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대학생

열 달만에 간 도서관, 낯선 풍경

오늘 동경은 최고기온 25도, 최저기온 15도로 모처럼 햇볕이 나고 따뜻한 날씨였다. 내일은 최고기온이 21도로 내려간다고 한다. 오늘은 햇볕이 나서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여름이불을 빨아서 널고 이불과 베개를 널어서 말렸다. 집안일을 오전에 마치고 오랜만에 대학 도서관에 갈 생각이라 마음이 바빴다. 나가는 길에 쓰레기도 정리해서 버리고 친한 이웃과 서울 가기 전날에 밤을 따다 준 이웃에게도 작은 선물을 전하고 싶었다. 기온을 보면 나름 더울 것 같은데 집에서는 그렇게 따뜻한 느낌도 들지 않았다. 쓰레기를 들고 밖에 나갔더니 여전히 어제까지 내린 비로 땅이 젖었고 기온이 내려갔던 탓에 서늘한 기운이 강했다. 하지만, 햇볕을 받는 곳에 나갔더니 꽤 더워서 정신없이 땀을 흘렸다.

 

 

대학 도서관에는 아파서 입원하고 수술한 이래 열 달만에 처음 갔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같은 동네 사람에게 학생들이 많다는 소문은 들었다. 그래도 여름이라서 있을 곳이 없는 학생들이 많았겠지 했다. 나는 이 도서관을 40년 가까이 이용했지만 시험 때 외에는 학생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걸 상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도서관에 갔더니 학생들이 많아서 놀랐다. 그리고 학생들을 봤더니 차분하게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에 익숙한 모양이다. 거기서 다시 놀랐다. 예를 들어 시험 때 어쩔 수 없이 오는 학생들은 도서관에서도 집중을 하지 못한다. 오늘 본 학생들은 세 갈래로 나뉘었다. 잠자는 학생들,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보는 학생들,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학생들이었다. 나에게는 너무나 낯선 광경이라서 잠시 도서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도서관에 간 것은 도서관 카드 유효기간을 연장하고 빌리고 싶은 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서관 카드를 연장하는 곳도 담당 데스크가 바뀐 모양이다. 빌리고 싶은 책은 대출 중이어서 예약을 하고 왔다. 예약한 책이 도서관에 반납되면 이메일로 연락이 온다고 한다. 그래서 이메일을 등록하겠다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문의했더니 내 도서관 카드 번호로 로그인하면 할 수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도 쉽게 되는 일이 없는 법이라서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로그인하고 이메일 등록을 하려고 찾아봐도 등록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눈치가 빠른 직원은 내가 로그인하는 걸 보면서 뒤에서 직원도 로그인해서 보고 있었다. 데스크에서는 해결이 되지 않아서 내부까지 문의가 들어갔다. 그랬더니 4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서 카드를 연장했던 데스크에서 등록을 하라고 한다. 아까 카드를 연장한 데스크 옆이었다. 카드를 연장할 때도 그런 업무에 익숙하지 않아서 한참 버벅거리고 여기저기 문의하면서 겨우 끝냈더니 나중에는 사인을 받지 못했다고 2층에서  4층까지 헉헉거리고 올라와서 나를 찾았다. 그 옆자리에서도 이메일 등록하는 일이 드문 모양으로 다른 사람에게 문의를 한다. 내가 일을 보는 사이에 다른 학생들이 줄을 서니까, 마음이 급해서 인지 이메일 주소를 써주면 나중에 자기가 등록해 놓는다고 한다. 

 

도서관 배치도 좀 바뀐 느낌이다. 이전에 책이 없던 곳까지 작은 문고판 책장이 들어섰고 책이 빽빽하게 채워졌다. 도서관은 4층 건물로 입구가 2층이다. 2층에는 사무적인 일을 볼 수 있는 안내 데스크 등이 있고 학생들이 쓸 수 있는 컴퓨터들이 꽤 있다. 3층은 그냥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으로 직원이 있는 데스크가 없다. 4층은 서가가 있고 책이 있기에 나는 주로 4층을 쓴다. 그런데 4층에서 느낀 가장 큰 변화는 검색 전용 컴퓨터가 6대에서 2대로 줄었다는 것이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은 몇 배로 늘었는데 검색하는 컴퓨터가 2대밖에 없으니 검색하기 위해서 줄을 설 수밖에 없다. 아마 도서관에서는 학생들에게 2층에서 검색하길 바라는지 몰라도 책이 4층에 있는데 2층에서 검색해서 올라오는 건 효율적이 아니다. 이 도서관을 오래 쓰지만 어떻게 된 것이 한결같이 서비스가 점점 이용자가 불편한 쪽으로 가는지 모르겠다. 그런 것에 화를 내도 나만 손해를 볼 것이라서 한숨이 나오지만 어쩔 수가 없다. 직원에게 도서관이 많이 변했다고 하니까, 눈치가 빠른 직원이 많이 변했다고 동의한다. 도서관 시스템이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 의견이 전혀 수렴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 도서관 이용이 크게 늘었는데 이용자가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바뀌어야 하는데 정반대로 바뀌었다. 더 이상 대학 도서관이 나에게도 좋은 장소가 되지 않을 것 같아 매우 섭섭하다. 

 

오늘은 화요일이지만 어제까지 연휴여서 오늘 새로 온 책이 서가에 진열되는 날이다. 그래서 항상 월요일에 도서관에 가곤 했었다. 오늘도 새로 온 책을 볼 생각에 기대하고 갔지만 서가에서 책을 손에 들고 본 것은 한 권도 없었다. 책 내용이 궁금한 책이 한 권도 없으니 빌릴 책도 없어서 참 씁쓸했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에게는 한산한 도서관이 참 좋았다. 붐비지 않아서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검색 전용 컴퓨터가 좋았다. 날씨도 선선해졌고 도서관에 가는 길도 텄으니 산책 삼아서 월요일에는 도서관에 가는 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잠깐 가서 새로 온 책을 보고 필요한 책을 검색해서 빌리는 걸로 이용을 제한할 것 같다. 이렇게 40년 가까이 즐거운 놀이터이며 소중한 장소였던 도서관과도 슬슬 정을 떼게 될 모양이다. 

 

 

그나저나 40년 가까이 볼 수 없었던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늘었다는 걸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책을 읽는다는 게 당연한 일인 줄 알지만 어릴 때부터 책을 읽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 어느 날 갑자기 책을 읽기 시작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전에는 책을 읽는 것이 당연했지만 지금은 책을 읽지 않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고 말았다. 나는 솔직히 일본이 책을 읽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극단적으로 변하는 걸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전 책을 읽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시대에서 책을 읽지 않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된 지금 대학에서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다. 대학에서 공부는 가르치는 사람들이 약간의 도움을 주지만 기본적으로는 스스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 교육은 고등학교까지 과정을 마치고 오는 곳이기에 책을 읽는 훈련만이 아니라, 공부하는 훈련이 되었다는 걸 전제로 한다. 

 

내가 가르치던 점수로 치면 중간에 위치한 학생들을 보면 책을 읽는 것과 공부하는 훈련이 된 학생이 극소수에 속한다. 그래도 선생의 지시를 듣고 따라오려는 학생들이 내 수업을 많이 들었지만 개중에는 초등학생과 같은 레벨의 학생도 꽤 있다. 나이를 먹었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레벨을 유지하는 학생에게는 어떻게 손을 쓸 도리가 없다. 강의를 이해할 수도 없고 수업을 따라올 수가 없다. 집중해서 강의를 듣지도 못한다. 그런 학생들 중에는 확증편향적 경향이 있어서 여성 혐오나 혐한, 차별적 발언이 나오기도 한다. 인터넷으로 얻은 걸 마치 자신의 생각처럼 주장한다. 거기에 대부분은 전혀 악의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신들의 '정의감'을 갖고 있다고 여기며 여성 혐오나 혐한, 차별을 '정의'라고 주장한다. 허긴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로는 마치 그런 것이 '정의'가 된 감이 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한국에서 일본에 오는 관광객이 늘고 있다, 비행기 요금이 싸다고 동경이나 오사카보다 후쿠오카가 인기가 있다는 기사가 떴다(https://news.yahoo.co.jp/articles/d16e662c6259e74273dd1b33c6216fb4877451d3). 그 기사에 달린 댓글을 봤더니 내가 본 시점에서는 100% '혐한'이었다. '노 재팬'을 계속하지 않는다고 비웃고 있다. 한국에서 일본에 오는 관광객은 일본에서도 욕을 먹고 있다. 참, 이렇게 경기가 어려운 데 관광객이 온다고 해도 관광객을 도둑놈 취급하고 혐오로 일관하는 나라가 지구에서 일본 이외에 있을까 싶다. 정말로 한국인 관광객이 온다는 것에 대해 100% '혐한'으로 대동 단결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일본에서는 그 어려운 걸 쉽게 해낸다. 이런 단결심을 이웃나라를 향한 혐오가 아니라, 자국 발전을 위해 건전한 방향으로 써 달라고 하면 화를 내겠지? 

 

일본의 '혐한'에 대해서 화를 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일본의 '혐한'은 양날의 칼이나 마찬가지로 한국을 향하면서 자신들 사회를 난도질하고 있다. 한국에서 화를 낸다고 일본의 '혐한'을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이 '혐한'의 나라라는 걸 존중하길 바란다. 그렇다고 그들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 일본에서 '혐한'은 한국이 어떻든 상관없이 인이 박히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일본 사람들이,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혐한'을 매우 사랑하기에 일본이 망하거나 자신들이 죽어도 그만 둘 수가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부당한 행동에 대해 '노 재팬'을 꾸준히 하면 된다. 뉴스에서 일본에 가는 사람이 늘었다고 선동하든 말든 일본의 처사가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노 재팬'의 생활화로 꾸준한 실천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조용히 꾸준히 '노 재팬'하는 것으로 한국 사회가 상처를 입는 일도 없고 생활에 큰 불편함도 없을 것이다. '노 재팬'을 생활화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라, 새삼스럽게 '노 재팬'을 외칠 필요도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