나 국면에 조선학교 배제 확대, 유엔 시정권고에도 따르지 않는 일본 정부, 마스크 지급에도 격차, '비인도적' 비판받은 사이타마시는 철회, 재일 조선인 차별문제>이다. 후편은 < '관민 일체' 재일 조선인 비난, 아베 전 수상 총격에서도 넘친 헤이트, 각종 학교 구실로 배제, 유보 무상화에서 코로나 지원책에도 확대, 재일 조선인 차별문제>이다. 

 

일본 정부가 코로나 감염대책으로 신설한 교육/생활지원 대상에서 조선학교와 학생들을 제외시키면서 교육 지원 격차를 확대시킨다. 2010년에 시작된 고교 무상화에서도 조선학교 학생을 배제했고 재판소에서도 이 조치를 추인했다. 납치문제를 이유로 배제했다는 것이 유엔에서 비판당해 그 이후 국제 사화에서는 일본 정부가 이런 주장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것이 알려지지 않았다. 유엔 인권기관에서는 조선학교 학생을 배제한 것을 '차별'로 단정하고 시정을 요청했지만 일본 정부는 거부하고 새로운 지원책을 만들면서 처음부터 조선학교를 배제하는 방책을 택했다. 유엔 인권 이사회가 임명한 전문가는 이것도 '차별'이라고 바로 그만둘 것을 요청하고 있다. 조선학교를 공적지원에서 배제하는 일본 정부의 논리는 국제사회에서 전부 퇴출당하고 있다. 

 

고교 무상화에서 조선고교의 배제는 '차별'이라고 유엔 인권기관으로부터 지적당한 일본 정부는 유치원/ 보육소 무상화 조치에서 학교 교육법상 '각종 학교'를 제외하는 방법으로 조선학교 유치원을 제도 밖으로 내몰아서 이런 수법으로 코로나 감염증 대책 지원사업에도 확대했다. 이런 일본 정부의 자세는 배외주의(외국인 차별)를 조장하고 아베 전 수상이 총격당한 직후에도 재일 조선인을 범인이라고 단정하는 헤이트 스피치가 SNS를 통해서 확산되었다. 재일 조선인 사회는 일본에서 '관민 일체'로 행해지고 있는 비난 속에 있다. 

 

내가 야후 재팬 기사를 소개한 이유는 기사에 달린 '차별'적인 댓글로 도배가 된 걸 통해서 일본에서 '혐한'이 어떤 것인지 알리고 싶었다. 며칠 사이에 '차별'로 도배가 된 댓글이 "위반 댓글 수가 기준을 초과해서 댓글란을 자동적으로 비표시로 했습니다"라는 것이 떴다. 유감스럽게도 일본이 자랑하는 '혐한' 일본의 프라이드와 우월감을 확인할 재료를 볼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나는 연구하는 사람이어서 어떻게 분위기가 바뀌는지 확인하기 위해 댓글을 하나하나 다 읽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혐한'으로 일관된 많은 댓글을 아주 냉정하게 관찰했다. 일본은 참으로 대단한 나라이며, 일본인 또한 대단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자신들과 같은 사회에 살고 있는 재일 조선인 그것도 어린 학생들에 대해 적나라한 '혐오'만을 표출할 수 있는지 그런 우월감이 대단하다. 

 

또 하나 기사는 교토 재일동포가 살고 있는 우토로를 방화한 범인에 관한 것이다. 기사 제목이 <"헤이트 크라임(혐오 범죄)으로 방화한 거리 교토 우토로 지구 23세 피고가 말하는 '불법 점거'란?>이다(https://news.yahoo.co.jp/articles/04a77bc4fce04db8558052ed821d219166345e1f). 이 기사에 달린 댓글은 아직 볼 수가 있다.  범인이 사실관계를 오인해서 자신의 '편견과 혐오감'으로 방화했다고 밝히는데도 불구하고 댓글을 보면 범인을 칭송하고 있다. 재판에서도 범인은 범행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범행을 통해서 일본사회에 어필하고 싶다는 목적을 달성했다고 한다. 댓글을 보면 말 그대로 대상이 재일동포니까, 혐오범죄를 칭송하면서 일본에서는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야 한다고 부추기고 있다. 참으로 대단한 나라가 아닐 수 없다. 재일동포는 마이노리티니까, 방화하고 죽여도 된다는 논리다. 이런 논리가 지금 이 시대에 자랑스럽게 전해지는 나라가 일본이다. 이런 비인도적인 논리를 목소리 높여서 말할 수 있고 정부는 그런 걸 조장하는 사회에서 젊은 세대가 높은 자존감을 갖기가 쉬울까? 이런 사회에서 어떤 희망을 볼 수가 있을까?

 

어쩌다가 재일동포가 '혐오'의 대상이지만 그런 대상은 항상 바뀔 수가 있다. 평생 마이노리티가 되지 않고 살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어떤 의미로든 '약자'가 될 수 있다. 그런 '약자'가 기본적인 인권을 존중받기는 커녕 '혐오'의 대상이 되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사회에서 살아남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본에서 15-39세 젊은 사람들 사망원인이 '자살'이 가장 많다고 한다(https://news.yahoo.co.jp/articles/93e52ec7ee23c49fffade86bb90d17a5091f17fb). 그런 '자살'이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다고 하지만 여명 연수로 계산하면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보다 많다고 한다. 일본도 초고령화 사회, 저출산으로 인구감소가 문제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젊은 사람들의 '자살'에 관심을 가지고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풍조는 젊은 사람들에 한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표면상 코로나 사망자는 많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 워싱턴대학 연구팀이 영국에서 발표한 논문에 74개국과 지역을 대상으로 한 초과사망 추정치를 보면 2020년 1월에서 2021년 12월까지 일본 초과 사망은 11만 1천 명으로 추정되어 코로나 사망자의 6배로 OECD 중 가장 많았다고 한다 (https://news.yahoo.co.jp/articles/2133bdf5e7f3fbe76487454ec95a79654e947905). 초과사망은 과거 사망통계나 고령화 진행으로 봐서 예상된 사망자 수와 실제 사망자 수를 비교한 숫자다. 일본에서 코로나 사망자의 6배나 된다는 초과사망에 대해 언론에서 기사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여기에서도 살짝 언급을 하고 지나가는 수준이다. 아무래도 사망한 사람들은 고령자가 많을 텐데 고령자의 사망에 대해서도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아니다, 정책이 변하는 걸 보면 고령자가 빨리 죽기를 바라는 걸로 보일 지경이다. 

 

 일본에서 '혐한'은 아베의 공적으로 매우 성공했다. 그가 사망한 걸로 '혐한'에 철근을 넣고 콘크리트가 쳐졌으니 확고한 그의 업적이 되겠다. 그렇지만 '혐한'이라고 '혐오'의 대상이 일본밖에 있는 한국을 향한 것만이 아닌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일동포와 한국인을 향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보고 느끼는 '혐한'과 일본에서 일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면서 느끼는 '혐한'은 전혀 다르다. 일본에서 사는 사람, 나 같이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언제 공격을 당할지 모르는 직접적인 '폭력'이다.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제 어디서든 '폭력'을 당할 수 있는 것이 일본이다. 그렇다, 내가 엄마라고 했던 분도 "너는 한국 사람이니까, 언제 어디서 칼 맞을지 모른다는 걸 알라"고 했다. 꽤 오래전이었지만 일본이 그런 사회로 변했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웃나라나 이웃나라에서 왔다고 '혐오'하는 사회, 그런 '혐오'를 정당화하는 사회는 자신들을 '혐오'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이웃나라를 '혐오'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실제로는 같은 사회에 사는 이웃을 공격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 사회에서 성장하는 젊은이가 높은 자존감을 갖기는 쉽지 않다. 이웃을 향한 '혐오'로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한다. '혐한'으로 자신들의 사회를 공격하고 이웃과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아베는 '혐한'이라는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