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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생활

오랜만에 잡채를

오늘 동경은 최고기온 19도, 최저기온 8도로 아침부터 화창하게 맑고 따뜻한 날씨였다. 이틀 전에도 좋은 날씨였지만 일이 있어서 오후 늦게 외출했다가 밤늦게 돌아왔다. 어제는 비가 온 후 오전에는 흐렸다가 낮부터 개인 날씨였다. 기온이 낮지 않았지만 집에 아침 햇살이 들지 않아서 추웠다. 

 

어제는 요새 쇼핑을 가지 않아서 집에 먹을 것이 없는 느낌이 들었다. 먹을 것이 있지만 새로 산 신선한 기분이 드는 먹을 것이 부족한 느낌이다. 조금 바쁘다가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요새 산 것은 가까운 야채가게에서 산 배추와 무 밖에 없었다. 배추와 무를 좋아하지만 그런 것만 먹으면 기운이 나질 않는다. 전날 인터뷰 갔다가 갈비탕과 김치, 부침개 등 한국음식을 사다 주셔서 오랜만에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랬더니 다음날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제는 정신을 차리고 날씨가 개서 마트에 물건이 충분히 진열될 시간을 기다렸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나갔다. 

 

내가 간 마트는 토요일에 쌀이 20% 할인해서 쌀을 사야 한다. 오징어도 먹고 싶고 다른 살 것도 있다. 평일보다 주말에 손님이 많기 때문에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사람이 많을 때 마트에 가는 걸 피했다. 어제도 마트에 사람이 많을 줄 알았더니 이외로 사람이 너무 없어서 놀랐다. 평소에 가는 다른 마트는 주말이나 휴일에 확실히 사람이 많은데 흐름이 바뀌었는지 몰라도 큰 역에 가까운 마트에 한산할 정도로 사람이 적었다. 어제는 오징어를 살 목적으로 갔더니 횟감인데 냉동밖에 없었다. 같은 생선이라도 횟감은 비싸다. 횟감이 아닌 냉동오징어는 싼 편이다. 횟감용 오징어를 샀다. 집에 와서 손질해서 회로 먹었는데 선도가 좋은 편이 아닌 것 같다. 저녁에는 구이로 먹었다. 다른 생선 횟감은 신경 써서 냉동하는데 오징어는 그렇지 않은 걸로 보여서 다음부터 횟감으로 냉동오징어를 사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생물 오징어는 다른 마트에도 없었다. 오징어를 산 마트에는 어제 조기가 두 마리에 500엔 정도로 팔고 있었다. 조기를 좀 사다가 소금 해서 널어 말렸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을 텐데 어제는 그 생각까지 나지 않아서 좋은 기회를 놓쳤다. 내가 사는 근방에서 생물 조기를 보는 일도 드물다. 

 

어제는 마트에 간 김에 신설된 한국식품 코너도 둘러봤다. 주로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과자 종류와 인스턴트 라면과 김이 주류로 보인다. 그동안 백화점 지하에 가서 샀던 고추장과 고춧가루, 당면 등도 있었다. 가격은 전혀 싸지가 않고 백화점 지하에서 사는 것과 같다. 백화점 지하보다 가까우니 필요한 것이 있으면 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 잡채를 만들 생각으로 부족한 재료를 샀다. 시금치와 당근, 버섯, 양파 등이다. 잡채를 만들려면 손이 많이 가니까, 결심이 필요하다. 집에는 아껴둔 당면이 한 봉지 있는데 마트에서 당면을 파는 걸 알았으니 더 이상 아끼지 않아도 된다.

 

오늘처럼 아침부터 날씨가 좋은 날은 바쁘다. 빨래를 하고 다른 일도 하기가 좋기 때문이다. 거기에 몇 주 만인가 영상회의도 있다. 바쁜 날인데 잡채를 먹고 싶다. 아침밥을 하면서 잡채를 만들 준비도 한다. 냉동고에 소고기가 있는 줄 알고 꺼냈더니 삶은 것이었다. 돼지고기도 군 것이다. 생고기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삶고 군 걸 다시 양념에 재었다. 시금치를 데쳐서 무치고 당근과 양파를 볶았다. 삶은 고기와 버섯도 볶았다. 삶은 당면을 넣고 다시 볶아서 잡채를 완성했다. 아침부터 많은 재료를 썰고 볶느라고 벌써 지친 느낌이 들었다. 아침은 밥도 먹지 않고 잡채를 주로 먹었다. 잡채는 정말로 어쩌다가 하는 것이라서 친한 이웃과 다른 걸 얻어먹는 이웃에게도 나누려고 반은 소분했다. 

 

영상회의 시간이 12시부터인 줄 알았더니 11시부터다. 아침부터 밥을 하고 잡채를 만들다 보니 밥을 먹은 것이 10시가 넘었다. 잡채가 따뜻할 때 친한 이웃에게 전화했더니 마트에 다녀와서 벌써 점심을 준비하고 있단다. 이따가 오후에 산책할 시간에 전화하라고 한다. 친한 이웃이 이런 식으로 말을 한 적이 없는데 타이밍이 맞지 않았나? 했다.

 

영상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목욕하고 시간에 맞게 준비하느라고 서둘렀다. 컴퓨터도 미리 켜 두고 서두느라고 했지만 막상 시간이 되니 줌이 열리지 않고 줌이 열렸더니 오디오에 문제가 있다. 컴퓨터를 컸다가 켜기를 몇 번이나 하면서 버벅거리고 줌에 연결이 되니 벌써 회의시간 반이 지났다. 내가 버벅거리는 동안 회의가 이미 진행되어서 다행이다. 덕분에 오늘 회의는 아주 짧게 끝났다. 

 

점심에도 잡채를 많이 먹어서 아침에 산더미 같았던 잡채가 거진 없어졌다. 날씨가 좋다고 다시 빨래를 해서 널었다. 요새 하던 뜨개질도 마무리하고 친한 이웃이 산책을 시작한다는 오후 3시에 맞춰 다른 일을 다 마치고 싶다. 빨래도 말려서 걷어 들이고 싶다. 그렇다면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오늘 한 일 중 하나는 어제 산 청소용 베이킹 소다로 프라이팬과 커피잔 등의 때를 벗긴 거다. 어젯밤에 프라이팬에 소다에 물을 가득 넣고 끓여서 오늘 아침이 되면 깨끗할 줄 알았더니 소다가 부족했는지 얼룩이 진채였다. 소다를 더 붓고 다시 끓여서 베란다에 내놨다. 저녁이 되어서야 프라이팬과 커피잔을 말끔하게 씻었다. 그 물로 목욕탕까지 청소했다. 베이킹 소다를 써서 얼룩진 컵을 마법처럼 말끔하게 만드는 건 아주 기분이 좋은 일이다.

 

산책을 나가기 전에 빨래를 다 걷었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어서 친한 이웃에게 전화했더니 조금 있으면 우리 집에 도착하니까 나오지 말고 그냥 있으라고 한다. 나는 나가서 어제 베란다에서 떨어뜨린 빨래집게를 주었다. 친한 이웃이 도착해서 봤더니 손에 든 것과 가방에 든 걸 주섬주섬 꺼낸다. 마당에 핀 센료를 따서 손에 들고, 감나무에 남은 마지막 감을 따서 가방에 넣고 내가 이전에 반찬을 나눴던 병을 가져왔다. 오전에 전화를 했을 때는 나에게 가져올 걸 아직 준비하지 못한 상태였나 보다. 친한 이웃이 오랜만에 본다고 정성껏 준비한 선물에 마음이 울컥해진다. 그게 무겁다고 80 넘은 사람이 집에 배달까지 왔다. 친한 이웃에게 받은 걸 우체통에 넣고 잡채를 줬다. 생고기가 아닌 삶은 고기를 넣어서 제대로 된 건 아니지만 맛을 보라고 했다.

 

다른 이웃에게도 잡채를 전해 주고 산책하기로 해서 다른 이웃네 집에 갔더니 바지런한 그 이웃은 이미 산책을 나가서 없었다. 그 집 아저씨와는 그냥 인사 정도만 했는데 오늘은 친한 이웃이 있어서 다른 말도 했다. 모과를 가져가라고 해서 두 개 받았다. 마당에는 어제 정리했다는 보라색과 흰색 국화꽃이 한 다발이나 있다. 국화꽃도 가져가라고 한다. 산책을 시작하는 길이라서 꽃을 받으면 집에 다시 와야 해서 다음에 받겠다고 했다. 친한 이웃이 노란 센료가 예쁘게 피었다고 나에게 좀 나눠주라고 한다. 올해는 센료 작황이 나쁜 편이라서 별로 없다고 한다. 다음에 노란 센료를 받으러 오기로 하고 산책을 나섰다.

 

나도 그동안 열흘 정도 산책을 못했다. 산책을 못하면 다리가 더 가늘어지는 것 같아서 겁이 난다. 산책도 못하면 근력이 떨어져서 체력이 저하될 것 같아 무서워진다. 지금은 내가 사는 주변이 가장 아름답게 단풍이 지는 계절이다. 그런 걸 창문으로 바라보기만 하고 산책을 할 수가 없어서 슬펐다. 오늘은 오랜만에 친한 이웃과 단풍이 예쁜 곳을 산책할 수 있어서 좋았다. 산책하기가 어려워지면 좋은 날씨에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는지 알게 된다. 사람이 어리석어서 그런지 항상 뭔가를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 같다. 특별할 것이 없는 소소한 일상이 아주 소중하다.

 

저녁에는 아주 조금 남은 잡채를 먹었다. 오늘 아침에 만든 잡채 반은 이웃과 나눠서 저녁에는 말끔히 다 먹어 치울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무리 반가운 음식도 맛있을 때 먹어야지, 남으면 짐이 된다. 그래서 오늘 오랜만에 만든 잡채는 그다지 맛있지는 않았지만 나도 먹고 이웃과 나눠서 남기지 않아서 좋았다. 

 

친한 이웃이 준 센료를 꽂았더니 바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난다. 일본에서 센료는 복이 들어온다고 정월에 장식하는 대표적인 식물이기도 하다. 보통은 붉은색 열매에 초록색 잎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크리스마스 색이다. 나는 크리스마스 색감의 센료는 이미 받았고 노란색 센료도 받기로 했다. 센료를 많이 받으면 내년에 복이 많이 들어온다는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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