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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생활

수선화 향기 가득한 크리스마스

오늘 동경은 최고기온 11도, 최저기온 0도로 아침부터 맑은 날씨다. 며칠 전부터 일본에는 강력한 한파가 몰려왔지만 다행히도 동경은 기온이 내려가는 날이 있긴 하지만 맑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동경에서 지내는 나는 큰 영향을 받지 않지만 일본에서 강력한 한파가 몰려왔다는 의미는 바로 '자연재해'라는 걸 뜻하기에 한파로 인한 사상자가 발생한다. 올해는 살인적인 더위도 6월 하순부터 연일 계속되어 정말로 힘든 여름을 지냈다. 한파도 12월 1일부터 시작되었는데 요새 한층 강력한파가 몰려와서 크리스마스고 뭐고 한파로 힘들게 지내야 하는 지역과 사람들을 생각하면 괜히 미안할 정도다. 

 

 

영국에서 물가와 공공요금 인상으로 사람들이 끼니를 걸러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영국에서 생활이 어려워진 사람들이 생필품, 특히 식료품조차 제대로 확보하기 힘든 상황은 이전부터 있었다. 코로나와 전쟁으로 인해 세계적인 물가인상에 공공요금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서 저소득층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이런 일은 한국이나 일본에서 보면 실감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런 보도를 잘 접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영국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https://news.yahoo.co.jp/byline/konnoharuki/20221214-00323776). 급격히 인상된 공공요금을 체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늘고 있으며 공공요금 납부를 위해 식사를 걸러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일본의 식생활은 한국에 비해 빈약한 편이다. 더운 여름이면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몰라도 추운 겨울에는 영양이 있는 걸 많이 먹어야 견딜 수 있다.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뉴스를 보면 내가 상상하던 일이 현실이었구나, 하는 실감을 갖는다. 여기에 강력한 한파라는 '자연재해'가 덮치면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죽고 사는 문제가 되고 만다. 

 

일본에서도 다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매일 발표하는 숫자보다 체감하는 건 주변에서 들리는 구급차 소리다. 오늘 아침에도 구급차가 바로 맞은편에 와서 한참 머물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구급차 소리를 아주 가까이서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는 건 결코 유쾌할 수가 없다. 내가 사는 지역은 한적하다 못해 적막한 곳인데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면 매일 가까이서 구급차 소리를 듣게 된다. 코로나의 기승에 더블펀치로 강력한 한파라는 '자연재해'로 올해 일본 크리스마스는 많은 지역에서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는지 모르지만 로맨틱한 것과는 거리가 먼 생존이 걱정되는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나도 한파가 와서 방한책을 대비했다. 이불속에는 온수 주머니를 넣고 발에는 앙카라는 전열기구를 넣는 건 이전부터 했다. 다음 단계로 이불 덮는 순서를 더 따뜻하게 바꾸고 담요를 한 장 더 꺼내서 덮었다. 한기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이불을 너무 많이 덮다 보니 이불속에서 헤엄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맑은 날, 햇볕이 들어 따뜻해진 공기를 방문을 닫아서 가둔다. 거기에 잠자기 전과 아침 가장 추운 시간에 각 한 시간 정도 히터를 켠다. 그러면 침실에서는 한기를 느끼지 않아서 한결 편해졌다. 

 

 

어제는 크리스마스라고, 아니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기에도 불구하고 병문안을 왔다. 요새 나는 항암제 부작용과 한파로 인해 컨디션이 매우 저조하다. 산책을 할 수가 없어 근력이 떨어지고 밤에는 잠을 잘 자지 못해서 침대에 오래 누워있지만 피곤하다. 아침에도 약을 먹기 위해 시간에 맞춰 아침을 먹고 약을 먹고 다시 침대에 가서 쉬고 졸다가 낮이 되어야 일어나 움직인다. 아침을 챙겨서 먹는 것만으로도 힘들다. 식료품이 떨어져도 사러 나가지도 못해서 나는 암이 아니라, 굶어서 죽던지 한파로 죽던지가 더 빠를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작년에 아파서 쓰러졌던 것이 12월 25일부터라, 비슷한 시기가 다가오니 괜히 두려운 마음도 있다. 아픔을 느끼는 것도 날에 따라 다르고 밤과 낮이 다르다. 

 

그런데 어제는 많은 식료품과 함께 매우 향기로운 수선화 꽃다발을 들고 병문안을 왔다. 바쁘신 몸들이라, 차 한 잔정도 마시고 다시 내가 냉장고를 털고 준비한 짐을 많이 들고 떠났다. 오기 전에 30분 후에 도착한다는 전화를 받고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나눌 걸 다 꺼내서 짐을 챙겨뒀다. 어제도 다행히 맑은 날씨여서 집이 밝고 따뜻한 편이라서 좋았다. 

 

어제 요코하마에서 출발하기 전에 꺾었다는 수선화가 오늘 활짝 더 피었고 향기가 온 집안에 충만하다. 무를 사다 달라고 해서 내가 먹고 싶었던 피클도 만들었다. 요전에 많이 만든 깍두기는 나에게 머무른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주위에 전해졌다. 다른 반찬보다 항상 샐러드처럼 입가심을 할 수 있는 피클이 많이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어제는 날씨도 좋았고 손님이 와서 좋은 시간을 보낸 힘을 받아서 피클도 많이 만들었다. 이걸로 내년을 맞을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하다. 오랜만에 식료품 보급을 받아 갑자기 냉장고에 반찬이 많아졌지만 만만하게 많이 먹을 수 있는 기본적인 반찬, 피클이 있어 다행이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수선화 향기가 충만해서 인상적이었다. 좋은 향기를 맡으면 아픈 걸 잠시나마 잊고 행복한 기분을 맛볼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근래 나는 이렇게 신선하고 강한 꽃향기를 맡은 적이 있을까? 얼마든지 예쁘고 화려한 꽃이 많지만 신선함에는 비기지 못한다. 이렇게 며칠 수선화 향기와 같이 지내는 연말을 맞고 싶다. 그러고 보니 수선화와 어제 만든 피클에 처음으로 노랑 피망을 넣었는데 색감이 비슷하다. 어제 만든 피클은 보기와 달리 아주 맛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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